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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는 작은 책 | 호세 안토니오미얀문학 2012. 12. 25. 00:29
'옛날 옛날에 아주 작은, 아주 작은 이야기책이 있었습니다.’라고 시작하는 책이 있었습니다. 이 책은 바로 다음 줄이 ‘끝’이었습니다.
아빠는 법전이었고, 엄마는 유명한 과학 잡지였습니다. 다정한 부모님은 잘 자라지 않는 이야기책이 걱정이었습니다. 이야기책도 아빠엄마의 마음을 알고 있었고, 혼자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할아버지와 할머니만큼은 이야기책이 잘 자라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도 이야기책은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이야기책은 어느 날, 모험을 떠나게 됩니다. 백과사전 아줌마를 찾아가면,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백과사전은 도서관에서도 가장 높은 책장에 있었습니다. 이야기책은 힘겹게 책장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가는 겁쟁이 사자처럼, 마음을 갖고 싶은 깡통 로봇처럼 힘든 여행을 떠났습니다.
백과사전 아줌마를 찾아가는 길에, 많은 책들을 만나게 됩니다.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책들도 만나게 되고, 너무 오래 전에 출판되어서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기술 서적도 만나게 됩니다. 『어린 왕자』가 만났던 수학자 같은 ‘곱셈 여사’를 만나기도 하지요. 숫자에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같은 숫자들만 반복하고 있는 곱셈 여사는 온통 숫자들만 담고 있었습니다.
이야기책은 수많은 책들을 만나고, 스치며 고민과 생각이 하나씩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드디어 이야기책은 백과사전 아줌마를 만나게 됩니다. 백과사전은 정말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처럼 복잡했습니다. ‘왜 자라지 않는지’ 알기 위해 이야기책은 이런저런 항목을 돌아다녔습니다. 결국, ‘저자’를 찾았지만, 이야기책은 겁을 잔뜩 먹고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밤은 도서관도 컴컴하게 만들었고, 이야기책은 길을 잃고 맙니다. 이야기책은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또 다른 책들을 만나게 됩니다. 좀벌레를 퇴치하기도 하고, 외국에서 건너온 책도 만나서 따뜻한 악수도 나누었습니다. 말이 달라도 따뜻한 마음은 전해진다는 걸, 이야기책은 깨달았습니다.
긴 모험을 마치고 이야기책은 집에 돌아왔습니다. 할머니는 따뜻한 우유를 주었고, 할아버지는 이야기책과 함께 체스를 두었습니다. 체스를 두면서 이야기책은 할아버지에게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야기책은 종이와 연필로 쓱쓱 그려가면서 할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자한 웃음을 보이며 할아버지는 이야기책을 침대에 눕히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넌 이 세상에서 뭐든지 될 수 있는 거란다. 예를 들면 오늘만 해도, 넌 제일 높은 책장 선반의 안내책이 되었고, 또 좀벌레 숲의 투사가 되지 않았니. 지금은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며 잠드는 아이가 되었고, 그 밖에도 많은 게 될 수 있단다.” –p.98
이야기책은 잠이 들었습니다. 어른이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아마도 내일 아침 잠에서 깨어나면, 이야기책은 한 뼘은 더 자랄 것 같았습니다. 이제, 이야기책은 두 줄 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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