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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한 사전 (舟を編む)
    영화/공연 2014. 9. 11. 17:50



    행복한 사전 (2014)

    The Great Passage 
    8.8
    감독
    이시이 유야
    출연
    마츠다 류헤이, 미야자키 아오이, 오다기리 조, 쿠로키 하루, 와타나베 미사코
    정보
    드라마, 코미디 | 일본 | 133 분 | 2014-02-20
    다운로드 글쓴이 평점  


    "자네는 '오른쪽'을 설명할 수 있는가?"

     

      익숙한 단어에 대해 설명을 해보라고 하면, 굉장히 난감해집니다.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 낱말일수록 그렇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태평양에서, 나침반도 없이 북쪽을 찾으라는 것처럼 막막해집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도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오른쪽'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낱말을 배우고 그 말들을 부려 쓸 수 있는 건, 어른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이해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낱말에 실린 '마음과 감정'을 체득했기 때문일 겁니다. 신문을 보면 자주 접하는 기사가 있습니다. "SNS, 인터넷 때문에 언어가 망가지고 있다"는 목소리들. 그 이야기는 옳기도 하고 틀린 것 같기도 합니다.

     

    1. 감독의 센스

     

      이 영화는 일본의 국어사전을 펴내는 사건을 큰 줄기로 삼고 있습니다. 21세기, 인터넷, 스마트 폰 시대의 국어 사전. 이 낱말을 본 뒤,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낡음, 구닥다리, 시대에 뒤쳐진'과 같은 느낌을 받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시이 유야 감독은 출판사 사전 편집부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느낌'을 영상으로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오른쪽의 밝고 깨끗한 신축 사옥과 왼쪽의 어둡고 낡은 사옥. 현무출판사(玄武書房)는 두 동의 건물이 있습니다. '돈 되는' 출판물들은 신축 사옥에서 주로 하고, '사전편집부'는 있는 듯 없는 듯 오래된 사옥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책'이라는 정체성마저 모호해지는 '국어사전'에 초점을 둡니다. 그리고 사전 편찬에 매달리는 사람들의 '삶'에 무게를 두고 풀어갑니다.

     

    2. 섬세한 '이름'

     

      주인공의 이름은 마지메 미쯔야(馬締光也, まじめ みつや)입니다. 일본어로 '마지메'는 '진면목 真面目'이라고 쓰고, '진심, 진정성, 성실함, 착실함'의 의미로 사용합니다. 대체로 소설이나, 영화 속 주인공의 이름은 그 사람 성격을 은근히 드러냅니다. 영화는 줄곧 '마지메'의 일과 삶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스스로 '마지메'라는 표제어에 맞는 설명을 채워 보세요."라고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출판사의 이름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현무출판사(玄武書房)"도 허투루 붙인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좌우에 든든한 사람이 있을 때, 우리는 종종 '좌청룡 우백호'를 이야기합니다. 이 이야기의 뿌리는 도교와 동양 신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동서남북과 중앙을 지키는 수호신이 있고, 각자 상징하는 색깔과 덕목이 있다고 합니다. 남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 좌측은 청룡이, 우측은 백호가 든든히 지켜줍니다. 남쪽은 봉황과 비슷한 주작이, 북쪽은 거북이와 뱀이 섞인 현무가 지키고 있습니다.

     

      현무는 방향의 기준이 되어 줍니다. 깊고 고요한 밤하늘, 북쪽에서 한결같이 빛나는 북극성같은 존재입니다. 그리고 거북이처럼 꾸준하고, 뱀처럼 현명합니다. 15년의 시간을 담아 사전을 펴내는 현무출판사 사전편집부. 출판사 이름 자체가 사전의, 사전 편집인들의 삶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3. 낱말의 일생

     

      단어도 생명이 있습니다. 사람처럼 '생로병사'가 있지요. 엄마가 아기를 낳는 것처럼, 사람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냅니다. 우연한 계기일 수도 있고, 정부가 계획적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태어난 낱말은 생명을 얻는 순간부터, 성장해갑니다. 아기의 한 달, 100일, 1년이 몰라보게 다른 것처럼, 낱말도 태어난 순간부터 모습을 바꿔갑니다. 대나무가 마디를 짓고 자라는 것처럼요.

     

      낱말은 시대와 지역을 공유하려는 성격이 있습니다. 동년배들 사이에서는 그들끼리만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단어가 생깁니다. 새로운 단어가 생기기도 하지만, 이미 있던 낱말에 새로운 의미를 붙여서 쓰게 됩니다. 예를 들면, '헐~, 솔까말, 주작질'과 같은 단어들이 그렇습니다. 한 무리 안에서 유행하다가 생명을 얻고, 세력을 키우는 낱말도 있습니다만, 한때 잠깐 유행하다가 사라지는 말들도 있습니다. "따봉"같은 말은 아주 늙어버렸지요.

     

    4. '틀린 용례'는 없습니다.

     

      마지메의 첫사랑 카구야는 일식 요리사가 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1995년, 일본에서조차 '일식 요리사'에 담겨 있는 성별은, '남자'였습니다. 카구야는 마지메에게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여자가 일식 요리사가 되면 안 되는 거냐고'요. 그때 마지메는 대답합니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전 편집부의 최연장자이자, 감수를 맡은 마츠모토 선생은 참 본받고 싶은 어른입니다. '올바른 말'을 잘 알고 부려 쓰지만, 최신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이 줄여쓰는 말, 기술의 발전에 따라 새로 생기는 말도 가감 없이 받아들이고, '현재, 지금'에 초점을 맞춥니다. 마츠모토 선생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현재의 말을 담고 싶습니다. 줄임말, 비속어 같은 말도 '잘못된 용례'로 하더라도 사전에 싣고 싶습니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틀렸다'는 총소리를 듣고 출발합니다.


    5. '진심'을 다하는 '지금'

     

      귀여운 장면이 있습니다. 주인공 마지메가 카구야에게 고백하는 장면입니다. 마지메는 '살아있는 입말'보다 '책에 박힌 글말'에 익숙한 사람입니다. 편지를 쓰는데, 기가 막히게 씁니다. 그의 직장 선배인 오다기리 조는 그의 편지를 펴보고 한 마디 합니다. "이 편지, 전국시대 장군한테 바치는 거냐?!" 그리고 연애고수다운 충고를 합니다. "그대로 건네봐. 임팩트는 최고야. 너에게 마음이 있다면, 어떻게든 읽어낼 테니까. 그대로 줘."

     

      마지메는 편지를 카구야에게 건네고, 다음 날 카구야는 평소보다 훨씬 늦게 퇴근합니다. 도저히 읽을 수가 없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읽느라 늦었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메에게 요구합니다. 편지 말고, 확실하게 '지금, 말로 얘기해달라'고요. 끈적끈적한 사랑이 아닌, 봄바람 같은 사랑으로 웃음짓게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궁금하시면 영화를 보세요. ^^) '진심을 담은 지금의 말'은 그 어떤 단어, 글보다도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

     

      영화의 종반, 사전 출판에서 가장 큰 '위기'가 닥칩니다. (그 사건은 추측을 해보셔도 좋고,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셔도 좋습니다.) 기획부터 15년의 세월이 흐른 뒤, 결국 국어사전 <대도해 大渡海>가 출판됩니다. 마지메는 마츠모토 선생의 영전 앞에서 지난 시간을 되새깁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새말 채록 카드'를 꺼내고, '내일'부터 <대도해> 개정판 작업을 시작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사전을 만드는 일은 혼자 할 수 없었습니다. 대학원에서 언어학을 전공한 마지메 혼자서 할 수 없었고, 마츠모토 선생도 모두 감당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출판 중단의 위기 상황을 구해내는 건, 날라리 같았던 오다기리 조의 행동력이었습니다. 원작자의 의도가 슬쩍 비쳤습니다. 원래의 제목인 '배를 엮다'는 우리의 '삶'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거대한 배는 혼자 만들 수 없습니다. 항해도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도 같은 일인 것 같습니다. 눈짓과 몸짓만으로도 소통이 되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정말 신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이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안드로메다에서 온 것 같은 사람도, 사실은 나름의 몫을 짊어지고 있는 지구인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선장과 항해사, 갑판장, 통신사, 기관장 그리고 도선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항구'를 향해 항해를 하는 것처럼, 사전을 만드는 일도,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일도 모두의 도움과 역할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한 배가 잠시 쉬었다가 다시 출발하고, 마지메가 사전을 출판하자마자 개정판을 준비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매듭을 지어가며 인생의 바다를 건너겠지요.


      마츠모토 선생의 '오른쪽'은 이런 설명이었습니다. "숫자 10에서 '0'이 있는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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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oem_정원사_책들이 있는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