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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감기는 외롭다.
    無序錄 2011. 12. 28. 19:15

     

      감기는 외로운 병이다. 콜록콜록. 옆에서 이 소리만 들려도, 온몸이 흠칫한다. 주변 사람들이 드러내 놓고 그런 반응을 보이지는 않지만, 내가 그들 앞에서 기침하고, 코를 풀어대는 건, 그리 산뜻하지 않다. 스스로 나를 그들로부터 소외시킨다. 하루가 아쉽다고 눌러 앉아있던, 도서관도 감기와 동거하는 기간에는 별도다. 도서관은 잘 있나. 150원짜리 씁쓸한 자판기 커피는 여전하겠지. 취업준비하는 친구는 아직도 도서관에서 꼬부랑 알파벳과 씨름하고 있을까.

     

      코감기는 더하다. 코감기 약에는 뭐가 들었을까. 난 코감기약에 반나절 이상을 죽어있었다. 살아있는 시간도 몽롱한 기분으로, 나는 내가 아니었다. 아침에 뽑아 마셨던, 노란색 오렌지 주스의 맛도 죽었다. 주스에서 왜 쓴맛-콧물맛만 나는건지. 오늘 수업은 혼자 구석에 앉아서 물만 홀짝 거렸다. 코도 풀고. 말을 했더니, 대각선 뒷쪽에서 뭐라뭐라 한다. ...목소리... 라는 말 밖에 듣지 못했지만, 아무래도 감기가 제대로인가 보다.

     

      이온음료와 감기약은 사랑한다. 내 몸속에 들어와서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종합감기약과 포카리스웨트의 살떨리는 만남은, 내 눈꺼풀을 떨도록 만들었고 내 영혼의 무게도 가볍게 만들었다. 그 둘의 사랑 덕에, 집에와서 넉다운. 나를 반겨주는 것은 벌써 4년이나 된 침대뿐이다.

     

      한참을 자고 일어났다. 정신을 차려보니 태양은 어기적어기적 서쪽으로 넘어간다. 냉장고를 열어 뱃속을 본다. 밥통을 연다. 밥은 있다. 잘됐다. 오늘은 비빔밥이다. 도라지나물, 콩나물, 김치, 계란후라이, 그리고 잡곡밥. 태양초 한 숟갈. 한 입 물어본다. 맵고 짜다. 한국인의 매운맛이라고? 아니면 오색찬란한 한국인의 문화가 들어있는 하나의 소우주? 어쨌든 내 입속에서 혓바닥을 제대로 고문하는 햇살받은 비빔밥이다. 감기약과 국화차로 다시 한 번 죽게됨.

     

      냄새가 났다. 꾸리꾸리한 냄새가 굳게 닫힌 내 방문의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5일 전에 달리기를 하고 벗어 놓은 양말이 발효되는 냄새일까-하는 불길한 상상을 하던 중에 깨달았다. '청국장'이다. 모친은 청국장을 끓인다. 창문 좀 열고 끓여 달라고 매번 사정했지만, 이번에도 '아차 깜박'했단다. 간사한 후신경. 오렌지 주스의 맛은 모르다가, 그렇게 맡기 싫은 냄새에는 그토록 신경질적으로 반응할 필요가 있었는가. 저녁은 청국장과 깻잎 겉절이다. 상큼한 깻잎의 향이 간장과 마늘, 그리고 고춧가루에 적절히 버무러져 있었다.

     

      <옥루몽>을 폈다. 감기약도 목으로 넘겼다. 슬금슬금 잠이 올테지. 부모님은 주무시고, 동생은 없고. 잠에서 깨고 보면, 늘 혼자다. 잠들기 전에도 혼자다. 코감기는 외롭다. 목감기는 힘들다. 감기는 내 마음까지 외롭게 만든다. 외롭고 어쩐지 서글픈 마음이 스믈스믈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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