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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 알랭 드 보통문학 2012. 1. 4. 01:17
-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양장)
- 국내도서>시/에세이
- 저자 :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 박중서역
- 출판 : 청미래 2010.07.01
인상깊은 구절
왜 우리는 사물들을 더 풍부하게 음미하지 않는가? 이것은 부주의나 게으름의 문제를 넘어서는 문제다. -p.199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에 창을 열고 내다봤다. 평소와는 뭔가 달라진 풍경에 놀라고 말았다. 여전히 푸른 잎사귀가 가득한 나뭇가지 한 귀퉁이에 가을이 내렸다. 평소라면 그냥 무심코 지나쳤을 순환적인 풍경이 왠지 너무나도 경이롭게 다가왔다. 마치 축축하게 젖어 있는 숲에 붉고 노란 물감 한 두 방울이 떨어져서 번지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가을 빛이 떨어진 나뭇가지 끝을 보고, 순식간에 7년 전 봄날의 기억으로 옮아갔다. 따뜻해지기 시작하던 초봄, 버스정거장으로 가던 길에 피어있던 노란 개나리가 떠올랐고 유난히 포근했던 햇볕까지 느껴졌다. 그 기분을 그대로 간직한 채 걸었던 길과, Take out으로 사들고 나왔던 아메리카노의 따뜻함과 향기까지―감당할 수 없는 홍수처럼 터져나왔다. 그때 생각했다. 이런 걸 두고 프루스트적 경험이라 말하는 게 아닐까-하고. 아마도 프루스트는 이런 경험을 책으로 남기고 싶었지 않았을까. 물론 정말 많은 이유 중에 하나겠지만 말이다.
몇 년 전에 친구와 인사동을 걸으며 나눈 기억이 난다. 알랭 드 보통을 통해 남자를 구분하는 방법이랬던가. "알랭 드 보통을 아는 남자와 모르는 남자 그리고 그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남자"로 나눈다고 했다. 그 친구의 말을 옮겨 놓으면,
1. 보통 아저씨를 아는 남자
이런 남자는 기본적으로 책을 꽤 읽는 사람으로 간주해도 된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서점에 자주 가는 남자로 취급해도 무리가 없다. 소설 이외의 문학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알고 있는 남자로 판단해도 괜찮음.
2. 보통 아저씨를 모르는 남자
책은 보통 한 달에 한 권 이상 접하지 않는다고 간주해도 틀린 적이 드물다―무협지, 만화책은 제외하고―. 책을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는 것보다 영화, 스포츠, 시사상식으로 화제를 삼는 게 훨씬 친해지기 쉽다.
3. 보통 아저씨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남자
책을 많이 읽는 남자로 생각해도 무리없다. 진지한 농담을 꽤 잘 받아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우리나라 대부분의 남자들과 대화가 잘 안 통할 가능성도 있다. 작은 것을 놓치지 않으며 분석하려는 경향이 있고, 유쾌하지만 가볍지는 않다.
친구의 얘기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수긍할 부분은 있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이렇게 주석을 달 수 있는 사람은 알랭 드 보통 정도밖에 없을 것 같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고, 시시콜콜한 것까지 표까지 그려가며 설명해주는 난감한 친절함. 프루스트가 숨기고 싶었을 법한 것까지 섬세하고도 대범하게 까발리는 능글맞은 유쾌함까지.
우리는 속되게는 '척한다', '지루하다', '재미있다'고 부를 수 있는 것들과 더불어 약간 지나치게 의식적으로 친절한 태도를 표현하기 위해 우리들끼리 '프로수트하다'라는 동사를 만들어냈다. -p.168
이 책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의 원제는 "How Proust can change your life"다. 어떻게 프루스트가 당신의 삶을 바꿀 수 있을까. 보통 아저씨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확인한 방법을 아홉가지로 나눠서 알려준다.
1. 현재의 삶을 사랑하는 법
2. 자신을 위한 독서법
3. 여유 있게 사는 법
4. 훌륭하게 고통을 견디는 법
5. 감정을 표현하는 법
6. 좋은 친구가 되는 법
7. 일상에 눈을 뜨는 법
8. 행복한 사랑을 하는 법
9. 책을 치워버리는 법
푸르스트의 말을 보통 아저씨는 잘게 쪼개고 다시 섞고, 적절한 판단을 내려가며 얘기를 이어간다. 맹목적인 추종도 없으며 옳다고 생각한 것에는 끄덕임을, 아니다 싶은 부분에는 딴지 걸기도 주저하지 않는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한 문장으로 줄이자면,
"살아가며 겪는 매 순간의 작은 부분마다 경이롭게 느끼며, 어느정도의 자기 희생은 감수하고 무엇이 되었든 간에 맹목적인 추종은 하지 말기를 바람"정도로 압축할 수 있겠다.
한 번 읽고 프루스트에 대한 희미한 인상과, 책에 대한 내용을 많이 찾았다. 이런 나를 발견한 순간 다시금 이 책의 한 구절이 머리를 쳤다.
현실에서 모든 독자는 자기 자신의 독자가 된다. 책이란, 그것이 없었다면 아마 독자가 자신에게서 결코 경험해 보지 못했을 어떤 것을 분별할 수 있도록 작가가 제공하는 일종의 광학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책이 말하는 바를 독자가 자신 속에서 깨달을 때 그 책이 진실하는 것이 입증된다. -p.36
다시 읽기가 필요한 책이다. 프루스트의 마들렌 이야기를 다 읽고,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좀 더 읽고 다시 읽어야 할 것 같은 에세이. 책에 대한 주석달기는 여전히 학자들에 의해 계속되고 있겠지만, 보통 아저씨처럼 순수 학문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주석을 다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지금 쓴 이 글도 주석에 대한 주석달기가 되겠다.)
차분한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한 번 물어봐야겠다.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그렇다는 대답이면, 이 책을 권해봐야지.
<책에서>
당신이 말한 대로 우리가 죽음의 위협을 받게 된다면 삶은 갑자기 놀라운 것으로 보이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 대재난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느 것도 하지 않을 테지요. 왜냐하면 다시 정상적인 삶의 심정으로 돌아가게 될 테니까요. 거기서는 무관심이 소망을 죽입니다. -p.13
"미학적으로 볼 때 인간 유형은 매우 제한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항상 우리가 아는 사람들을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p.32
프루스트나 호메로스를 오랫동안 접하게 되면, 무섭도록 낯설게 보였던 세계가 사실은 우리 자신의 세계와 본질적으로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우리가 집처럼 편하게 느낄 수 있는 곳들의 범위가 넓어지게 되는 유익함이 생긴다. -p.39
대화는 동료들을 즐겁게 한다는 명분을 위해 그 자신을 포기할 것을 요구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눌 때 말을 하는것은 더 이상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그들의 모습에 자신을 맞춰야 한다." -p.165
사실 존재란 바로 우리가 그것을 무시하고 간과하게 만드는 요소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시각적 접촉만으로 모든 일을 다 했다고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p.224
그는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를 깨닫기 위해서는 대가가 느꼈던 것을 자신 속에 다시 그려 보려고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기" 때문에 독서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p.244
(독서를) 학문 분과로 만드는 것은 단지 '자극'에 불과한 것에 너무 큰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독서는 정신적 삶의 문턱 위에 있다. 그것은 우리를 정신적 삶으로 인도할 수 있지만, 정신적 삶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가장 훌륭한 책들조차도 결국에는 내팽개쳐야만 하게 마련이다.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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