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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 사이토 다카시
    비문학 2012. 1. 1. 21:56



    세계사를움직이는다섯가지힘욕망모더니즘제국주의몬스터종교
    카테고리 역사/문화 > 세계사
    지은이 사이토 다카시 (뜨인돌출판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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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마음을 흔드는 역사 교양서를 접했다. 스무살이 넘어서면서 세상을 움직이는 톱니바퀴가 몇 가지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은 점점 깊어졌고, 이십대의 끝을 바라보던 시점에 이 책을 만나게 됐다. 사이토 다카시가 이야기 하는 세계사는 흥미로웠다. 일간지 사설에 드문드문 실리는 브랜드와 커피에 대한 이야기들처럼 공감가는 부분이 많다. 분명 이야기는 과거의 흔적을 더듬고 있지만, 지금 우리의 이야기에 밀접하게 닿아있다.

      책은 다섯 가지 갈래로 세계사를 나눈다. 그 첫째가 Desire-욕망이었다. 그 뒤로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자본주의, 사회주의, 파시즘), 종교의 네 가지 주제가 이어지지만, 욕망을 처음 다룬 게 역시 순서상 맞지 않았나 싶다. 인간의 삶과 현 인류의 역사의 뿌리는 욕망이 자리한다. 본능적인 욕망인 식욕, 수면욕, 성욕부터 명예-출세욕, 정복욕 등등. 노력하는 인간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욕망이 불타오르고 있다. 사이토 다카시는 역사 속에 똘똘 뭉쳐서 추상화 되어 있는 욕망의 구체상들을 몇 가지 추려내어 말을 건넨다.

    커피의 자극은 인간의 한계와 나태함을 극복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도를 넘을 때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한다"는 것이 서양문화, 특히 근대화의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칠 줄 모르는' 지속성의 기본요소이자 근간이 됩니다. -p.22

    커피 문화권에서는 뭔가 일의 피치를 올리고 싶을 때 커피를 마시는 편인데, 차 문화권 사람들은 한숨 돌리며 쉬고 싶을 때 차를 마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커피 마시는 시간은 'Coffee Time' 대신 'Coffee Break'라고 하는 데 반해 차 마시는 시간을 'Tea Break'가 아닌 'Tea Time'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p.33

      보는 눈에 따라 너무 비약하는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설득력이 있다. 커피가 인류사에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삶은 깨어있는 시간이 길어지지 않았을까. 커피 이전의 음료 문화는 차와 알코올이었다. 차도 각성작용이 있지만, 커피보다는 약하며 알코올은 느슨하고 말랑한 음료다. 커피가 세계사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다른 요소들과 함께 융합을 일으키는 역할을 한 건 분명할 듯하다. 그렇게 대항해시대, 커피의 전파, 프로테스탄티즘, 산업혁명 등의 혼합작용으로 서양의 모더니즘-근대화는 가속화한다.

      1장 욕망의 역사에 뒤이은 건, 모더니즘이다. 서양의 중세를 지배하는 神 중심의 세상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라는 두 개의 큰 사건으로 조금씩 인간 중심 세상으로 바뀌어 간다. 신에 의해 모든 것이 조절되고 통제되는 것이 인간의 이성과 합리적인 사고가 통제의 축이 되어가던 시점. 스스로 부패하는 카톨릭에 맞선 프로테스탄티즘-신교의 탄생. 사이토 다카시는 그 신교로부터 자본주의가 잉태되었음을 조곤조곤 이야기해 준다.

    근대적 자본주의는 루터 뒤에 등장하는 칼뱅신학을 받아들인 나라들에서 발전했다고 합니다. ……칼뱅이 역설한 '예정설'과 자본주의의 속성이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정설에 따르면, 신은 구제할 인간을 사전에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신의 결정이기 때문에 아무리 선행을 쌓아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칼뱅파 프로테스탄트들은 남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선행을 쌓기 위해 애를 씁니다. '전능하신 신이 끊임없이 선행을 이루는 인간을 구제하지 않을 리 없다'는 신에 대한 굳건한 신뢰 때문에 (……) 금욕적인 생활을 하고, 열심히 일하고, 부단히 선행을 베푸는 것으로 자신은 구원받아야 할 인간이라는 확신을 얻는 것입니다. -p.103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란 책에 있다는 설명,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다. 칼뱅파 신교도들은 그런 신념을 전제로 열심히 일하고, 금욕을 중시하기 때문에서 돈이 저절로 모인다. 자신을 위해 소비하지 않으니 돈은 다시 신을 위해 봉사하는 '일'에 쓰이게 된다. 바로, 투자의 개념이 생겨났다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자본주의 다음에 역사의 시간 축에 뒤이은 사건은 제국주의였다. 이 책의 셋째 주제는 제국주의.

      사이토 다카시는 서양 근대의 제국주의를 다루기 전에, 제국주의 뒤에 숨겨진 욕망부터 들추어 낸다. '정체성'과 '군림하려는 마음'을 분석해내며, 성공하는 제국의 사례와 실패하는 사례를 짚어낸다. 제국주의의 역사를 통해 전 인류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이 떠오르기도 한다.

      4장은 -ism의 몬스터 삼형제 이야기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파시즘의 이야기는 이젠 꽤나 오래된 것처럼 느껴진다. 80년대 절정을 이루던 냉전의 기억으로 떠오르지만 사실은 지금까지 이어지는 현실이 아닐까 싶다. 자본주의의 약점은 마르크스의 지적 덕분에 완전히 노출됐다. "자본은 자기 증식을 행하는 가치의 운동체다"라는 마르크스의 지적은 자본가와 무산노동계층의 불공평한 관계를 사실적으로 그려주었다. 부익부 빈익빈의 모순구조로 이루어진 자본주의는 왜 몰락하지 않을까.

      사이토 다카시는 '인간 본성에서 시작된 시스템'인 자본주의와 '인위적으로 만든 시스템'인 사회주의의 대결이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이긴다는 설명을 한다. 인간의 욕망에 근거한 자본주의와 그 욕망을 무시한 사회주의의 대결은 21세기 오늘의 세계가 답해주고 있는 듯하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지적한 덕분에 자본주의가 복지의 개념을 가져다가 땜질한다는 기분이 든다. 보이지 않게 자라나고 있던 암덩어리를 마르크스라는 의사가 발견하고 지적하고, 자본주의는 내과·외과적 치료를 통해 거의 치료 단계에 도달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의 마지막 주제는 종교다. 종교의 문제도 참 재밌다. 세계를 뒤숭숭하게 만드는 종교는 알고보면 집안 싸움이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전부 동일한 신을 중심으로 한다. 구세주는 아직 안왔다고 주장하는 유대교, 예수가 구세주라는 기독교, 예수도 모세처럼 예언자 중의 하나고 무함마드가 최후의 예언자라는 이슬람교, 이 세 가지 종교의 신은 하나가 분명하다. 사이토 다카시는 종교의 속성을 파헤치며 왜 집안싸움을 하게 되는지, 앞으로의 세상에 어떤 신념이 필요할지 넌지시 암시한다. 그리고 덤으로 이슬람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여러 장을 할애해서 설명한다.

      이 책은 약간 진보성향을 보이지만, 전반적인 부분을 수긍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통사가 아닌 주제사를 다룬다는 건 그 주제가 가진 개별적인 역사와 속성에 대하여 깊고 넓은 지식이 필요한 작업이다. 20세기는 전문가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지식교양인의 시대이지 않을까 싶다. 한 분야의 전문적인 식견보다, 하나의 주제를 통해 폭넓게 생각하고 통찰할 수 있는 지식인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온 것 같다. 늘 그렇듯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다. 사이토 다카시의 이 책은 지식교양인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정도는 읽어볼 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지식을 어떻게 잇고, 통합해서 고찰하여 통섭에 이를 수 있는지 맛보기로 좋지 않을까. 대입 수험생, 대학생이 읽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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