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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 알랭 드 보통
    문학 2012. 1. 4. 01:15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국내도서>시/에세이
    저자 :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 이강룡역
    출판 : 생각의나무 2005.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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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상깊은 구절

    마음속 깊이 담고 있는 자심만의 방법과 많은 이들이 택하는 평범하고 무난한 방법 사이를 가르는 단층면에는 우리의 의견이 어지럽게 맴돌고 있었다. 물질적으로 보면 런던은 하나지만 런던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런던이 하나씩 존재하는 것이다. -p.204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짐승은 즐기다가 죽고, 인간은 경이에 넘치다가 죽는다.  끝내 이르게 되는 항구는 어디일까?"

    - 까뮈, 장 그르니에 <섬>에 부친 전언에서

     

      사랑의 시작과 끝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사랑은 시작되고,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끝나게 되는지 알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이 "응, 그렇지.  사랑은 이렇게 저렇게 해서 이런저런 결론이 나지"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공식이 있을까.  한참을 궁리해도 그럴싸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은 정말 다채롭다.  일단 수컷의 구애행동의 공통된 전략을 따르자면, 암컷의 관심을 끌기 위해 수컷들은 갖은 노력을 지속한다.  어떤 수컷은 몸을 아름답게 가꾼다.  헬스 클럽에 가서 six-pack을 키우는 방법을 택하거나, 에스콰이어 따위의 남성 패션잡지를 통해 사전 정보를 얻은 뒤 로데오 거리를 누비는 전략을 쓴다.  그 외에 인간 수컷의 노력은 다른 종류의 동물 수컷에 비해 보다 높은 차원의 노력을 요한다.  바로, "여성과의 대화"다.

     

      연애의 시작은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나는 듯하다.  길거리를 걷다가 후광체험을 하게 해준 사람을 보게 되더라도, 용기 내서 말을 걸지 않으면 그냥 "땡"이다.  모가 되든 빽도가 되든 간에 식상한 한 마디―커피 한 잔 어떠세요?―라도 건네야 일이 시작된다.  대화 전에 하는 암수의 탐색은 호감의 유무를 결정하는 정도일 것 같다.  (냄새든 분위기든 호르몬이든.  생물학적 지식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이 책은 알랭 드 보통의 글이 분명하다.  그 사람 냄새가 나는 문장들로 가득하다.  보통 아저씨 특유의 지적 유머와 프루스트를 닮은 섬세한 눈, 카페에 앉아 어떤 사람과도 조곤조곤 수다를 떨 수 있는 입담까지.  일상에 널려있는 모든 것들의 의미를 해석하려고 열중하는 보통 아저씨의 흔적이 보인다.

     

      그런 입담의 시작이었을까.  보통 아저씨의 초기작인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은 연애의 시작부터 결말의 한 가지 사례를 전기 소설처럼, 에세이처럼 풀어낸다.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완벽하게 풀어내기 위해서는 많은 관찰과 해석이 필요하다.  우리는 아마도 이런 작업을 최소 한 번씩은 하지 않았을까.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든, 연애를 하기 위해서든.  보통 아저씨는 전기소설 기법을 차용해서 연애에 관한 에세이를 한 편 엮어냈다.

     

      이사벨이라는 인간 암컷에 대한 과거와 현재, 가족과 취향에 대해 기록하며 연애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낸다.  한 번 읽고 그냥 끄덕였다가, 다시 한 번 책의 처음 부분을 들추다가 조금 놀랐다.  누구나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싶은 문단을 만났다.

     

    내 삶의 6개월을 함께 보내다가 나를 떠나기로 결심한 한 여자의 편지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됐다.  "자기인식에서 벗어났어야 할, 그러나 현재의 모습은 너무 자기강박적이기만 한 누군가를 이해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당신을 나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나르시스트는 자기 이외에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어.  ……  모든 것에 고압적이고 항상 자기만 옳다는 태도를 보였지.  내 요구에는 귀 기울이려고도 하지 않는 이기주의자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어……."  -p.13
    "왜 머리를 올리지 않는지 나도 몰라.  그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안 할래.  해야 할 이유가 없잖아.  왜 치즈를 사각으로 자르고, 우리집 우편번호 마지막 숫자가 왜 그렇게 됐는지, …… 이유가 없는 거야.  내 자신에 관해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  왜 모든 것을 당신에게 명쾌하게 설명해주어야 하는지 모르겠어.  왜 사람들의 삶을 그런 바보 같은 전기들처럼 요약해야 하는지 말야……." -p.328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경우는 여러가지겠지만, 헤어지게 되는 건 거의 비슷한 이유인 듯하다.  이 책에서 "나"는 너무 작은 것에 대해서도 "이사벨"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고, 이해를 할 수 있기를 원했다.  끝없이 쏟아지는 물음표들은 "이사벨"을 지치게 만들었고 진절머리가 난 것 같다.  뭐든 적절해야지 지나치면 곤란하다.  (물어본다는 건 순수하게 모르기 때문에, 알고 싶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자기 기준에 못마땅하기에 묻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물어보는 것 역시 자기 욕구를 채우기 위한 말이지, 상대방의 욕구를 해결해 주기 위해 하는 대화의 기법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놀라움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낯설어질 때 느끼는 감정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생각을 갖고 사물을 대한다.  좋게 말하면 주관일테고, 거칠게 말하면 선입관일 것이다.  보통 아저씨가 이 책에서 얘기하듯, "타인에 대한 명료한 첫인상을 무너뜨리는 것은 결국 무지함이 아닌 앎의 축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의 선험적 도식들을 지워버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만이 필요할 거란 생각이 든다. (-p.57)

     

      사랑과 연애에 대한 그럴싸한 대답 한 편으로 갈무리.

     

    <책에서>

     

      같은 객체를 향해 같은 감정을 경험하는 것은 심리적 공존의 표시이고, 어떤 책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다른 독자들을 이해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p.205

     

      점 하나를 끔찍한 분화구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냉철한 자기인식에 이미 직면한 사람에게 다른 이의 판단이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p.229

     

      일기란 타인에 대한 가장 적대적인 생각까지 담아둔다는 점에서 아주 조심해야 할 물건이다.  -p.241

     

      한 개인의 행위가 더 웅대해질수록 그에 따라 사소함도 점점 더 흥미로운 소재가 된다.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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