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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다리로 걷는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다.無序錄 2011. 12. 31. 14:27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은 자유롭다. 다른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을 떠다님은 축복이자 불행이다. 두 발로 서면서 우리는 동물을 뛰어넘었다. 허파에 맺혔던 각혈은 기침으로 나왔다. 성대는 그르렁거리던 직업을 버리고, 산업혁명을 이뤘다. 결국, 우리는 언어─logos─를 얻었다. 헤켈이 주장했던 이야기는 과학적으로 사기일지라도, 두 다리로 걷는 자에게는 제법 적당하다.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던 그의 말은, 오늘도 네 다리에서 두 다리로 옮겨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확인 가능하다. 아기가 옹알이를 거치며 모호한 '엄마'를 외칠 때, 환호하는 여인은 오늘도 있다.
아킬레우스는 발뒤꿈치를 잃자, 죽었다. 그의 자유의지는 두 다리에 있었다. 스튁스 강에 몸을 담근 그는, 불사였지만 발뒤꿈치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의 손이 그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고, 어머니가 그를 담궜기 때문이다. 자유의지의 탄생은 이처럼 비극이었다. 강렬한 물살에 휩쓸리지 않으며 불사의 자유의지를 얻는 방법은, 다른 사람의 부축이었다. 자유의지는 두 다리를 타고 움직이지만, 타인과의 관계 때문에 흔들린다.
아킬레우스를 트로이로 끌어낸 오딧세우스는 미네르바의 올빼미다. 미네르바─아테나─여신은 전쟁과 지혜를 관장하며, 수공업의 모든 부분을 다룬다. 그렇게 미네르바는 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를 아낀다. 미네르바의 신조 올빼미. 그 둘은 서로를 상징한다. 언제나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밤에만 울어댄다. 밝은 낮의 열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차가운 달이 뜨는 밤에만 올빼미는 울어댄다. 내일을 꿈꾸는 올빼미도, 오늘 낮의 일은 직접 경험하지 못한다. 오딧세우스는 올빼미였고, 태양이 이글대는 낮의 축복을 받은 화살에 아킬레우스를 잃었다. 아킬레우스는 초인(超人)─니체의 의미에서─을 꿈꿨지만, 자유의지의 상실로 죽음에 도달했다.
자유의지는 올빼미에 휘둘려 참 모습을 잃어가고, 군중의 화신 파리스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 파리스는 모든 관계다. 인간이 언어를 갖게 된 이후, 절대자를 심판한 최초의 인간이다. 수많은 양을 이끄는 목동이었고, 한 나라의 왕자이었고, 한 여인의 강탈자였으며, 뇌물에 넘어간 군중이었다. 그의 모든 관계는 자유의지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고, 두 다리를 한 여인에게 묶어버렸다.
차라투스트라는 우리더러 "다리를 건너라"고 끝없이 종용한다. 이쪽 언덕에 서있는 우리는 모든 관계에 억눌리고, 자유의지를 잃고 있단다. 우리에겐 날개가 없다. 정신의 날개, 합리적 사고의 날개란 것들은 모두 비유이며,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책먼지 위에 쌓아 올린 우상에 불과하다. 니체는 두 다리로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건너기를 종용한다.
외롭다고 울지마라. 언제는 외롭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뱃속 양수에서 놀적에도 우리는 혼자였다. 어머니 뱃속엔 또 다른 우주가 있었고, 우리의 고향은 그곳이었다. 두 다리로 서면서 우리는 언어─logos─와 두 손을 얻었다. 두 다리로 서서 다리를 건너는 사람은 위험하다. 밤에는 올빼미의 울음에 흔들리고, 낮에는 아폴로의 화살에 위협받는다. 아킬레우스는 실패했다. 저쪽의 언덕을 향해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은 외로울 밖에없다. 그 모든 관계로부터 벗어나야 가능한 직립보행은 외로운 길이다. 그러니, 울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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