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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 볼테르
    문학 2012. 1. 1. 22:16



    캉디드혹은낙관주의
    카테고리 소설 > 프랑스소설
    지은이 볼테르 (열린책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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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쪽 눈, 왼쪽 눈. 좌뇌와 우뇌. 왼손과 오른손까지. 세상의 정보를 얻는 감각기관은 모두 
    두 편으로 나뉘어 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기관-입-은 하나 밖에 없다. 그 탓일까. 우리는 대체로 뭔가에 대해 생각할 때 두 가지로 나누길 좋아한다. 흑백논리라고 매도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그런 걸 어쩌겠나.

      세상을 보는 관점에 대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200ml의 컵에 담긴 100ml의 물을 표현하는 두 가지 방법. 그 하나는 현실에 가까운 비관적 표현, "물이 반 밖에 없어." 반대로 이상적이고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기를 바라는 긍정적 표현, "물이 반이나 있어." 과연 누구의 입술이 적절한 율동을 한 걸까.

       볼테르, 백과전서파로 유명한 이 코쟁이 아저씨가 쓴 소설은 어렵지 않다. 너무 쉬워서 왜 이 책을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 걸까-하고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최선의 결과를 향해 필연적으로 움직인다는 철학적 신념을 지닌 주인공 캉디드의 일대기가 이 책의 줄기. 그 줄기에 피어나는 가시처럼 캉디드의 신념을 흔들리게 만드는 괴로운 일의 연속극, 그 결말은 캉디드의 변심이었다.

      길지 않은 이 소설에는 무심코 지나가면 '그럴 수도 있지'하고 지나가는 장면이 많다. 실은 곪을 대로 곪아버린 장면들이 계속 이어진다. 매춘, 살인, 수도사들의 기만, 배신 같은 사건들. 왜 그냥 별 거부감 없이 읽혔을까. 어쩌면 지금 사회에서 그런 소식들은 '그렇구나'하고 넘길 정도의 소식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일까. 남매끼리 결혼하고, 아내를 깍둑 썰기하는 오늘날에 너무 소소한 사건들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입대 전까지, 나도 캉디드처럼 해바라기 같은 마음으로 살았다. 늘 밝고 따뜻한 면만 보고 달이 떠도 내일의 태양을 그리며 잠드는 일상을 보냈다. 물론 캉디드에게, 그리고 모든 이에게 그랬듯, 내게도 삶이 항상 봄날의 햇볕같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운좋게도 평생, 온실 속을 세상의 전부로 알고 살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갑돌이와 언년이는 눈과 귀를 막고 싶은 세상 속으로 던져진다. 그 세상을 인식하고 헤쳐나가느냐, 눈을 감고 걸어가느냐에 따라 많은 부분이 달라지지 않을까.

      볼테르, 이 유쾌한 철학선생은 갓 학교를 졸업한 제자의 손을 잡고 길을 나서는 듯하다. 추악한 세상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킥킥거리는 웃음으로 눈앞에 그려주는 멋진 선생 볼테르의 소설. 꿈과 희망에 찬 20살에게 권하고 싶다.

    3장 캉디드는 불가리아

          군대에서 어떻게

          탈출하며 그 후

          어떻게 되는가

    p.21

     

    원인 없는 결과는 없지요. 모든 것은 최선의 결과를 향한 필연적 과정으로 얽혀 있습니다. 저는 필연적으로 퀴네공드 양의 집에서 쫓겨나야 했고, 몽둥이찜질을 당해야 했으며, 또 돈을 벌 때까지 구걸을 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필연입니다.

     

     

    12장 노파의 불행 속편

    p.67

     

    만일 자기 인생을 이따금씩 저주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또 자기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나를 바다에 거꾸로 처넣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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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oem_정원사_책들이 있는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