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든 | 헨리 데이빗 소로우문학 2012. 3. 22. 12:51
- 월든
- 국내도서>시/에세이
- 저자 :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 강승영역
- 출판 : 은행나무 2011.08.22
인연은 신기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순간에 새로운 모래시계가 흐르는 기분마저 든다. 사람은 소중한 인연을 접하며 바뀌어간다. ‘자아’는 혼자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가슴 뭉클한 인연을 아교로 삼아 하나의 형상으로 만들어가는 평생의 작업이다.
좋은 인연은 또 다른 방법으로도 만날 수 있다. 진지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쓴 글을 엮은 책이 하나의 길이 되어준다. <월든>을 접하게 된 것도 인연 탓이다. 마주보고 대화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과 쪽지로 말을 주고받는 인터넷은 신기한 세상이다. 지하철에서 마침 옆에 있던 사람이 “이 책 좋아요, 읽어보세요.”라며 쪽지를 건넨다면 어땠을까. 어쨌든 신기한 세상의 길을 따라 어느 분이 쪽지를 건넸고, 나는 <월든>에 인연이 닿았다.
#1. 온 몸으로 느끼는 삶
‘1장 숲 생활의 경제학’을 읽다가 한동안 멍~해졌다. 공감하는 이야기는 무던히 많았지만, 세상을 등지고 숲에 들어가서 집짓는 이야기를 대뜸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손수 집을 짓기 위해 무엇을 했으며 자재는 어디에서 구했다, ‘돌쩌귀 및 나사못’은 얼마다―까지 모두 적은 명세표를 첨부한 ‘생활의 기록’이었다.
‘못’을 사는 데 3달러 90센트를 줬다는 부분을 내가 왜 이렇게까지 눈이 빠지도록 읽어야 할까―하는 회의감도 잠시. 소로우가 심혈을 기울인 기록, 그 내면에 담긴 의미를 차근차근 읽어갈 수밖에 없었다. 소로우는 숲 속에 집을 짓는 모든 비용을 제시하고, 스스로 집을 지으면서 얻을 수 있는 경험을 얘기한다. “대학생 한 사람이 1년 치 집세 정도로 평생 동안 살 수 있는 집을 짓고 배울 수 있다”는 진실을 말하고, “인생을 ‘공부만 하지’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을 진지하게 ‘살아’보라”며 충고한다.
“그곳(대학)에서는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 세계를 관찰하는 법은 가르치지만, 육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p.75”
소로우는 숲 속 월든 호숫가에 살면서 세계를 두 눈으로 관찰하는 법을 몸으로 보여준다.
#2. 외면일기와 내면일기
이 책을 읽다가 미셸 투르니에 할배가 떠올랐다. 투르니에 할배는 “자기 주변에 있는 일상의 모습에 눈을 돌려서 기록을 남기라”고 얘기했다. “그러면 날이 갈수록 여러분은 글을 더 잘, 더 쉽게 쓸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특히 아주 풍성한 기록의 수확을 얻게 될” 거라는 이야기로 ‘외면일기’(클릭)를 쓰라고 권했다.
소로우는 외면일기와 내면일기를 자유자재로 번갈아가며 쓸 줄 아는 사람이다. 호수에 관한 사소한 기록에서부터 샘터의 멧비둘기와 도요새의 모습들, 자연속의 당연한 풍경처럼 느껴지는 들꿩과 산토끼의 생생한 동작을 독자들의 눈에 그려놓듯 묘사한다. 12장 ‘이웃의 동물들’에서는 특히 “개미싸움”이야기를 7쪽에 걸쳐서 기록했다.
“……서로 엉겨 붙어 떨어지지 않은 채 싸우고 있는 한 쌍의 개미를 지켜보았다. 지금은 대낮이지만 해가 질 때까지, 아니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싸울 각오인 것 같았다. 몸집이 작은 붉은개미는 적의 가슴팍에 바이스처럼 꼭 달라붙어 상대방의 더듬이를 뿌리 근처에서 꽉 물고는 그처럼 싸우느라 뒹구는 동안 단 한순간도 놓아주지 않는 것이었다. 다른 한쪽의 더듬이는 이미 잘려서 떨어져나가고 없었다. 힘이 더 센 검은개미는 적을 좌우로 막 흔들어댔는데,……” -p.330
작은 것 하나도 스쳐 지나지 않고 묘사한 이 기록은 ‘외면일기’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다. 게다가, 외면일기에 자신의 내면을 깊이 성찰한 ‘내면일기’까지 잘 어우러지다니. 최고의 일기였다.
#3. 실천하는 동양철학자
나는 황당했다가 당황했다. 19세기 미국인이 공자에 푹 빠졌다. 쉬운 낱말로 조곤조곤 읊조리다가도, 대뜸 <논어>의 한 구절을 들어 말을 이끌어 간다. 결국, 이 사람이 하버드 대학에서 전공한 것은 동양철학이 아니었을까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480쪽에 가까운 종이를 메워 놓은 활자들에서는 풀 냄새가 가득했고, 데카르트의 냉철함보다도 공자의 그윽함이 배어나왔다.
“오늘날 철학 교수는 있지만 철학자는 없다. 삶다운 삶을 사는 것이 한때 보람 있는 일이었다면 지금은 대학 강단에 서는 것이 그렇단 말인가?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심오한 사색을 한다거나 어떤 학파를 세우는 일이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고 그것의 가르침에 따라 소박하고 독립적인 삶, 너그럽고 신뢰하는 삶을 살아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p.26
소로우는 정말로 공자와 닮았다. ‘상갓집 개’라고 불리면서도 전국을 떠돌며 인仁을 외치던 공짱구, 도시를 저버리고 숲 속의 판잣집에 살며 진실을 추구하던 소로우. 오늘의 철학 교수들처럼 그 둘은 강단에 서지 않았다. “난 철학자입네”하고 뒷짐 진 채로 생각만 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
철학은 생각하기 위해 있는 학문이 아니다. 앎을 통해 실천하며 바른 길을 걷는 삶을 위한 학문. 그것이 소로우의 철학이었다.
깊은 숲 속 호숫가에 살았던 사람의 1년간의 기록, 그 이상의 진실이 담긴 책이다. 좋은 인연을 만들고 싶을 때 한 권 건네고 싶은 마음이다.
<책에서>
…나는 다른 모든 저자들에게도 남의 생활에 대하여 주워들은 이야기만을 하지 말고 자기 인생에 대한 소박하고 성실한 이야기를 해줄 것을 부탁하고 싶다. -p.10
여러분은 병들 때를 대비하여 돈을 벌려고 무척이나 애를 쓴다. 그 돈을 보관할 장소가 낡은 장롱이든, 벽 뒤에 숨겨 둔 양말짝이든, 또는 보다 안전한 벽돌로 지은 은행이든 관계없으며, 금액도 크든 작든 관계없다. 그러나 돈을 벌려고 너무나 무리를 한 결과 끝내 여러분은 병이 들고 마는 것이다. -p.15
피라미드에 대해서 말할 것 같으면,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어떤 야심만만한 멍청이의 무덤을 만드느라고 자신들의 전 인생을 허비하도록 강요되었다는 사실 말고는 별로 놀라울 것이 없다. -p.84
변질된 선행에서 풍기는 악취처럼 고약한 냄새는 없다. -p.106
사상이라는 탄환은 듣는 사람의 귀에 도착하기 전에 좌우상하의 동요를 극복하고 마지막의 일정한 탄도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탄환은 듣는 사람의 머리를 뚫고 반대 방향으로 나올지 모른다. -p.201
가장 야성적인 동물이라 하더라도 편안함과 따뜻함을 좋아하는 것은 사람과 다를 바 없다. 그것을 얻으려고 충분한 노력을 하기 때문에 그들은 겨울을 살아서 넘기는 것이다. -p.364
진실로 바라건대 당신 내부에 있는 신대륙과 신세계를 발견하는 콜럼버스가 되라. 그리하여 무역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상을 위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라. 각자는 하나의 왕국의 주인이며, 그에 비하면 러시아 황제의 대제국은 보잘것없는 작은 나라, 얼음에 의해 남겨진 풀 더미에 불과하다. -p.457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두라. 그 북소리의 음률이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p.465
샐비어 같은 약초를 가꾸듯 가난을 가꾸어라. 옷이든 친구이든 새로운 것을 얻으려고 너무 애쓰지 마라. 헌 옷은 뒤집어서 다시 짓고 옛 친구들에게로 돌아가라. 사물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우리들이다. -p.46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