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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치 한 병에 담긴 주절거림
    無序錄 2011. 12. 31. 15:29

      퇴근 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대학 다니던 시절, 술은 마시고 싶지만 취하고 싶지는 않아서 마시기 시작한 "후치" 오렌지. 편의점 통로를 서성이며 간식거리를 찾다가 냉장고 앞에서 걸음이 멈췄다.


      '그래, 오랜만이다. 마시고 편하게 자자.'


      홍대 앞 클럽에 드나들며 사마셨던 6~7천원 그 가느다란 것이 삼천 원이다. 세월이 나의 마음까지 갉았나 보다. 싼 것에 눈과 마음이 움직인다. 샴푸와 칫솔, 그리고 후치 오렌지 한 병을 계산한 뒤에 서류 가방에 찔러 넣었다.


      "안녕히 계세요."


      또 언제 볼지 모르는 아르바이터에게 약간의 진심이 담긴 인사를 남기고 문을 닫았다. 집까지 걸어들어가며 옛 생각에 잠겼다. 그저 무턱대고 노래가 좋고 친구가 좋아 밤을 낮 삼아 뛰다니던 그때가 떠올랐다. 톡 쏘는 탄산과 알콜, 기분까지 좋아지는 과일향 술들. 뭐, 그렇다고 많은 술을 잘 마실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즐거움의 한 조각이었다.

     

      일이 힘들기도 하다. 하지만 언제나 사람을 지치고 힘들게 만드는 건 "다른 사람"이었다. 다른 누구 탓에 마음이 상하고, 온 종일 기분을 버리기도 한다. 함께 있으면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축에 든다. 크게 모난 행동을 하지 않으면 개인적인 영역을 넘지 않기 때문이겠다.


      문제는 행동과 말이 톱니바퀴 같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톱니바퀴형 인간은 힘들다. 혼자서만 힘든 게 아니라, 자신과 얽힌 다른 사람들을 끌고 움직이기 때문에 주변을 힘들게 만든다. 조금 더 곤란한 경우가 있다면, 톱니바퀴에 엔진까지 달렸다면 꽤 심각하다. 톱니바퀴 구조에서 스스로 튕겨 나오거나, 맞추거나 둘 중에 하나 뿐.

     

      집에 들어와서 가벼운 샤워로 몸을 닦았다. 습관처럼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빙고. 후치와 함께 뱃속에서 섞일 것들이 있었다. 저녁 먹은 게 너무 가벼웠던 걸까. 먼저 손이 다가간 것은 호밀빵. 빵과 술은 나름대로 잘 어울린다. 예로부터 "빵과 포도주" 운운하는 게 괜한 건 아니었나 보다. 바흐를 다가가기 쉽게 풀어 놓은 요요마를 돌리고 병 뚜껑을 제꼈다.


      빵 한 조각에 후치 한 모금. 오늘도 속으로 되뇌어 본다.


      "어제는 과거가 됐고, 오늘도 지나가고, 내일도 오늘처럼 지나갈 테고, 어쨌든 시간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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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oem_정원사_책들이 있는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