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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 알랭 드 보통문학 2012. 2. 3. 09:01
- 불안 (양장)
- 국내도서>시/에세이
- 저자 :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 정영목역
- 출판 : 은행나무 2011.12.28
한국인은 평생을 불안과 함께한다. 이번 시험에서 성적이 떨어지면 어쩌나, 엄마 친구 아들이 또 1등이면 어쩌나―하는 학창시절의 고민에서부터 시작하는 불안. 취업을 해도 승진과 마누라 친구 남편 덕분에 불안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 불안은 아이들에게로 번지고 “내 아이만 뒤처지면 어쩌지?”하는 초조감은 엄마아빠를 사로잡는다.
보통 아저씨의 놀라운 분석을 읽었다. 이 남자의 글은 3미터의 거리감이 느껴진다. 독자가 아무리 보통 아저씨 근처에서 놀더라도, 그는 타인의 주변에는 1초의 시선도 돌리지 않는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도, <여행의 기술>에서도 이 남자는 온통 자신의 이야기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지만, <불안>에서는 약간 다른 냄새가 난다. 드디어 고개를 들어 관찰을 시작한 모습이다.
불안의 원인은 꽤 다양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고, 안정감 있는 조직의 일원이 되고 싶은 욕구가 핵심 아닐까. 인문 교양으로 똘똘 뭉친 보통 아저씨는 좀 더 섬세했다. 불안을 원인과 해법으로 나누어 분석해 놓았다.
이 책은 일종의 처방전이다. 의사가 환자나 질병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 병의 정체와 앓게 되는 원인과 치료법을 제시해 놓은 책이다. 이 두터운 처방전을 읽고 자가 치료를 하거나 다른 약사를 찾아가는 일은 독자의 권한이다.
차례는 간단하다. 여러 의학사전이 그러하듯, 불안에 대한 정의로 시작한다. 보통 아저씨는 병의 원인을 다섯 가지로 구분한다. 늘 그렇듯이 마음의 병은 “사랑”에서 시작된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원인도 “사랑결핍”이다. 그 다음에는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의 진단이 이어진다.
친절한 보통씨는 뒤이어 다섯 가지의 치료법을 제안한다. 하지만 큰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 보통 아저씨는 “인문 교양”으로 가득한 사람. “철학”이 엄지손가락의 자리에 꼽혔고,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 순으로 놓였다. 책을 펴들면서 보통 아저씨의 다른 냄새에 두근거리던 마음이 식는다. 보통 아저씨의 여행은 늘 그랬다. 넓은 세상에 눈을 돌려 관찰은 하되, 도착하는 곳은 자기 자신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랄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보통 아저씨가 진단한 불안의 원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갖는 불안감과 들어맞는다. 사다리 위에 서있는 지위라든가, 천박한 자본주의와 오묘한 능력주의가 결합된 사회 분위기에 속물근성까지 버무려진 대한민국. 고단한 나라다.
누구나 정점을 향해 달려가지만,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사랑, 안정, 소속에 대한 욕구가 아닐까.
<책에서>
우리가 사다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가 우리의 자아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예외적인 사람들(소크라테스나 예수)은 다르겠지만, 세상이 자신을 존중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하면 스스로도 자신을 용납하지 못한다. -p.9
만일 미래 사회가 조그만 플라스틱 원반을 모으는 대가로 사랑을 제공한다면, 우리는 오래지 않아 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으로 인해 열렬한 갈망을 느끼기도 하고 불안에 떨기도 할 것이다. -p.17 <사랑결핍>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자신의 인격을 신뢰할 수도 없고 그 인격을 따라 살 수도 없다. -p.23 <사랑결핍>
속물의 독특한 특징은 단순히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똑같이 본다는 것이다. -p.29 <속물근성>
신문 때문에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속물을 독립적 판단을 할 능력이 없는데다가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갈망한다. 따라서 언론의 분위기가 그들의 사고를 결정해버리는데, 그 수준은 위험할 정도다. -p.33 <속물근성>
속물도 속물을 낳는다. 나이든 세대는 낮은 계급에 속하는 것이 곧 재앙이라는 자신의 고정 관념을 젊은 세대에게 물려준다. -p.35 <속물근성>
부는 욕망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가 얻을 수 없는 뭔가를 가지려 할 때마다 우리는 가진 재산에 관계없이 가난해진다.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할 때마다 우리는 실제로 소유한 것이 아무리 적더라도 부자가 될 수 있다. -p.81 <기대>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진다. -p.119 <능력주의>
무슨 일을 하느냐 하는 질문에 우리가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우리를 대접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이것은 우리가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맨 처음에 대답해야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p.143 <불확실성>
“이 세상에서는 외로움이냐 천박함이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p.167 <철학>, 쇼펜하우어의 말
우리는 어떤 것을 이루고 소유하면 지속적인 만족이 보장될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행복의 가파른 절벽을 다 기어 올라가면 넓고 높은 고원에서 계속 살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고 싶어 한다. 정상에 오르면 곧 불안과 욕망이 뒤엉키는 새로운 저지대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드물다. -p.267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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