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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별없는 세대 | 볼프강 보르헤르트
    문학 2011. 12. 31. 16:07



    이별없는세대(문지스펙트럼:외국문학선16)
    카테고리 소설 > 소설문고/시리즈
    지은이 볼프강 보르헤르트 (문학과지성사,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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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풀어 가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짧막하게 요약해서 '들려주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상세하게 '보여주는 방식'이다. 글의 표현력이 탁월한 사람은 대개, 두 가지 방식을 잘 이용한다. 단언컨대, 보르헤르트는 글로 그림을 그린 사람이다.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이름은 낯설다. 나치 독일 치하의 세상에서 살다가 죽은 작가를 모르는 건 당연했다. 나와 상관도 없고, 접할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변명하곤 한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바로 문장 하나 때문이다. 가깝게 생각하는 지인의 SNS에 글귀 하나가 떴다.

     

    "달은 더러워진 달걀 노른자처럼 푸른 밤하늘의 국물 속에서 헤엄치고 있다." -p.63 <지붕 위의 대화>

      '대체 이 사람은 뭘까. 어떻게 그런 발상과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두 번째로 머리를 스친 생각이다. 저 문장을 보자마자 머리를 가득 채운 건 '그림'이었다. 그것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과도 비슷했고, 실제로 어릴 때 봤던 밤하늘과도 비슷했다. 짙푸른 밤하늘에 떠있는 얼룩덜룩하고 노란 달. 미술관에서 어떤 그림 하나가 마음을 사로잡아 걸음을 매어두듯, 그 문장 하나가 마음에 박혀서 떠나지 않았다. 글과 말의 힘이 이렇게나 강렬하다.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작품집인 <이별없는 세대>는 전쟁을 큰 그림으로 두고있다. 여기에 실린 소설들은 대부분 길이가 짧다. 장편(長篇)소설이 아니라, 장편(掌篇)-손바닥 소설이었다. 어떤 건 너무 짧아서 '이 정도 길이의 글도 하나의 작품이 되는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다. 짧은 소설, 그 때문에 보르헤스의 소설도 떠오르게 만든다. 길이는 짧지만 이야기 구성이 허술하지 않다는 점까지 비슷하다.

     

      아마 보르헤르트가 장편소설을 쓰지 못하고, 짧은 소설을 쓴 것은 사정이 있어서 그랬을 게다. 전쟁 통에 짬짬이, 또는 병상에 누워서 써야했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그의 짧은 단편들과 시는 그의 세계에 하나로 잘 녹아든다. 일상의 사진들을 모자이크 해서 다시 큰 그림을 만드는 것처럼. 작품집의 이름으로 선정된 <이별없는 세대>는 큰 그림을 잘 드러내주는 작품인 것 같다.

     

      보르헤르트는 작품에서 스스로 <이별없는 세대>라고 고백한다.

     

    …… 마치 하늘의 별처럼 우리는 무수히 만나지만, 만나도 그것은 짧고, 진정한 이별은 없다. 하늘의 별들은 서로 가까이 와서 잠시 자리를 함께하지만, 다시 멀어진다. 흔적도 없고, 연결도 되지 않으며, 이별도 모르는 채 멀어진다. -p.100 <이별없는 세대>

      그는 "우리의 태양은 희미하고, 사랑은 비정하고, 청춘은 젊지 않다"고 스스로 읊는다. 그의 세대가 "이별이 없는 세대"가 된 까닭은 진정한 이별을 모르기 때문이며, 그 이전에 진정한 만남과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뭔가 야릇한 기분이 든다. 그가 살았던 세상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차이가 있다. 1940년대 독일과 2011년의 대한민국. 거의 70년의 시간적 차이와 대륙의 거의 양끝이라는 공간적 차이가 있지만,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의 젊은 세대들도 "이별없는 세대"처럼 느껴진다. 그의 말처럼 나에게도, 우리 세대에게도 "태양은 희미하고, 사랑은 비정하고, 청춘은 젊지 않게" 다가온다. 오늘도 그런 밤이다.

     

     

    <책에서>

     

      우리는 우리 내면과 주변에 내맡겨져 있다. 달아날 수도 벗어날 수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웃는다. 우리는 아침을 믿는다. 그러나 그 아침을 알지는 못한다. 우리는 아침을 신뢰하고 의지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 아침을 우리에게 약속하지 않았다. -p.66 <지붕 위의 대화>

     

       우리는 서로 만남도 없고, 깊이도 없는 세대다. 우리의 깊이는 나락과도 같다. 우리는 행복도 모르고, 고향도 잃은 이별마저도 없는 세대다. 우리의 태양은 희미하고, 우리의 사랑은 비정하고, 우리의 청춘은 젊지 않다. 우리에게는 국경이 없고, 아무런 한계도 어떠한 보호도 없다-어린이 놀이터에서 이쪽으로 쫓겨난 찻인지, 이 세상은 우리에게 우리를 경멸하는 사람들을 건네주고 있다. -p.98 <이별 없는 세대>

     

       우리는 이별이 없는 세대다. 우리는 이별을 체험할 수도 없고, 또 체험하지 않아도 좋다. 우리가 자칫 발길을 잘못 두면 거리를 헤매는 우리의 가슴에는 영원한 이별이 못박히기 때문이다. -p.99 <이별없는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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