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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하는 건축가 | 故 정기용, 마지막 1년.
    영화/공연 2012. 5. 26. 19:22




    말하는 건축가 (2012)

    Talking Architect 
    9.4
    감독
    정재은
    출연
    정기용, 승효상
    정보
    다큐멘터리 | 한국 | 95 분 | 2012-03-08
    다운로드 글쓴이 평점  


    우아란 건축물이 힘만 쓰는 것이 아니라 세련되고 경제적인 모습으로 저항의 행동을 할 때-지탱하거나, 가로지르거나, 보호할 때-드러나는 특질이다. 자신이 넘어선 난관을 강조하지 않는 겸손함을 보여줄 때 드러난다는 것이다. -p.220 알랭 드 보통 <행복의 건축>

      예술의 범주는 의외로 다양하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음악-미술-조각을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말과 글을 재료로 삼아서 예술을 만들면 '시, 소설'이 되고, 필름에 담으면 '사진, 영화'가 된다. 조금 더 나아가면, '설치 미술'과 '가구'에 이어 '건축물'까지 도달한다. 여러 분야의 끝을 잡고 그 줄기를 찾아가면, 결국에는 '예술―사람'으로 이어진다. 르네상스 시절 피렌체의 천재들이 바로 역사적 증거들이다.


      예술은 사람을 위해 사람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지 않을까. 그런데 최근 짓는 건축물들을 보면, 사람이 소외된 느낌이 든다. 이 영화의 주인공, 건축가 정기용은 건축의 중심에 사람을 두었다.


      건축은 다양한 소재로 공간을 빚는 예술이다. 실용성과 예술성. 두 절벽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게 건축가이다. 어떤 건축가는 자신의 독창성을 자랑하는 쪽에 비중을 더 둔다. 이런 의도가 담긴 건축물은 주변 공간을 '배경'으로 만들어버리고 홀로 우뚝서려 한다. 반면에 어떤 건축가는 주변 공간과 그 공간을 채워갈 사람에 비중을 둔다. 이런 건축물은 있는 듯 없는 듯, 주변에 녹아들어 풍경이 된다.


      영화에서 정기용 건축가는 사람을 중심에 두고 말했다. 건물이 들어서는 곳이 시골이 됐든, 도시가 됐든 그에게 중요한 것은 화려한 공간이 아니라, 사람의 공간이었다. 그런 그의 철학이 담긴 사례 중, '안성면 주민센터'가 유명하다. 무주군 안성면에는 목욕탕이 없었다. 이곳 주민들은 목욕을 하려면 차를 타고 읍내까지 나가야 했다. 마침 주민센터를 새로 짓는 공사를 하게 됐을 때, 정기용 건축가는 주민들과 대화를 시작했다. 단지 현장과 책상을 오가며 도면을 그리는 게 아니라, 주민들을 만나서 그들의 가려운 곳을 물었다. 결과는 '목욕탕을 넣은 주민센터'였다.


      목욕탕을 이용하는 주민들에게, '이 건물을 지은 사람이 누군지 아느냐'고 묻는 장면이 있다. 주민들은 '모른다'고 대답했고, 건축가는 한 켠에 앉아 조용히 생각하고 있었다. 건축가의 자의식보다, 사람들을 그곳에 담은 결과처럼 보였다.


      정기용 건축가는 영화 내내 정말 열심히 말한다. 겨우 속삭이는 목소리는 그의 목 안에 죽음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자신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말하는 모습이 강렬했다.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두 가지가 보였다. 첫째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건축을 널리 알려서,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으로. 둘째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소통으로 빚어내는 조화를 지향하는 노력으로 보였다. 그래서 감독은 그를 '말하는 건축가'로 정의했는지 모르겠다.


      알랭 드 보통의 <행복의 건축>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는 사람들이 무엇이 결여되어 있기에 저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할까 하고 물어야 한다. 그들의 선택에 열광하지는 못한다 해도 그들의 박탈감은 이해할 수 있다. -p.175

      최근 몇 년 간, 서울시에서 진행한 건축물을 보자면 자꾸만 윗구절이 떠오른다. 그들은 무엇이 결여되었기에 저 건축물을 짓자고 결정했을까.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극장을 나서면서 한숨이 나왔다. 왜 하늘은 좋은 사람들을 빨리 데려가는 걸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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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oem_정원사_책들이 있는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