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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만 부추기는 언론無序錄 2011. 12. 28. 19:37
사교육이건, 공교육이건 각각 장단이 있다. 공교육에서 채울 수 없는 부분은 사교육을 통해 채울 수 있는 부분도 있는 것이고, 사교육의 태생적 한계─공교육에서 인정되는 '상위급 학교'로 진학─는 절대로 극복할 수 없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교육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소수의 "라도선생" 1만 제외한다면 그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제자들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열과 성을 보이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자신의 영달보다 제자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리라.
신문기사, 언론사에서 발행하는 주간 시사 잡지의 르포 형식의 기사들은 가끔, 교육계에 투신하고자 하는 나의 열정에 나이아가라 폭포를 쏟아 붇는다. 특히 '조-중-동'라인의 親기업 언론은 더욱 심하다. 이번 기사는 <주간조선>에 실려 있다.
학원이 학교보다 나을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학원만이 갖을 수 있는 장점. 소수의 학생들의 실력과 개성에 맞는 이른바 '맞춤형 교육'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사에 따르면, 이 학원은 "특목고 진학"을 "전문"으로 삼고 있는 입시학원이다. 그렇기에 이미 원생 선발 절차도 까다롭다. "공교육"에서 일정 수준이 되어야 하고, 선발고사를 치르고 나서는, 성적과 진학하고자 하는 "특목고"에 따라 반배정을 받는단다.
학원에 대해 악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다. 나의 인생 행로가 어떻게 될지도 모를 일이고, 학원가에서 학생들을 최선을 다해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노고도 알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서는 별 소리를 하고 싶지 않다. 이 글에서 트집을 잡고자 하는 것은, 언론사와 학부모 그리고 학생이다.
학교는 언론이 떠드는 "잘 나가는 학원"에 비하면 굉장히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다. 교원이나 학생의 후생복지 측면의 것은 차치하고, "교육-학습"에 대해서 생각하면, 이건 아니다. 학교는 모든 사회구조, 권력구조와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 이 부분을 개인이나 한 학교가 흩뜨려 놓을 수 없는 일이다. 모든 교육 활동은 위와 같은 구조를 전제하고 이루어 진다.
한 사람의 교사는, 요즘엔 많이 줄어서 30~35명 내외의 학생들을 두고 수업을 하게 된다. 하지만 학교에서 성적에 따라 학생을 나누는 것은 "언론에서 금지"하고 있다. "우열반"이라는 것에 대한 논란을 항상 제기한다. 나는 입시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관점에 서 있기에 입시 열풍에 대한 비판을 먼저 하고 싶지만, 글이 지나치게 길어질 것 같아서, 이 부분에 대한 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링크한 기사에 관련해서만 따지기로 한다.
언론사는 공교육의 약점을 잘 알고, 그것을 노린다. 공교육은 전인교육을 목적으로 한다. 성적만이 능사라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것은 "표면"에 내걸고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사회는 표면적인 "대의명분"에 자유롭지 못하다. 언론은 이 부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교실 붕괴, 하향 평준화 등등의 "추측성" 기사를 들먹이며, 사교육과 공교육의 경쟁을 부추긴다. 언론의 역할은 열정적인 사교육을 통해서 공교육에 효율적으로 적응해서 명문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지상 최대의 과제로 학부모를 선동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학부모는 신화(mythology)에 휘둘리며 산다. 가령, 자신의 아이는 천재인데, 공부를 하지 않아서 성적이 잘 안나온다는 이야기나, 이번 기사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유명한 학원에 들어가기만 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이나, 학교 교사들은 무능력하다는 것 등등.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한 문단으로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신화'라고 단정지어 버린 것은, 학부모들의 환상에는 근거가 없거나, 근거가 되는 자료조차 추측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주간조선>의 기사 제목 역시, 학부모들이 갖고 있는 신화를 강화하고, 자극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학생들은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과대평가를 내린다. 지금도 이런 말이 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2학년까지는 누구나 말하는 서울대, 연대, 고대를 갈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우대받는 계급처럼 인식되어 버린 고3 수험생이 되고나면, 공부잘하는 상위 4% 동료들에게 시기 및 질투, 열등감에 사로잡혀 평생토록 "한 많은 이 세상"을 탓하며 살아간다. 그리고는 바따이유의 이론대로, 자식들에게 자신의 꿈을 인계하고 강요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학원이 학교보다 나을 수 있는 가능성과, 학교가 학원보다 나을 수 있는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하는 사실이다. 그것이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라는 부분을 어느 곳에서도 말하지 않는다. 일부 무능력한 교사는 유명 학원에 학생을 추천하기도 하고, 무양심의 학원은 학교에서 학생 명단을 돈 주고 사서 친절하게 전화까지 직접 하기도 한다. 기출 중간-기말 고사들의 문제들을 유출, 입수해서 당 학원의 원생들에게 풀게 하는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왜 함께 살아가는 것을 모두가 불가능 하다고 말하는 것인가. 왜 무엇은 무엇보다 열등하고, 무엇은 우등하다고 말하는가. 각 인간이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능의 다름과, 인간 개성의 다름을 표면적으로는 인정하면서 유독, "교육"에 있어서는 그 부분을 무시하는 것인가. 다시금 촘선생을 떠올리며, <조선일보>에 대한 불신감을 더하고 말게 된 기사였다.
- 1. 라도선생 :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속물 선생. 스스로 선생질이라 말하는 경향이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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