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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개의 죽음 | 장 그르니에문학 2012. 1. 1. 23:09
- 어느 개의 죽음
- 국내도서>소설
- 저자 : 장그르니에 / 지현역
- 출판 : 민음사 2006.11.30
인상깊은 구절
고통이란 그 표현 수단을 찾게 되면 이슬처럼 증발해 버리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술가는, 누구보다도 불행한 이들인 반면 누구보다도 불평할 것이 적은 이들이다. -p.48
얄리. 굿바이 얄리. 넥스트의 노래가 떠올랐다. 어릴 적에 학교 앞에서 샀던 병아리, 며칠을 못가서 바로 죽어버린 병아리에 대한 쓰린 기억이 되살아났던 노래. 넥스트가 부른 얄리 회상곡은 죽음을 처음 대했던 어린 시절로 나를 돌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오랜만에 그 감상적인 기분으로 되돌아왔다.
한 존재가 사라지고 나면 우리는 그 존재에 온갖 장점들을 갖다붙인다. 그런 값싼 대가를 치름으로써 그에 대한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p.23
그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죽음은 그가 생전에 히틀러나 진시황 정도의 실정을 하지 않았다면, 장점으로 감싸주기 마련이다. 기억의 포장은 죽은 사람에 대한 살아남은 자의 미안함과 의무감을 떨치기 위한 노력일지 모른다.
그르니에 할배의 짧막한 생각토막들이 한 페이지를 넉넉하게 차지한다. 단 하나의 단락으로 한 쪽을 채우는 비경제적인 종이 씀씀이지만, 글줄마다 배어있는 그르니에 할배의 생각과 상념을 읽기에 종이의 여백은 좁게 느껴진다.
글을 쓰는 행위는 틀림없이 죽음과 밀접한 관련-예전에라면 이러한 관련을 좋아했겠지만 지금은 결딜 수가 없다-이 있다. -p.30
글을 쓰는 행위는 현장에서 벗어난 일이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사건의 현장에서 글쓰기는 불가능하다. 3자의 입장에서 관찰하고 기술하는 방법이 주된 것이고, 그 다음은 자기와 관련있는 사건을 겪거나 생각을 한 뒤에 쓰는 회고록 성격의 글일 뿐이다.
짧막한 단상이 무지개 색깔이 이어지듯 연결된다. 어느 부분은 그르니에 할배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겨우 이해와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얇은 책이지만, 여러 생각을 이끌어내는 맛이 있다.
<책에서>
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이를 안락사시킨다면 그것은 그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것인가, 당신의 고통을 덜기 위한 것인가? 죽음을 맞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이이다. 하지만 사랑 때문에 마찬가지의 처신을 할 수도 있다. -p.41
질병, 노화 죽음에 대해 종교와 철학이 제시한 해결책은 <결국> 하나뿐이다. 즉, 환자<처럼>, 노인<처럼>, 시체<처럼> 살라는 것이다. 삶의 즐거움을 잃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그 즐거움을 금할 것, 젊은 시절의 쾌락에 환멸을 느끼지 않으려면 노인처럼 굴 것, 삶이 주는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능하다면 송장처럼 지낼 것! -p.42
우리는 살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살아남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꽃들, 가축들, 우리의 부모들을 잃고도 살아남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잃고도 살아남는다. 생종하는 동안육신의 여러 부분들이 우링게서 벗어나지만 그래도 우리는 살아남는 것ㅇ다. 훗날 우리는 미래에 대한 꿈과 추억들을 잃고도 살아남는다. 그러고서도 우리는 <산다>라고 말한다. -p.84
물론 녀석은 노동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이 점에서 대부분의 인간들과 마찬가지이다-활동을 위해 태어난 것이다. 이 점 역시 인간들과 마찬가지이다. -p.87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