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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찾기 위한 노력―경제 기반 변천사
    無序錄 2011. 12. 31. 15:32

      조금씩 확신하게 되는 게 있다.  내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결코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았고, 어떤 한 분야가 갑자기 보다 높은 차원으로 진보하지도 않는다는 생각이다.  물론 다른 누군가가 비슷한 말을 했겠지만, 아직 읽지 못했다.  지금 발을 디디고 있는 공간과 순간만 살펴보면 변화를 알아채기 어렵다.  변화는 혁명처럼 순식간에 달라지는 것보다 풍화, 퇴적, 침식같이 오랜 시간의 축적으로 달라지는 게 더 많은 것 같다.

     

      인류는 지금까지 보다 더 게을러지기 위해 노력해왔다.  생존을 위한 먹이마련으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것이, 인류 경제사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수렵, 채취하던 시절은 정말 바쁘게 보내지 않았을까.  매번 끼니마다 뭘 어떻게 구해 먹을지 끝없이 고민했을 게다.  아침을 운 좋게 토끼라도 잡아서 먹었다치더라도, 점심 저녁은 굶을 수도 있다.  실제로 야생 동물이 노화로 죽는 경우는 드물다.  먹이가 부족하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잡아 먹히는 이유로 죽는다.  아마, 수렵, 채취 시절은 끝도 없는 노동에 시달렸을 것이다.

     

      농사는 한 단계 발전한, 꽤 안정적인 먹이 조달법이다.  농사로 먹이를 구하는 방법은 여전히 유효하며, 인류가 존재하는한 계속 이어질 것 같다.  깜짝 놀랄만한 투자대 생산량 덕분에 저장도 가능해졌고, 그에 따라 끝없는 고민은 잠시 유예됐다.  물론, 빈둥댈 수 있는 시간도 그만큼 늘었을 터이고.

     

      농업은 노동집약적인 먹이조달법이다.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며, 동시에 같은 작업을 해야한다.  동일 반복 작업을 "자동화"해서 보다 더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찾기 위한 노력이 산업혁명의 원동력이지 않을까.  똑같은 동작의 무한반복.  영원히 쉬지 않고 돌아가는 톱니바퀴의 신화를 꿈꾸는 시대가 어쩌면 지금도 계속되는지 모른다.  광업과 공업의 발전은 마치, 28회 아테네 올림픽의 구호였던 "보다 빠르게 보다 높이 보다 강하게"처럼 전 세계가 여태 달려온 듯하다.

     

      문제는 늘 대다수의 인류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사건의 핵심을 잘 포착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농산물을 늘리기 위해 기계를 만들었고, 기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기술과 지식을 폭발적으로 쌓아갔다.  이제는 그 지식의 질을 위해, 창조적 아이디어의 독점권을 보장하기 위한 방향으로 사회 구조가 움직여간다.  보다 더 게으를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 꾸준히 움직인다.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 지적재산이 생산력의 핵심이라면, 그 안에서 다시 쟁점이 될 부분이 뭘까.  아마도 사회체계의 정비가 가장 바쁜 문제 중에 하나일 게다.  지적재산은 말 그대로 지식, 아이디어일 뿐이다.  실제로 구현시키는 건 다른 누군가가 하지 않으면 그냥 꿈으로 끝난다.  그 아이디어의 착안자에게 권리를 보장해 줄 수 있는 법규가 마련된 사회가 되어야 지식 기반 경제를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의 도용"이란 건 너무나 쉽기 때문에 법적으로 지식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지식 기반 사회의 근간이 흔들리게 되고 만다.

     

      또 하나, 지식 기반 사회에서는 정말로 한 명의 천재가 만 명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일이 현실처럼 다가올 것이다.  창조적 사고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모두가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게다가 정말로 현실화 시켰을 때 부를 생산할 수 있는 생각은 드물다.  결국 몇몇 소수의 창조적 사고력을 가진 사람들이 부(wealth)를 독점하게 되지 않을까.  그 다음에는 도덕성이 새로운 문제로 떠오를 것이다.  아직까지는 MS사의 빌씨나, 버핏 할배처럼 독지가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지만, 역시 모두가 그럴리는 없다.

     

      지식 기반 사회에서 부의 분배를 어떻게 해결하고, 빈부 격차를 어떻게 해소하느냐에 따라 나타날 문제의 핵심이 달라질 것 같다.  부의 분배가 잘 안돼서 어그러지면, 마선생(Marx)이 얘기했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또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일 테고, 다행히 국가 보장제도가 잘 정비되어서 분배가 된다면 앞으로 그 시스템을 어떻게 지탱해 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까.

    게으를권리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복지
    지은이 폴 라파르그 (필맥,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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