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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상적인 삶 | 장 그르니에
    문학 2012. 1. 6. 10:02



    일상적인 삶
    국내도서>소설
    저자 : 장그르니에 / 김용기역
    출판 : 민음사 2001.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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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오랜만에 책에 관한 글을 쓴다. 이 녀석이 얼마동안이나 내 서류 가방 안에서 꿈틀거렸는지 모르겠다. 이 책을 얼마 전에 겨우 다 읽어냈고, 오늘 밤에야 글을 쓸 여유가 생겼다. 오늘처럼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여름밤, 곁에 두기 좋은 책이다.


      장 그르니에의 글은 치즈 같다. 언제든지 쉽게 접할 수 있고, 먹을 수 있지만 약간의 일상을 벗어난 느낌의 음식―내겐 치즈가 그렇다―이랄까. 그르니에 할배의 글은 투르니에 할배의 글과는 또 다른 맛이 난다. 일상을 대하는 자세에 차이가 있는 듯하다. 투르니에 할배가 유쾌한 표정으로 어깨를 툭치는 느낌이라면, 그르니에 할배는 정중하게 악수를 청하며 미소 짓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자상하고 진지한 그르니에 할배가 들려주는 열두 가지 꼭지들은 생각을 꽁꽁 맺는 법이 없다. 단정적인 어조로 다가오지 않고, 꼼꼼한 관찰을 통해 얻은 자신의 생각을 조곤조곤 들려줄 따름이다. 때론 독자에게 동의를 구하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어떤 문장에서는 생각해 보기를 바라는 요청도 한다. 마치 일상을 가지고 철학하기를 같이 하자고 권유하는 것처럼.


      일상 속에 자연스레 벌어지거나 놓여있는 사건-사물을 놓고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김춘수 아저씨가 꽃에게 이름을 불러주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했듯이, 모든 존재와 사건은 사랑과 관심에 의해 특별한 것으로 변모하게 된다.


    여행을 하면 단지, 머물러 있을 때와는 달리 시간이 꽉 채워졌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이점은 있다. 그러나 결국 그 느낌은 비어 있다는 느낌에 자리를 내주고 만다. -p.33 <여행>

     

      “여행”의 겉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본질에 가까이 다가간다. 마냥 즐겁고 신나지만은 않았던 여행의 비밀. 그르니에 할배는 준비에서 도착까지의 빠듯한 여정과, 가득히 채워진 시간으로도 도저히 누를 수 없는 공허감을 놓치지 않고 말해준다. 할배의 이야기는 그 정도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건과 존재의 내면을 들춰서 보여주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우리에게 위안을 주려 심어 놓은 문장들까지 보인다.


    고통받는 자에게 침묵이 어떤 내적인 미덕을 갖는 것은 사실이다. 침묵을 망각을 돕는다. 우리를 갉아먹는 까닭 모를 내적인 고통을 침묵시키려면 그저 침묵하기만 하면 될 때가 많다. 우리 마음속의 고통은 우리가 내뱉는 말을 먹고 자라는 것이다. -p.121 <침묵>


      다시 읽어도 좋을 책이다. 잘 숙성된 치즈처럼, 깊은 맛이 배어나오는 글로 가득하다. 잔잔한 휴가를 위해 곁에 두어도 참 좋을 듯하다.



    <책에서>


      여행의 기원과 궁극적인 목적은 여행을 무효화하는 것이다. 여행의 완성은 결과적으로 그것의 소멸인 셈이다. 이는 마치 나무를 태우는 불이 결국은 스스로를 소진시키는 것과 같으며, 직관이 떠오르고 나면 논증적 추론은 그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되는 것과 같다. -p.15 <여행>


      어쨌든 몽테뉴가 말한 것처럼 회의주의자의 정신에 산책은 없어서는 안 된다. <모든 숭고한 장소에는 산책로가 있어야 한다. 일으켜 세워 걷게 하지 않으면 내 사유들은 곧 잠들어 버린다.> -p.43 <산책>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은 산책할 여가를 가진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공백을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일상사 가운데 어떤 빈틈을, 나로선 도저히 이름 붙일 수 없는 우리의 순수한 사랑 같은 것에 도달할 수 있게 해줄 그 빈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결국 산책이란 우리가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발견하게 해주는 수단이 아닐까? -p.53 <산책>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곧 그 사물을 통해 세상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p.79 <담배>,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에서 인용.


      시골의 침묵이 충분히 상대적이라는 사실이 소용없는 것은, 비어 있음의 무게를 잘 견디지 못하는 도시인들에게 그것이 절대적으로 느껴지는 탓이다. 그래서 그들이 떠나올 때 함께 가지고 온 온갖 장치들을 동원하여 도시 세계와 시각, 청각으로 접속되어 있음으로써 그 무게를 떨쳐내려 든다. -p.113 <침묵>


      종이 위에 씌어 있는 것들은 매 순간 참조되고 또 권위를 만들어낸다. 반면에 말은 후에 가서 부인해 버릴 수가 있다. -p.139 <독서>


      재능이 없다면 쓰지를 말아야 할 것이며 있다면 자신의 머리에 드는 생각과 자신의 가슴에 고이는 것을 그냥 쓰면 되는 것이다. -p.146 <독서>


      모든 소통은 흔히 <인격>이라 부르는 것들을 전제한다. 그게 아니라면 거기에는 병렬이나 얽힘 혹은 상호 침투는 있을지언정 결코 주고받음은 없을 것이다. 이 주고받음은 결국 한 인격을 다른 인격 속으로 이동시켜서 그 인격은 자신이 아니라 타자 속에서 살게 된다. 사람들이 사랑이라 부르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자기 삶의 근간이 자기에게가 아니라 타자에게 있게 하는 이른바, 자기로부터의 탈출이다. -p.179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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