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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뒷모습 | 미셸 투르니에 글 | 에두아르 부바 사진 | 김화영 역
    문학 2012. 1. 7. 15:51

    뒷모습
    국내도서>소설
    저자 : 미셸 투르니에 / 김화영역
    출판 : 현대문학 200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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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상깊은 구절

    수영복의 표면적은 그걸 가진 사람의 재산에 반비례하는 법. 때문에 아주 큰 부자들은 아예 벌거벗고 헤엄친다. 부자들은 물론 수영을 할 줄 알기에. 가난한 사람들은 수줍다. 추위를 타고 겁이 많다. 그래서 세상의 첫날처럼, 세상의 마지막 날처럼, 아주 조금씩만 앞으로 나가본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아주 오랜만에 책에 대한 글을 쓴다. 시간은 없었고, 나는 사람을 만나야했고 책을 만날 시간은 자꾸만 부족해졌다. 미셸 투르니에의 독특한 시각이 담긴 사진집이 책상 위에서 먼지에 덮혀가는 중이었다. 어젯밤 친구와 함께 칵테일 한 잔을 나누고 돌아왔을 때, 직선 하나 없이 아릿한 여체가 눈을 끌었다. 주저 없이 내 손은 이 책을 집었고, 어둑한 흑백 사진첩을 훑어나갔다. 모두 '뒷모습'이 담긴 사진들이었다. 그리고 한 쪽에는 낙서처럼 적힌 투르니에의 끄적임들.

     

    1. 진심의 뒷모습

     

      돌아서는 연인의 뒷모습에서는 그의 마음이 드러난다. 미묘한 각도로 구부러진 어깨와 무겁게 보이는 구두를 옮기는 다리는 진심을 말한다. 입으로 말하는 이별이 거짓이 되는 순간은 뒷모습을 들키는 시점이다. 그래서 주도면밀한 사람은 헤어짐을 얘기할 때 먼저 등을 돌리지 않는다. 강하고 냉정하게 이별을 말한다. 담담한 표정과 섬세한 미소만으로 그녀를-그를 떠나보낸다. (물론, 진심으로 마음이 떠났다면 뒤돌아서도 꼿꼿하고 가벼운 뒷모습을 보일 수 있으리라.)
     

      말은 언제든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물이다. 레고처럼 차곡차곡 조립하면, 이 세상을 모두 거짓으로 채울 수도 있다. 진실은 언제나 드러나지 않을 것으로부터 피어난다. 사랑을 말하는 사람의 눈을 보며 진실을 알 수 있고, 맞잡은 손의 움직임으로도 감정을 알 수 있는 일이다. 몸짓 언어는 말보다 솔직하다. 뒷모습은 어쩔 수 없는 몸짓 언어다. 꾸밀 수도 없고, 자신이 보며 조작할 수도 없는 마음의 통로가 된다.

     

    2. 흑백사진의 솔직함

     

      아메리카노 한 잔의 맛이 난다. 검고 희고 그 사이의 무수한 회색들의 농담으로 그려낸 생의 한 순간. 흑백사진은 빛의 작품이다. 빛이 보여주는 윤곽과 그림자의 구분, 알듯 말듯한 표정과 몸짓들, 배경과 몸을 구분해주는 섬세한 회색선들. 어느 것 하나 쉽게 지나치기 어려운 끌림이다. 총천연색의 세상을 빛으로 조각한 그림. 그 탓에 몸매가 더 잘 드러나고, 얼굴의 굴곡이 더욱 잘 드러나는 것이다.
     

      많은 것을 제거하고 나면, 쉽게 볼 수 없었던 세계를 느낄 수 있다. 마음에 많은 부담을 지니고 다닐 때보다, 무소유의 마음으로 길을 나설 때 세상이 넓게 열리며 다가온다. 화려한 꾸밈은 감추고 싶은 게 많기 때문이다. 담백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솔직함은 치장하지 않는다.

     

    3. 해석의 놀이

     

      눈은 오로지 자신의 도구다. 어떻게 세상을 보든, 어떻게 해석하든 오로지 자신의 눈과 마음에 달린 일이다. 나는 미셸 투르니에의 눈과 마음이 좋다. 그의 철학은 양념소스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생각의 거울>에서 느꼈던 깊은 맛과,  <외면일기>에서 마셨던 상쾌함. 이 책, <뒷모습>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투르니에 표 양념소스가 들어가면, 생각할 "꺼리"가 되고 만다. 도저히 먹지 않고는 발을 돌릴 수 없는 일품요리가 되어버린다.
     

      이젠 한 팀으로 여겨진다. 김화영 교수와 미셸 투르니에. 두 거장이 프랑스와 우리나라에 심어놓은 글들을 찾아 곱씹는 일이 꽤나 즐겁다. 내게는 즐거운 놀이가 되고 만다. 사진을 보고,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사건을 보고 나는 오늘도 해석의 놀이에 또 빠지고 만다. 이 병을 심어둔 것은 전적으로 투르니에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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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oem_정원사_책들이 있는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