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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숙함, 커피에 담그기.
    無序錄 2011. 12. 31. 15:24

      봄입니다. 나긋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던 하루였습니다. 3월에 불던 바람은 아직 겨울이었습니다. 몸과 마음을 굳게 만드는 바람이었습니다. 적어도 내 마음과 또 한 사람의 마음은 꽁꽁 얼어버린 겨울이었습니다. 겨울의 입장에서는 아주 성공적인 한철이었네요.

     

      비가 내렸습니다. 많은 비는 아니지만, 세상에 가득했던 먼지를 닦아줄만큼 내렸습니다. 아스팔트에 닿아 튀어오르고 터지는 빗방울을 보며 생각합니다. 비 비린내가 가득한 종로 거리, 그 거리를 두 손 잡고 천천히 거닐던 시간. 그리고 따뜻한 커피 두 잔과 몇 시간의 행복한 대화.

     

      커피는 내게 아주 특별합니다.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처음에는 모두 커피를 싫어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함께한 시간이 점점 많아질수록 그들은 나처럼 드립커피를 향해 손을 뻗었고 입안을 덥히곤 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인연을 엮어주고, 끝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던 커피. 쌉쌀한 커피 한 잔에 10년 간 쌓여온 모든 추억들이 떠오르고, 다시 사라집니다.

     

      익숙한 것에서 떠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것도 그렇겠네요. 포근한 이불과 달콤한 잠, 그 사이에 만들어가는 꿈들. 그렇게 나는 10년 동안의 꿈을 꾸었습니다. 겨울이 끝나고 나의 기나긴 겨울잠도 끝나고 말았습니다. 봄과 함께 쏟아지는 햇빛이 눈부시게 비추며 단잠을 깨웁니다. 밍기적거리는 나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있지만, 곧 이불을 걷고 일어날 거라 다짐합니다. 그런데 나긋한 봄햇살의 다사로운 촉감과 갑자기 몰아오는 겨울 냄새가 가끔 마음을 흔들어 놓곤 합니다.

     

      내 마음에 커피를 내려둡니다. 검고 깊으며, 씁쓸하지만 구수한 커피. 그 안에서 차곡차곡 흩어진 앙금들을 모아봅니다. 온몸과 마음에 가득한 앙금들이 한 곳으로 모일 때 즈음, 아마도 여름이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앙금을 모으는 사이에 몰아치는 겨울 냄새가 오지 않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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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oem_정원사_책들이 있는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