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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원 면접 후기, 더하기 배출.
    無序錄 2011. 12. 31. 14:41

      엊저녁에 마신 커피 두 잔이 화근이었다. 일찍 잠을 청해 본다고 1시도 못되어서 컴퓨터를 끄고 침대에 누웠지만 수십, 수천만 가지의 잡생각들이 나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거기에 아무리 감고 있어도 최루탄에 노출된 느낌의 오른쪽 눈은 계속 아파왔다. 구십팔만 번째 생각─아마, 〈운영전〉과 경복궁과 낮에 미처 풀지 못했던 원의 방정식 문제가 뒤섞인─을 하던 중에 핸드폰을 눌렀다. 엄마 자궁같이 캄캄한 두 평 남짓한 공간에 초음파 같은 빛이 켜진다. "AM 03:48". 젠장, 이건 아니다. 오늘 아침 9시 50분까지 대기실로 가야했다. 알람을 8시에 맞춰 놓고, 1시에 잠들려 했던 계획이 되려 스트레스로 더해졌다. 분명히 자궁 속에서 뒹굴댕굴하는 태아들도 초음파 검사를 싫어할 거다.

     

      이건 스트레스다. 아무 말도 없고, 초침 재깍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공간에 시간은 오롯이 자기 몸 안에만 있다. 배꼽시계 따위 말이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0과 1로 조합된 화면은 온 인류에게 스트레스다. 오늘 새벽 속 내 방은 작은 우주같았고, 나는 오로지 내 몸의 시간에 의지하며 가만히 옆으로 웅크리고 누워서 유영(遊泳)했다. 초음파 사진을 찍으면, 8, 9개월 된 녀석들의 그 자태로 말이다. 너무나 편안해서 잠이 오지 않는 자궁, 꾸룩거리는 소리나 엄마의 심장소리도 들리지 않는 나만의 자궁은 천국과 지옥의 융합체였다


      가이아가 우라노스를 낳고, 근친상간을 하기 이전의 공간처럼 단 하나의 존재─중력─와 하나의 색깔로 나만의 자궁은 충만했다. 번데기가 숨어 있는 그 시간은 행복과 고통의 유예인 것처럼, 침대에 누워 두꺼운 이불을 덮은 나도 유예중이었다. 그때. 나는 시계를 본 거다. 그것도 심장소리처럼 안정감을 주는 소침소리의 그것이나, 테옆 시계 밑에 달린 남자처럼 생명의 소리도 없는 "AM 03:48" 영문+숫자의 조합 말이다. 1분 또는, 5분, 또는 한 시간, 한 식경이 느리면 뭐가 큰일인지, 시계도 핸드폰으로 봤다. 위성에서 시간을 전송받아,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표준시를 알려준다는 그 핸드폰 시계 말이다. 재깍거리는 소리는 생명을 담아 자장가를 부르지만, 아무런 소리도 없이 뭉그러져 형체가 변해가는 핸드폰의 액정들은 죽음처럼 흘러간다. 아기가 자궁에서 나오자마자, 죽음이 찾아와 아기의 손톱 밑에서 자라난다던 얘기가 떠올랐다. 새벽 4시에 떠올릴 수 있는 최선의 잡생각이었다. 핸드폰을 바라본 그 시간을 잊기 위해, 또 다른 잡념을 떠올릴 방법밖엔 내게 없었다.

     

      생명을 몸속에 갖게 되면, 신기하게 증상이 나타난다. 입덧을 하고, 자꾸만 졸고, 신맛 나는 음식을 먹고 싶고, 매주 쏟아야했던 철분들도 멈춘다. 순환의 새로운 국면이 찾아온다. 생명은 소리를 동반한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소리를 낸다. 한 몸이, 두 몸이 되면 구토하는 소리도 들리고, 졸다가 냉장고 문짝에 부딪히는 소리도 꽁! 하고 듣는다. 첨단 의료 과학도 필요 없이, 청진기 하나면, 아랫배에서 뛰는 심장도 들을 수 있다.

     

      여름철 산속에 들어가면, 소란 속의 평온을 만나게 된다. 징그럽게 울며, 생식에 전력을 기울이는 매미들은 여름이 미치도록 운다. 맴맴윙윙. 한두 마리의 선을 넘어서서, 오케스트라의 숫자 이상이 되면, 이제 숲은 조용해진다. 팔에 돋은 얇은 털들로 소리를 들을 수 있을만큼 고요해진다. 그렇겠다. 조용함이라기보다, 고요함을 만나게 된다. 웅왕거리는 소리는 한 순간에 저편의 언덕에서 이편의 언덕을 감싸고, 다른 세상의 소음들로부터 차단해주는 느낌을 받게 된다. 거대한 병풍같이. 살아있는 소리와, 생명을 이어가려는 외침은 교묘하게 녹아서 하나가 된다. 몇 주 전부터 들리기 시작한 귀뚜라미 소리도 시끄러운 수준을 넘어서면, 아름다운 느낌마저 든다. 모두 살아있는 소리라 그럴 것이다.

     

      백만 번째 생각이 매듭지어지려던 순간에 다시, 죽음의 숫자를 봤다. "AM 04:10". 젠장. 내가 불러들이는 휘프노스는 오지 않았지만, 별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나는 생명을 꿈꾸고 있었고, 살아 있는 소리를 바라며 잠을 청하고 있었다. 깜빡했다. 휘프노스는 타나토스의 형제였다. 뉙스를 거슬러, 삶의 욕망을 태우고 있었던 내게, 타나토스는 삐졌을 테고 휘프노스도 동참했을 터였다. 네 시간이 넘게 자궁 속에서 뒤척이는 나의 불면증은, 이들 삼부자의 음모였다. 확실하다.

      코쟁이네 '신들'이나, 세 종파의 우두머리 '신'이나. 삐지면 가차 없다. 만들어 놓기를 원체 미완의 존재로 만들어 놓고, 눈 밖에 나면 제대로 삐져서 "됐거든"을 외치는 신. 이건 너무한 거다. 요즘엔 가전쓰레기도 제조사에서 수거해 간다. 마지막 수거까지는 맡기 싫으시다면, 애프터서비스까지는 해주셔야 하는 게 아닌가. 신이 삐졌다고 소비자 보호원에 신고할 수도 없고, 당신만의 충실한 어린양이 되어야만 돌보아 준다는 얘기는. 이번엔 나 같은 종자들이 삐질 차례다─고 잡생각을 잇다가, 잠이 든 모양이다.

     

      알람에 눈을 떴고, 나는 자궁에서 밀려 나왔다. 신생아가 우는 건, 자궁에서 밀려 나와서 우는 거다. 제 요량으로 나온 애는 울지 않는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지. 나는 울면서 밥을 먹었고, 면접을 봤다.

     

      나는 아무래도 '울 준비가 되어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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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oem_정원사_책들이 있는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