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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와 달리기無序錄 2011. 12. 31. 15:26
걷기 - 생각을 낳는다. - 숨을 고른다. - 땅을 느낀다. - 주변을 돌아본다. - 타인에게 눈길이 간다. - 다감각, 다운동이 동시 가능하다. - 정적이다. 달리기 - 생각을 잊는다. - 고민을 고른다. - 공기를 느낀다. - 나를 돌아본다. - 세상이 뒤로 밀린다. - 한 가지 감각, 운동만 가능하다. - 동적이다. "걷는다"는 움직임은 정말 생산적인 일이다. 천천히 걸음을 내딛으며, 한 걸음에 한 마디의 생각을 한다. 발걸음은 하나의 발자국을 만들어 낼 때마다 땅을 느끼고, 자극을 받는다. 돌멩이의 자극이 신발을 지나 발바닥과 발가락을 간질이고, 걷다가 눈에 드는 뜰꽃은 뇌를 자극하는 향신료가 된다. 걸어가는 일은 그 자체로 그치는 법이 드물다. 산책을 해도 땅을 느끼고, 주변을 둘러보고 대화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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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 커피에 담그기.無序錄 2011. 12. 31. 15:24
봄입니다. 나긋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던 하루였습니다. 3월에 불던 바람은 아직 겨울이었습니다. 몸과 마음을 굳게 만드는 바람이었습니다. 적어도 내 마음과 또 한 사람의 마음은 꽁꽁 얼어버린 겨울이었습니다. 겨울의 입장에서는 아주 성공적인 한철이었네요. 비가 내렸습니다. 많은 비는 아니지만, 세상에 가득했던 먼지를 닦아줄만큼 내렸습니다. 아스팔트에 닿아 튀어오르고 터지는 빗방울을 보며 생각합니다. 비 비린내가 가득한 종로 거리, 그 거리를 두 손 잡고 천천히 거닐던 시간. 그리고 따뜻한 커피 두 잔과 몇 시간의 행복한 대화. 커피는 내게 아주 특별합니다.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처음에는 모두 커피를 싫어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함께한 시간이 점점 많아질수록 그들은 나처럼 드립커피를 향해 손을 뻗었고 입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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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손전화의 존재의미에 대하여無序錄 2011. 12. 31. 15:21
멀리 생소한 산을 넘어 새소리조차 시끄럽게 들리는 골짜기에 들어간 시간. 그 적막함은 단 한 개의 점을 통해 떠나온 세상과 이어지고 있다. 7개의 무지갯빛 막대―빨주노초파남보―모두 선명하게 떠오르면, 이리스가 소식을 전해주러 내려온 것처럼 내 마음도 가볍다. 11개의 숫자와 한 번의 통화 버튼을 누르는 손동작도 내 마음처럼 가볍다. 화창한 화요일 오후, 여전히 맑고 밝은 하늘에서 무지개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주머니에서. 무지개다리가 사라졌다. 그토록 무거웠을까. 세상과 나를 잇는 보이지 않는 선이. 온몸을 전율하며 사랑이 담긴 쪽지를 전하는 주머니 속 작은 새가. 내 품을, 내 손을 벗어나는 게 그토록 크고 무거운 일이었을까. 손전화는 홀로 있지 못한다. 아무것도 아니다. 손전화를 붙들고 있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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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으로 가는 길.無序錄 2011. 12. 31. 15:19
비가 내린다. 차창 건너편으로 다른 차가 보인다. 내달리는 바퀴에 물안개가 휘감아 돈다. 고개를 돌려 앞을 봤다. 빗방울이 “투두두둑” 떨어지며 내 신경을 깨운다. 삐걱거리는 와이퍼는 한없이 두 팔을 흔들고 있었다. 지금 나는 서울에서 경상북도 영천으로 시속 100km의 속도로 멀어지고 있다. 만 24년의 내 삶에서 멀어지고 있다. 밤새 뒤척였다. 일찍 잠들려했지만, 심장은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인지 불안인지 모를 기묘한 두근거림으로 나를 괴롭혔다. 예언은 이루어지고 만다.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난 나는 오이디푸스였다. 나에게 입대는 오이디푸스에게 내려진 델포이의 신탁과 같은 무게로 다가왔다. 오이디푸스는 운명을 떨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하지만, 결국에는 그 운명의 궤를 따라 걸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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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미니마이즈하고 코스트를 세이브 할 수 있다!無序錄 2011. 12. 31. 15:16
종종 "전문가"들이 나를 미치게 한다. 그들의 언어 구조가 매우 궁금하다. 유학 다녀온 것을 자랑하려고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자신이 쓰는 낱말들과 언어 구조가 그러한 것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혼자 카페에 앉아서 놀다가 패션 잡지를 보고 발끈한 적이 있다. "쉬크한 느낌의 골드 귀걸이와 함께 블랙 앤 화이트의 믹스매치" 그 비슷한 기분이 요즘 나를 심심하게 두질 않는다. 지금도 방송되고 있는 "100분 토론".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대권 정책으로 제안한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기술적인 부분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저 잠자코 보는 중이다. 그때! 내 귓가를 거칠게 스치는 낱말과 문장들이 한 노교수의 입에서 쏟아진다. 서울대 지리학과 유우익 교수.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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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비, 잡소리無序錄 2011. 12. 31. 15:13
반짝이는 햇볕이 내 기분을 좋게 해줬어. 어제 밤까지만 해도 답답했던 마음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열린 듯 시원했고 말야. 늦잠을 자고 일어났지만, 이상하게 느긋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너는 그 느낌을 아니? 귀찮게 울려대는 손전화 알람을 꺼버리고 이불을 걷어 차버렸어. 동서남북으로 기지개를 펴고 있는 머리카락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눈도 덜 뜬 채 욕실로 걸었지. 아마, 네가 내 모습을 봤다면, 몽유병 환자로 착각했을 거야. 손을 더듬어서 칫솔과 치약을 찾았어. 보지 않고 치약을 짜서 그런지, 평소보다 많은 양을 칫솔에 묻혀버렸더라. 눈을 빼꼼히 뜨고, 세면대에 칫솔을 올려 놓았어. 그리고 나선, 옷을 훌렁 벗어 던지고 샤워기를 틀었지. 거기까지가 내 오른쪽 눈이 받아들일 수 있는 빛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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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크한 느낌의 골드 귀걸이와 함께 블랙 앤 화이트의 믹스매치(?)無序錄 2011. 12. 31. 15:09
옷과 관계된 일을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다보면,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이 어지럽게 춤춘다. 패션계의 어휘들은 마치 제 3차 세계대전을 떠올리게 하고, 된장국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들은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장벽을 이루고 만다. 성급한 생각으로 그들을 매도하면 안 되겠지만, “쉬크한 느낌의 골드 귀걸이와 함께 블랙 앤 화이트의 믹스매치”라는 문장을 모국어처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패션업계 관계자들은 이 단어의 뜻과 유래와 국적을 알고 있을까? 나는 모른다. 그래서 사전을 찾아봤다. 1. 쉬크하다 : 주로 “쉬크한 느낌”으로 활용된다. chic〔, 〕〔F 「숙련, 기술」의 뜻에서〕 n. 1 (독특한) 스타일;멋, 고상(elegance), 세련 2 유행, 현대풍 ━ a. 우아한, 세련된, 맵시 있는(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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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버린 겨울無序錄 2011. 12. 31. 15:04
늙어버린 겨울의 존재를 드디어 하늘이 알아차렸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지난 빙하기를 아직 잊지 못하고 있는 하늘은 어쩔 수 없는 어른인가 보다.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기억하다, 어느 순간 훌쩍 커버리거나 쇄락할 때에야 비로소 눈을 비벼 크로노스의 존재를 느끼는 것처럼. 차츰차츰 겨울의 생명은 사그라졌다. 1년에 한 차례 어김없이 가을이 던지는 칼에 맞아 가사상태에 빠지는 나무의 꿈은 겨울이 지켜줬다. 김치냉장고보다도 신선하고 서늘한 공기로 나무의 꿈을 꾸고 있는 씨앗을 지켜줬다. 나무의 꿈도 겨울의 생명이 사그라지는 만큼 줄어든다. 벌레를 키우는 계절의 생명력은 신선한 계절의 생명을 빨아먹고 눈을 비벼 볼만큼 커져버렸다. 여름, 이젠 크로노스의 손에서 낫을 빼앗아 들게 됐다. 서기 2007년 3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