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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모 | 미하일 엔데
    문학 2012. 2. 3. 08:59

    모모
    국내도서>소설
    저자 : 미하엘 엔데(Michael Andreas Helmuth Ende) / 한미희역
    출판 : 비룡소 1999.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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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를 잃어버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다시 접촉하는 주도권을 그에게 맡겨두는 것이다.”

    -미셸 트루니에 <외면일기>에서.


      이런 날씨였다. 하늘은 구름을 잔뜩 끌어다가 빛나는 진주를 감춰버렸고, 온도는 줄기차게 올라갔다. 종로의 큰 길을 걷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져갔고, 그 위로는 마르지 않는 샘처럼 땀이 흥건하게 흘렀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야자―야간자율학습―는 항상 빼먹었다. 야트막한 언덕에 솟은 세 동의 건물은 해가 지면 마치 몬스터 하우스 같았다.


      해가 지기 전에 나는 교문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가끔은 서쪽으로 내달아 인왕산 자락의 종로 도서관으로 갔다. 사직공원이 아담했고, 안평대군이 살았다던 수성궁(壽聖宮)에 앉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주로 내가 편안히 숨 쉬던 공간은 정독 도서관이었다. 6월의 그곳은 풀냄새로 가득했다. 오래된 보도블록 사이로 피어난 잡초들마저 향긋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엔데 할배를 떠올리면 6월의 풀냄새가 떠오른다. 시험공부를 젖혀두고 읽어버린 <모모>이야기와 함께.



    #1. 열쇠는 대화


      시간은 얄궂다. 시간은 아껴 쓸수록 이 장난꾸러기는 “메롱”을 인사삼아 날아가 버린다. 학생들은 학교와 학원에 다니면서 시간을 아껴 쓰는 방법을 배운다. “어쩜 그렇게 시간을 낭비하니?”라는 어른들의 충고를 들어가며 부단히 공부를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시간을 아끼고 쉼 없이 내달리면 내달릴수록 남은 건 시간이 던진 “메롱”뿐이다. 대학에 가서 여유를 찾으라는 말에, 다시 기운을 내겠지만 삶이 그렇게 호락호락한가!


      나도 꽤나 길들여졌다. 대학 2학년 때 깨달았다. 나는 공휴증(恐休症) 환자였다. 학점을 22학점씩 채워듣고도 오후시간이 남는 게 불안했고, 계절학기도 꼬박꼬박 들었다. 집에 들어와서 TV를 보며 쉬는 것도, 소설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일도 두려웠다. 시험기간이든 아니든 도서관에 앉아서 허웅의 <국어학>만 읽어댔다.


      여유는 한순간에 찾아왔다. 들을 강의가 없어서 한 학기를 휴학했다. 여자친구는 빈둥대며 불안에 떠는 내게 “조급해하지 말고, 빈둥거려도 괜찮다”며 다독였다. 그때 상당히 많은 대화를 나눈 것 같다.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연락하고 얘기를 나누면서 불안은 조금씩 사라졌다. 한 학기가 거의 끝나갈 즘, 내 사람들을 돌아볼 여유가 마음 속에 자라나있었다.


      시간을 아껴가면서 점점 사람들은 하나의 섬이 되어간다. 모모는 섬을 대륙으로 바꿀 수 있는 열쇠를 보여준다. 대화와 이야기. “눈 반짝 귀 활짝”의 마음으로 서로에게 다가간다면, 보물 상자의 열쇠는 손에 쥔 셈이다.



    #2. 진리는 어렵지 않아


      한국 문학이 말라 죽어간다. 일본 문학은 쑥쑥 자란다. 오늘은 돈독한 친구를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들어왔다. 한참을 얘기하다가 말라죽는 우리 문학 이야기가 나왔다. 그 친구는 “작은 것을 놓치지 않는 일본인의 성격이 개인적인 취향을 찾기 시작한 우리나라 독자에게 먹힌 게 아니냐”는 말을 했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젊은 여자 친구들끼리 카페에 앉아 있다. 파르페와 레모네이드를 핑크색 빨대로 마시며  “어머, 있잖니 얘.”로 말이 시작된다. 일본 문학은 이런 느낌이었다. 반면에 한국 문학은 으슥한 선술집의 술자리 토론 같았다. “요즘 세상, 참 이상하게 돌아간다.”로 시작하는 대화랄까.


      얼마 전에 읽은 <월든>에는 “철학자는 없고, 철학 교수만 있다”는 얘기가 있다. 공자는 제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는 철학을 몸으로 보여주며, 쉬운 말로 진리를 전달했다. 엔데 할배는 철학을 쉬운 말로 전달하는 작가다.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 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계속해서 바로 다음 일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 긴 길을 다 쓸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겠고, 숨이 차지도 않아.” -p.51


      진리는 쉬운 말로 건네는 게 더 맛있다. 생선의 참맛은 회로 먹어야 알 수 있다. 고추장을 찍어 먹거나, 매운탕으로 끓여버리면 생선 맛은 묻혀버린다.


      <모모>는 바쁘게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람들 모두가 한 번 이상 읽어야 할 책이다. 시간을 아끼고 저축하려 노력한다지만, 아낀 그 시간이 어디로 가는가. 인연과 사람과 사랑을 싣고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리는 게 시간이다. 그 뒤에 남는 건 씁쓸한 “메롱”일 따름이다.


      주저하지 말고 오늘은 전화해 보면 어떨까. <모모>를 읽고 나면 언제나, 주어진 시간을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 채워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솟아난다.

      


    <책에서>


      시간을 재기 위해서 달력과 시계가 있지만, 그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사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한 시간은 한없이 계속되는 영겁과 같을 수도 있고, 한 순간의 찰나와 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무슨 일을 겪는가에 달려 있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이니까.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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