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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선생 지식경영법 | 정민비문학 2012. 1. 1. 23:02
-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양장)
- 국내도서>인문
- 저자 : 정민
- 출판 : 김영사 2006.11.25
인상깊은 구절공부란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어려운 것을 쉽게 풀이하는 절차다. ……고수들의 말은 쉬워 못 알아들을 것이 없다. 하수들은 말은 현란한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읽을 때는 뭔가 있는 것 같다가도 읽고 나면 남는 게 없다. -p.70, 단계별로 학습하라-종핵파즐법(綜覈爬櫛法)
언젠가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정리해보고 싶다. 인류가 찾아내고, 생각했던 모든 종류의 지식을 하나의 뿌리로부터 시작하는 마인드 맵을 그려보고 싶다. 죽기 전까지 그 작업이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허무맹랑할 수도 있고, 의미 없다 여길 수도 있다. 다행인 것은 비슷한 생각을 했던 사람이 있었고, 가능한 방법을 이미 제시하고 증명했다는 점.
컴퓨터의 발명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었고, 인터넷의 대중화는 생활의 혁명이었다. 컴퓨터와 인터넷, 디지털로 정리된 자료들은 정보와 지식의 급격한 재생산을 이끌었다. 인터넷과 함께 자란 성인들은 더 이상 새로운 뉴스를 읽기 위해 종이 신문을 들추지 않는다. 웹 브라우저를 클릭, 인기검색어를 누르거나 언론사 홈페이지를 클릭. 정말 인터넷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정보를 찾아다니지 않고 자기에게 정보가 찾아들게 한다.
쏟아지는 지식과 정보들. 유용하거나 쓸모없는 정보가 쓰나미처럼 밀려든다. 경제학자들과 주식 고수들은 얼른 지식과 정보를 활용해서 부를 창출하라는 조언을 해댄다. 이건 뭐, 자장면이냐 짬뽕이냐를 넘어선 문제다. 베트남 쌀국수, 파스타, 라멘 등등 뭘 먹어야 좋을지 고민되는 것처럼, 고민거리의 범위도 예전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확장됐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리터러시(literacy)다. 자장면, 짬뽕, 베트남 쌀국수, 파스타, 라멘의 종류를 꿸 수 있는 정보인식 및 구분력이 필요하다. 걷잡을 수 없는 정보들을 몇 가지 도구와 방법을 사용해서 진짜와 가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서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다산 정약용처럼.
저자가 붙인 '지식경영법'이란 제목은 이 책을 확실하게 요약했다. 다산 선생이 책을 만들거나, 자료를 정리할 때 쓴 공부방법들을 적절하게 잘 응용한 책이었다.
수많은 정보를 앞에 두고 처음에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가치판단의 문제다. ……먼저 핵심개념을 잡아야 한다. 핵심을 잡으려면 안목과 식견이 서야 한다. 안목과 식견은 어떻게 갖출 수 있는가? 일단 옥석을 가리지 말고 따져보고 헤아려보아야 한다. -p.26, 단계별로 학습하라-여박총피법(如剝蔥皮法)
뭐든, 실마리를 찾으면 반은 끝난 거다. 어떠한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목적이며,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내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일을 시작할 수 있다. 다산 선생의 가르침의 첫째도 바로 그 부분이었다.
시작부터 냉수 한 사발부터 정수리에 부어버리는 다산 선생. 그 정신을 제대로 전파하는 저자의 설명에, 책장은 쉽게 읽힌다. 600페이지에 정리된 10강 50목 200결의 내용이 결코 가볍지 않지만, 어렵지 않게 읽히는 건 오롯이 정리와 실용의 기술에 충실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대학원에서 자신의 학문 세계를 열기 시작한 초보 연구자, 공부하는 방법을 알고 싶어하는 학부생, 좀 조숙한 고등학생들에게 최우선적으로 권하고 싶다. 당장 급한 공부에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 상당하다. 끝없이 변하고 있는 세상에 뒤쳐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회인에게도 권하고 싶다. 다만, 한 번 읽어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하고 곁에 두고 잊혀질 때마다, 한 달에 한 번씩 내키는 부분을 반복해서 읽는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지식을 다루는 방법과 삶에 대한 진실한 자세, 쓸모 있는 삶과 그 안에서의 여유를 다산 정약용의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담아낸 책이다. 좌절된 삶에서 슬퍼하지 않고 사람을 사랑하고, 학문을 사랑하고, 여흥을 즐겼던 다산선생의 모습까지 슬쩍 끼워넣은 저자의 글솜씨 또한 일품이었다.
따끔한 충고도 있고 마음에 깊이 새길 이야기도 있다. 뒤로 갈수록 약간 지지부진하고 거추장스럽다는 느낌과 앞 쪽과 내용이 겹친다는 느낌도 들지만, 다산 선생의 공부스킬을 배울 수 있다면 그 정도는 간식정도로 여기면 되지 않을까.
<책에서>
나는 다산을 '세계의 정보를 필요에 따라, 요구에 맞게 정리해낼 줄 알았던 전방위적 지식 경영가'라고 부르겠다. -p.14, 서설
세상에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변해야 할 것과 변해서는 안 될 것도 있다. 동서남북은 내가 어디에 있든 변하지 않고, 변할 수도 없다. 하지만 상하좌우는 내가 선 위치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가변적이다. 동서남북을 상화좌우로 알 때 문제가 생긴다. 상하좌우를 동서남북으로 착각해도 비극이다. -p.51, 단계별로 학습하라-축기견초법(築基堅礎法)
내가 왜 이자리에 있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또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이런 물음에 수시로 자답해보아야 한다. 좌표를 설정하지 못하면 망망대해에서 나침반 하나 없이 떠돌다 풍랑을 만나 좌초하고 만다. -p.51, 단계별로 학습하라-축기견초법(築基堅礎法)
역경(逆境)에 쉽게 좌절하는 사람은 순경(順境)에서 금방 교만해지게 마련이다. -p.57, 단계별로 학습하라-축기견초법(築基堅礎法)
목차는 생각의 지도다. 범례는 생각의 나침반이다. 지도와 나침반 없이 먼 항해를 떠날 수 없듯이, 제대로 된 목차와 범례 없이 큰 작업을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는 없는 법이다. 먼저 목차를 세워라. 범례를 확정하라. -p.90, 정보를 조직하라-선정문목법(先定門目法)
상황이 같은가? 적용에 문제는 없는가? 무엇이 다른가? 어떤 점을 따로 고려해야 하는가? …… 내가 옛것에서 배울 것은 생각하는 방법뿐, 내용 그 자체는 아니다. 옛사람의 발상을 빌려와 지금에 맞게 환골탈태하라. 옛길을 따라가지 마라. 나만의 색깔로 나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나다. -p.92 / 101, 정보를 조직하라-변례창신법(變例創新法)
자료가 혼란스러워 갈피를 못 잡겠다고 투덜대지 마라.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다고 지레 겁먹지도 마라. 하나하나 따져서 진위를 헤아리고 정보의 값을 매겨라. 문제는 나에게 있다. 자료에 있지 않다. -p.112, 정보를 조직하라-취선논단법(取善論斷法)
책을 읽으면서 필요한 정보를 발췌하려면 먼저 정보를 발췌하는 주체의 주견(主見)이 확립되어야 한다. 무엇때문에 이 책을 읽는가? 이 책 가운데서 어떤 정보가 유용한가? 왜 그 정보를 필요로 하는가? -p.140, 메모하고 따져보라-초서권형법(鈔書權衡法)
쉬지 말고 적어라. 기억은 흐려지고 생각은 사라진다. 머리를 믿지 말고 손을 믿어라. 메모는 생각의 실마리다.메모가 있어야 기억이 복원된다. 습관처럼 적고 본능으로 기록해라. -p.159, 메모하고 따져보라-초서권형법(鈔書權衡法)
메모하고 정리하라. 그리고 그 내용을 글로 써서 질문하고 토론하라. 공부는 토론을 통해 발전한다. -p.204, 토론하고 논쟁하라-질정수렴법(質定收斂法)
덕담이나 주고받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해서는 학문의 발전은 있을 수 없다. 송두리째 의심하고, 남김없이 파헤쳐서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마라. -p.234, 토론하고 논쟁하라-절시마탁법(切偲磨濯法)
선입견을 버려라. 편견은 학문의 독이다. 권위에 편승하지 마라. 나이로 누르고 서열로 누르면 안 된다. 아랫사람의 견해에도 귀를 기울여라. 패거리지어서 짓밟으면 안 된다. -p.281, 설득력을 강화하라-공심공안법(公心公眼法)
상식과 타성을 걷어내라. 나만의 눈으로 보아라. 하던 대로 하지 말고 새롭게 해라. 관습에 전 타성으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 생각의 각질을 걷어내고 나만의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 인순고식을 버려라. 듣고 나면 당연한데 듣기 전에는 미처 그런 줄 몰랐던 것이 창의적인 것이다. 들을 때는 그럴듯한데 듣고 나면 더 혼란스러운 것은 괴상한 것이다. 이 둘을 혼동하면 안된다. 깨달음은 평범한 것 속에 숨어 있다. 그것을 읽어내는 안목을 길러라. -p.372, 권위를 딛고 서라-일반지도법(一反至道法)
훌륭한 리더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그들의 최대치를 도출해낼 수 있어야 한다. 개성을 무시하고 평준화시키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 -p.425, 과정을 단축하라-분수득의법(分授得宜法)
'문리가 터진다'는 말은 어려운 글을 줄줄 읽게 된다는 말이 아니다. 사물의 행간을 읽고 맥락을 소연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p.504, 정취를 깃들여라-득승양성법(得勝養性法)
역경 앞에 담대하라. 절망과 좌절을 딛고 일어서야 진짜 군자다. 오히려 그것을 밑바대로 삼아 견인불발의 정신으로 위기를 기회로 돌릴 수 있어야 한다. 가난에 주눅들어 뜻을 잃지 말고, 근검의 정신으로 마음을 다잡아라. 위기상황에 놓인 뒤에 그 사람이 보인다. 감춰져 있던 본바탕이 낱낱이 드러난다. -p.566, 핵심가치를 잊지 말라-간난불최법(艱難不摧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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