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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미니마이즈하고 코스트를 세이브 할 수 있다!無序錄 2011. 12. 31. 15:16
종종 "전문가"들이 나를 미치게 한다. 그들의 언어 구조가 매우 궁금하다. 유학 다녀온 것을 자랑하려고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자신이 쓰는 낱말들과 언어 구조가 그러한 것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혼자 카페에 앉아서 놀다가 패션 잡지를 보고 발끈한 적이 있다. "쉬크한 느낌의 골드 귀걸이와 함께 블랙 앤 화이트의 믹스매치" 그 비슷한 기분이 요즘 나를 심심하게 두질 않는다.
지금도 방송되고 있는 "100분 토론".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대권 정책으로 제안한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기술적인 부분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저 잠자코 보는 중이다. 그때! 내 귓가를 거칠게 스치는 낱말과 문장들이 한 노교수의 입에서 쏟아진다. 서울대 지리학과 유우익 교수.
"……시간을 미니마이즈(minimize)하고, 코스트(cost)를 세이브(save)할 수 있어요."
어느 나라 말인지. 꼭 영어 낱말을 써야 했나? 시간은 왜 시간이라고 했을까. 유우익 교수의 언어 구조 가운데, "어휘부"는 우리말이 아닌 영어로 대체되어 있는 것 같다. 통일성 있게 "타임"으로 왜 쓰지 않았을까. 자기 주장을 상대방에게 설득시키면서 어쩔 수 없이 써야만 하는 전문 용어가 있을 수도 있다. 여러가지 개념들을 압축 프로그램으로 꽁꽁 압축하듯 뭉쳐놓은 전문용어들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들의 세계에서 그 용어를 쓰는 것은 시간도 줄이고, 명확한 것을 가리킬 수 있어서 좋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전문용어도 아니고 일상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표현을 왜 어렵게 쓰나. 우리 사회에 가득한 "영어(언어) 권력"에 기대고 있는 걸까, 중졸 이하의 시청자들을 배제하려 하는 걸까.
언어의 폭력. 상상 이상으로 잔인한 폭력성이 숨어있다. "전문 지식"을 배운 사람들의 많은 수가 자신들만의 암호로 그들의 지적 재산권을 보호한다. 쉬운 말로 충분히 풀어서 설명하면, "일반 대중"들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이 많다. 내 생각에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말이나 주장은, 쉽게 풀어서 알기 쉽도록 하는 게 제대로 된 일이 아닐까 싶다. "전문 용어"를 잘 알지 못하는 "일반 대중"은 전문 용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전문가"의 권위에 기가 눌린다. 처음 눌린 기가 전문가의 "지식"이라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뒤에 연달아 나오는 "전문 용어들"─특히, 영어나 난감한 한자조합으로 된─이 일반 대중의 귀와 입을 막아버리고, 열심히 운동하는 뇌까지 일시정지 시켜버린다.
전문가들은 종종 쓸 필요도 없는 외국어 단어를 우리말 글월(문장)구조에 끼워 넣는다. 우리 나라의 인터넷 기반이 워낙 튼실한 덕분인지, 우리말의 민주주의는 생각보다 일찍 왔다. 이제는 우리말의 민주주의를 넘어서서, 세대-지역 간의 "언어 지방 자치 시대"가 온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시간을 미니마이즈하고, 코스트를 세이브할 수 있어요."하고, "니마 병진, 즐~"하고 뭐가 다를까. 앞의 말은 전문가의 말이고, 뒤의 말은 철없는 누리꾼의 말인 게 차이일까. 언어 지방 자치가 동, 면, 리 단위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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