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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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 파스칼 키냐르문학 2012. 2. 6. 10:51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국내도서>소설저자 : 파스칼 키냐르 / 송의경역출판 : 문학과지성사 2005.05.31상세보기 언어langue에 수없이 형용사가 나타나면, 그것은 언어langage가 없다는 기호이다. -p.88 불교 선종에 아주 유명한 화두가 하나 있습니다. 염화미소(拈華微笑)라고 하는 선문답 같은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석가모니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꽃을 한 송이 들어올리기만 하고 아무 말이 없자, 사람들은 우왕좌왕 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석가의 수제자 가섭(迦葉)만이 그 뜻을 이해하고 빙그레 웃었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진리를 말하기 위해 말도 안되는 말을 해서 깨닫게 하려 합니다. 불법이 높은 선승들은 이따금, 말로 다할 수 없는 말이 있음을 보여주곤 합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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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 미하일 엔데문학 2012. 2. 3. 08:59
모모국내도서>소설저자 : 미하엘 엔데(Michael Andreas Helmuth Ende) / 한미희역출판 : 비룡소 1999.02.19상세보기 “친구를 잃어버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다시 접촉하는 주도권을 그에게 맡겨두는 것이다.” -미셸 트루니에 에서. 이런 날씨였다. 하늘은 구름을 잔뜩 끌어다가 빛나는 진주를 감춰버렸고, 온도는 줄기차게 올라갔다. 종로의 큰 길을 걷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져갔고, 그 위로는 마르지 않는 샘처럼 땀이 흥건하게 흘렀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야자―야간자율학습―는 항상 빼먹었다. 야트막한 언덕에 솟은 세 동의 건물은 해가 지면 마치 몬스터 하우스 같았다. 해가 지기 전에 나는 교문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가끔은 서쪽으로 내달아 인왕산 자락의 종로 도서관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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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 마르그리트 뒤라스문학 2012. 2. 3. 08:58
연인국내도서>소설저자 : 마르그리트 뒤라스 / 김인환역출판 : 민음사 2007.04.30상세보기 생각났다. “대지극장 절찬리 상영중” 내가 살던 동네는 즐거웠다. 분명히 행정 구역 상으로 서울이 맞았지만 시골 냄새가 났다. 과수원이 있었고, 그 너머로 연탄 공장이 있었다. 태양도 뒤척이는 시간부터 연탄을 실어 나르는 기차가 집 근처를 지나갔다. 때때로 아버지는 불끈 화를 내며 옆으로 돌아눕곤 했다. “툭―카앙―투카―앙, 투캉투캉……” 새벽 4시 즘이었다. “툭―카앙”하는 무거운 강철소리가 먼 데서 들려오면 내 하루는 시작했다. 과민한 아홉 살 어린이는 잠을 깨서 눈을 뜬다. 창호지로 바른 창문을 통해 노란 가로등 빛이 부서져 흘렀다. 아버지, 어머니, 동생, 나. 이 순서로 누워서 새벽의 기차소리를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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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 드 보통문학 2012. 2. 3. 08:57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양장)국내도서>소설저자 :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 정영목역출판 : 청미래 2007.08.01상세보기 “철커덕” 책을 읽다보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소리가 들린다. 작가가 늘어놓은 문장의 숲을 산책하다가 열쇠를 발견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눈길을 옮겨 갈 때마다 열쇠는 내 마음 속 자물쇠를 열고 만다. 자물쇠가 풀린 가슴에 ‘사랑’으로 담근 시간의 술을 부어버린다. “사랑의 생애”로 빚은 이야기를. 알랭 드 보통의 첫 소설. 를 다 읽고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일단, 기분이 나빴다. 이 사람이 이 책을 쓴 게 정확히 내 나이였다. 그는 25살에 사랑에 관한 ‘에세이×소설’을 써냈는데, 나는 무얼 하고 있는 거며, 뭘 이루어냈는가―하는 자괴감이 앙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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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감옥 | 미하엘 엔데문학 2012. 1. 7. 15:48
자유의 감옥 (양장)국내도서>소설저자 : 미하엘 엔데(Michael Andreas Helmuth Ende) / 이병서역출판 : 보물창고 2008.09.05상세보기 4박 5일간의 휴가를 나왔을 때다. 나는 책이 고팠고, 눈은 반짝이는 종이 위를 가로지르며 놓인 활자를 만지고 싶어 했다. 너무나 현실적인, 이성적인 삶을 떠나고 싶어서 동화를 찾았고, 그 첫걸음을 옮기던 차에 떠오른 사람이 엔데 할배였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동화를 찾게 만들어준 할배. 를 읽으며 다가왔던 이야기의 감촉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와 을 덜컥 입양해버렸다. 그게 벌써 3개월이 되어간다. 주말의 당직근무, 이때가 절호의 기회였고 나는 단숨에 읽어 내렸다. # 1. 이야기로 철학하기 엔데 할배의 말은 어렵지 않다. 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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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삶 | 장 그르니에문학 2012. 1. 6. 10:02
일상적인 삶국내도서>소설저자 : 장그르니에 / 김용기역출판 : 민음사 2001.08.07상세보기 참 오랜만에 책에 관한 글을 쓴다. 이 녀석이 얼마동안이나 내 서류 가방 안에서 꿈틀거렸는지 모르겠다. 이 책을 얼마 전에 겨우 다 읽어냈고, 오늘 밤에야 글을 쓸 여유가 생겼다. 오늘처럼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여름밤, 곁에 두기 좋은 책이다. 장 그르니에의 글은 치즈 같다. 언제든지 쉽게 접할 수 있고, 먹을 수 있지만 약간의 일상을 벗어난 느낌의 음식―내겐 치즈가 그렇다―이랄까. 그르니에 할배의 글은 투르니에 할배의 글과는 또 다른 맛이 난다. 일상을 대하는 자세에 차이가 있는 듯하다. 투르니에 할배가 유쾌한 표정으로 어깨를 툭치는 느낌이라면, 그르니에 할배는 정중하게 악수를 청하며 미소 짓는 느낌으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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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 알랭 드 보통문학 2012. 1. 4. 01:15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국내도서>시/에세이저자 :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 이강룡역출판 : 생각의나무 2005.05.31상세보기 인상깊은 구절 마음속 깊이 담고 있는 자심만의 방법과 많은 이들이 택하는 평범하고 무난한 방법 사이를 가르는 단층면에는 우리의 의견이 어지럽게 맴돌고 있었다. 물질적으로 보면 런던은 하나지만 런던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런던이 하나씩 존재하는 것이다. -p.204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 드 보통 지음|정영목 옮김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 알랭 드 보통 지음|지주형 옮김 우정론 - A.보나르 지음|이정림 옮김 섬 - 장 그르니에 지음|김화영 옮김 "짐승은 즐기다가 죽고, 인간은 경이에 넘치다가 죽는다. 끝내 이르게 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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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개의 죽음 | 장 그르니에문학 2012. 1. 1. 23:09
어느 개의 죽음국내도서>소설저자 : 장그르니에 / 지현역출판 : 민음사 2006.11.30상세보기 인상깊은 구절 고통이란 그 표현 수단을 찾게 되면 이슬처럼 증발해 버리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술가는, 누구보다도 불행한 이들인 반면 누구보다도 불평할 것이 적은 이들이다. -p.48 얄리. 굿바이 얄리. 넥스트의 노래가 떠올랐다. 어릴 적에 학교 앞에서 샀던 병아리, 며칠을 못가서 바로 죽어버린 병아리에 대한 쓰린 기억이 되살아났던 노래. 넥스트가 부른 얄리 회상곡은 죽음을 처음 대했던 어린 시절로 나를 돌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오랜만에 그 감상적인 기분으로 되돌아왔다. 한 존재가 사라지고 나면 우리는 그 존재에 온갖 장점들을 갖다붙인다. 그런 값싼 대가를 치름으로써 그에 대한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