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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천으로 가는 길.
    無序錄 2011. 12. 31. 15:19

      비가 내린다. 차창 건너편으로 다른 차가 보인다. 내달리는 바퀴에 물안개가 휘감아 돈다. 고개를 돌려 앞을 봤다. 빗방울이 “투두두둑” 떨어지며 내 신경을 깨운다.  삐걱거리는 와이퍼는 한없이 두 팔을 흔들고 있었다. 지금 나는 서울에서 경상북도 영천으로 시속 100km의 속도로 멀어지고 있다. 만 24년의 내 삶에서 멀어지고 있다.


      밤새 뒤척였다. 일찍 잠들려했지만, 심장은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인지 불안인지 모를 기묘한 두근거림으로 나를 괴롭혔다. 예언은 이루어지고 만다.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난 나는 오이디푸스였다. 나에게 입대는 오이디푸스에게 내려진 델포이의 신탁과 같은 무게로 다가왔다. 오이디푸스는 운명을 떨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하지만, 결국에는 그 운명의 궤를 따라 걸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내게 내린 운명의 궤를 피할 방법은 없었다.


      충주를 지날 즘, 비가 그쳤다. 서울에서 그렇게 내리던 비는 지난 24년의 시간을 씻어 내리기 위한 물이었나 보다. 아직 햇빛이 보이지는 않는다. 농담이 부드럽게 이어진 어둑한 하늘, 밤새 물을 흠뻑 받아 마신 산마루의 푸른 나무들이 내 기분을 그려준다. 짙푸른 녹색과 듬성듬성 보이는 검은 부분은 달라지는 내 옷 색깔처럼 보이고, 희뿌연 안개와 먹물이 덜 풀어진 구름들은 앞날을 보이지 않는 내 미래와 겹쳐진다. 100미터 앞의 형체조차 흐릿한 시야로 달려간다.


      경상북도 문경을 넘어선다. 네 식구가 모두 함께 가는 경상북도는 처음이다. 부모님과 동생은 그다지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는다. 나 역시, 이 글을 쓰느라 말을 줄이고 있다. 옆에 앉아있는 동생도 이제 64일 후면, 나와 같은 운명의 궤를 따라 가야한다. 2평도 안 되는 자동차 안의 공기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느껴진다. 부모님은 표정에서도 말투에서도 서운함이 드러나지 않는다. 동생은 아쉬운 마음이 드는지 밤샘 아르바이트를 하고서, 흔쾌히 길을 나섰다.


      뱀의 몸통을 지나는 기분이 든다. 수많은 터널들을 지나며 영천으로 내닫는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떠올랐다. 내가 가는 곳이 무진인지, 떠나오는 곳이 무진인지 알 수 없다. 아니, 알 수 없기를 바라고, 향하고 있는 그곳이 바로 무진이기를 희망한다.

     

    2007. 7. 2.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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