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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 | 노르망 바야르종비문학 2012. 1. 1. 21:52
촘스키처럼생각하는법말과글을단련하고숫자언어미디어의거짓으로부? 카테고리 지은이 상세보기
때론 어떤 긴 설명보다도 한 사람의 이름이 더 많은 걸 알려주기도 합니다. 이름이 갖는 무게감, 그 인생에 담긴 무게가 순식간에 머릿 속을 온통 헤집어 놓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지요. 이를테면, 세종대왕이나 김구선생, 동시대 사람을 거론하자면 이어령,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들이겠지요. 삶의 흔적 자체가 뒤따르는 사람들에게 선명한 지표가 되는 이름입니다. 위에 얘기한 사람의 이름은 대한민국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정도 비슷한 그림을 머릿 속에 떠올리게 됩니다.사람들은 각자 사물에, 사람들에게 나름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김춘수 시인이 노래했듯이 자기가 내키는 이름으로, 세상에 이름을 붙이고 자기와 관계를 맺게 되지요. 그 중에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은 비슷한 눈과 마음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여 친구가 되고, 하나의 무리가 되어갑니다. 이 말과 이어진 선 위를 봅시다. 정치적으로 보면 그게 좌파-우파가 되겠고, 경제적으로 보면 부르주아-프롤레타이아가 될 겁니다.
노엄 촘스키(Noam Chomsky_저는 촘선생이라 부릅니다). 이 사람을 많은 언론에서는 '좌파지식인' 또는 '진보지식인'이라 부릅니다. 진보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촘스키'의 이름은 '실천하는 지성', '참지식인' 이상의 의미로 마음 속 인물사전에 기록해 둡니다. 저도 촘선생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교육적 이상향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이 책,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은 촘선생을 끌여들였다는 이유로 장점과 단점을 갖는 듯합니다. 장점 한 가지와 단점 한 가지로 이 책을 갈무리해봅니다.
장 점 : 비판적 사고를 위한 구체적인 공구세트
촘선생은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라는 문제를 던집니다. 그 뒤를 이어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라는 책 3권을 쏟아내고,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을 폭로합니다. 한편으론 <지식인의 책무>를 담담하지만 힘있게 얘기합니다. 촘선생이 말하는 요지는 이렇습니다.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정신 똑바로 차려야 사기를 안 당한다."
정신을 똑바로 차린다는 말을 좀 진지한 말로 바꾸자면, "비판적 사고를 할 줄 안다" 정도가 되겠지요. 비판적 사고는 100분 토론에 출연해서 서로의 주장을 비난하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게 아닙니다. 사회에 넘쳐나는 정보를 하나하나 짚어보며, 따져 묻고 확인하는 작업을 거쳐서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진보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나, 열린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촘선생을 우러르는 건, 그가 비판적 사고에 도가 튼 사람이란 것도 한 몫 했을 것 같습니다.
비판적 사고. 이게 생각보다 꽤 어렵습니다. 예를 들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와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의 입장이 왜 다른지, 어떻게 다른지, 다른 게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지 한 눈에 알아채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세상을 읽는 방법을 익히고, 어떤 점을 주의해서 봐야할 지 난감합니다. 촘선생은 이 부분이 좀 아쉽습니다. 대학에서 언어학을 가르치는 교수를 맡고 있지만, 아무래도 가르치는 일보다 고민하고 연구성과를 내는 학자타입인 듯합니다.
노르망 바야르종이란 이 책의 저자는 촘선생이 불친절하게 "옛다"하고 던져 놓고 간 걸, 알기 쉽게 풀어줍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왠지 친하게 지내고 싶던 똑똑한 고등학생 형 같은 느낌이랄까요? 총 다섯 가지 비판적 사고를 위한 공구를 던져줍니다. 그 첫째는 '언어'입니다. 언어는 사람이 세상과 관계를 맺고 이해하는 가장 유용한 도구입니다. 그만큼 중요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까다롭기도 하지요. 둘째는 숫자. 조금 전문적인 수학적 자료가 제시되면 '그런가보다'하고 넘어가지 말라고 옆구리를 지릅니다. 셋째는 경험. 이제는 눈을 자신에게 돌려보길 주문합니다. 왜 "기록이 기억을 지배하는지" 이야기합니다. 그 뒤로, 과학과 미디어 검증 공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한 번 읽는다고 이 다섯 가지 공구를 전부 능수능란하게 쓰지는 못할 겁니다. 톱을 쓰거나 망치를 쓸 때, 주의와 연습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지요. 촘선생처럼 완벽하게 익히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산을 오를 때와 보이는 산을 오를 때가 다른 것처럼, 분명 달라진 느낌이 들 겁니다.
단 점 : 촘선생의 언덕
사실 이 책은 촘선생의 언덕에 기대어 있습니다. 촘스키란 이름의 커다란 범주의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주제를 어떻게 부각할까 고심한 흔적이 보입니다.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법>이나, <세상의 거짓말을 간파하는 법> 이런 책 제목이라면 이 책이 몇 부나 팔릴까요. 아마도 지금정도로 팔리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책의 원제도 촘선생 이야기는 없습니다. 책에 촘선생 이야기도 많지 않지요. 겨우 마지막, 미디어 비판도구를 설명하는 대목에야 등장합니다.
A Short Course in Intellectual Self-Defense(지적 자기방어법 강의)가 저자가 지은 원래 이름입니다. 하지만 출판사의 선택이었는지, 번역자 강주헌 선생의 선택이었는지 탁월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덜 알려진 저자의 이름보다, 진보적 실천적 지식인의 대명사로 촘선생을 간판으로 내밀었지요.
그 부분이 아쉬운 대목이었습니다. 비파적 사고 도구를 얘기하는 책이, 미디어와 세상에 속지 말기를 얘기하는 책이 일종의 과대포장 기법으로 몸을 치장했지요. 우리나라 책 읽기 시장을 감안하게 만드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촘스키에 흥미가 생겼다면, 서두에 언급한 책을 접하는 걸 권합니다. 이 책은 인문과학 서적이라기 보다, 사회과학-자기계발서에 포함되는 게 더 어울릴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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