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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 에쿠니 가오리문학 2012. 12. 25. 00:23목메는 건빵엔 물도 필요 없어요. 네모난 몸에 배꼽이 두 갠지, 바늘로 찔러 만든 눈이 두 갠지. 건빵의 세상에는 습기가 없어요. 유리알처럼 톡! 치면, 틱! 하고 깨져버리는 건빵은 말도 없어요. 그래선 지도 몰라요. 건빵네 집에는 곰팡이도 없고, 물먹는 하마도 필요 없대요. 그런데 말이죠. 그렇게 메마르고 맛없는 건빵이 사람을 만나면 달라져요. 어떤 사람들은 건빵을 먹으며, 촉촉함이라곤 하나도 없는 음식에 물을 찾아요. 그렇지만 꼭 물이 필요한 건 아닐지도 몰라요. 반짝반짝 빛나는 별 하나를 입안에 넣고 있으면, 목마름이 사라지니까요.은사자들은 건빵일 지도 몰라요. 어떤 사람들은 건빵일 거예요. 여기저기 흔하게 보이는 카스테라나, 베이비 슈 같이 촉촉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혹시 모르죠. 마로니에 공원 벤치에 앉아서 혼자 책을 읽고 있는 펑키-보이가 건빵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은사자일지도.가끔 눈을 감고 생각해 봐요. 어릴 적에 나는 어땠었나, 하고 생각하다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둘도 없이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다른 친구랑 친하게 지내면, 괜히 심통도 나고 입도 삐죽거리고 말예요. 언제까지였더라, 아마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도 그랬을 거예요. 그 친구가 남자건 여자건 말예요. 나도 어쩜, 건빵일지 몰라요. 촉촉한 수분이 담긴 사랑처럼, 누구에게서든 목마름을 채우려고 했는지도 몰라요.우리는 아픈 상처가 있어요. 자그마한 생채기가 아녜요. 손톱 밑에 파고들어 간 가시 하나가 자꾸만, 자꾸만 깊이 숨어들었어요. 남극을 점령한 깃발처럼, 하얀 반달 부분에 쏙 박혔어요. 그래서일까, 아물지 않는 생채기에 물기만 닿으면 따끔거리고 아려오는 걸 참기가 힘들어요. 이상한 건, 바짝 마른 가을이 되면, 더 따끔거리는 거 있죠?에쿠니 아줌마가 들려주는 은사자들의 이야기는 우리들이 갖고 있는 생채기보다, 훨씬 더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랑이예요. 뭐가 정상인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갈색 털을 번뜩이며, 동물들을 아그작아그작 씹어 먹는 '정상 사자'들. 오히려 은색 털을 반짝이며, 풀만 먹다 사라지는 '비정상 사자'들이 별처럼 보였어요.싸구려 샴페인처럼, 갓 짜낸 플로리다 오렌지 주스처럼, 느끼하고 너무 달아서 머리마저 뱅글뱅글 흔들리는 설탕 범벅 도너츠처럼. 우리 삶 속에 공간과 시간을 한 움큼씩 쥐고 있는 것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요, 에쿠니 아줌마. 빤딱빤딱 구김없이 다려 놓은 침대 시트처럼, 바짝 말라버린 건빵처럼 은사자들은 오늘도 살겠지요. 아아, 섣불리 판단하거나, 참견하지 않아도 좋겠네요. 멋진 존재는 달처럼 태양의 빛을 반사해서 훤히 비추는 게 아니라, 500억 광년이나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자기 몸을 태워가면서 빛을 내는 별들이니까요.<책에서>"하지만, 그들은 마법의 사자래. 무리를 떠나서, 어디선가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마들어 생활하는 거지. 그리고 그들은 초식성이야. 그래서, 물론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단명한다는 거야. 원래 생명력이 약한 데다 별로 먹지도 않으니까, 다들 금방 죽어 버린다나 봐. 추위나 더위, 그런 요인들 때문에. 사자들은 바위 위에 있는데, 바람에 휘날리는 갈기는 하얗다기보다 마치 은색처럼 아름답다는 거야." -pp.125~126벨을 누르자 곧 문이 열리고, 안에서 나타난 것은 곤이었다. 머리에 커다란 빨간 리본을 매달고 있다. 청바지에 네이비 블루색 블레이저, 곤으로서는 최고의 정장이다."선물이야."옆에서 쇼코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나는 빨간 리본의 의미를 간신히 이해하였다.
-p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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