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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의 감옥 | 미하엘 엔데
    문학 2012. 1. 7. 15:48

    자유의 감옥 (양장)
    국내도서>소설
    저자 : 미하엘 엔데(Michael Andreas Helmuth Ende) / 이병서역
    출판 : 보물창고 2008.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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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박 5일간의 휴가를 나왔을 때다. 나는 책이 고팠고, 눈은 반짝이는 종이 위를 가로지르며 놓인 활자를 만지고 싶어 했다. 너무나 현실적인, 이성적인 삶을 떠나고 싶어서 동화를 찾았고, 그 첫걸음을 옮기던 차에 떠오른 사람이 엔데 할배였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동화를 찾게 만들어준 할배. <모모>를 읽으며 다가왔던 이야기의 감촉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끝없는 이야기>와 <자유의 감옥>을 덜컥 입양해버렸다. 그게 벌써 3개월이 되어간다. 주말의 당직근무, 이때가 절호의 기회였고 나는 단숨에 읽어 내렸다.

     

    # 1. 이야기로 철학하기

     

      엔데 할배의 말은 어렵지 않다. 현대 서양철학에서 사용하는 학문적 용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결코 낮은 차원이 아닌 얘기를 술렁술렁 쉽게 풀어놓는다. 이야기에 감추어진 능력을 다시 발견하는 순간이다.

    이야기는 이상한 물건이다. 호기심으로 이루어진 한 뭉치의 실타래다. 처음 풀어내는 실마리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마음을 "낚는다." 사람의 호기심만큼 대단한 동력은 없을 것이다. (옛 이야기에 쏠쏠하게 나오는 "뒤돌아보지 마!"류의 이야기처럼.)

     

      미하엘 엔데 할배의 이야기를 좇다보면, 어느새 '철학'의 실패에 자기가 이끌려 와있음을 느끼게 된다. 주인공을 따라 환상의 세계를 이저리 떠돌며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해보는 경험도 할 수 있고, 3차원에서 구성할 수 없는 4차원의 도형들도 마음에 그려보는 연습을 하게 된다.

     

    # 2.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함께

     

      이 단편 소설 모음집의 두 번째 작품인 <보로메오 콜미의 통로>는 보르헤스가 즐겨 사용하는 서술 기법으로 쓰였다. 부제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에게 바침"이라고 되어있을 만큼이나 문장을 풀어가는 맛이 비슷하다.

     

      주석달기 놀이. 지식과 책은 사기를 치려면 주석을 가지고 놀면 된다. 현실에 없는 내용을 사실처럼 꾸미기 위해서는 단지, 그럴듯한 제목의 책이나 논문의 제목을 달고 형식에 맞춰서 주석을 끼워 넣기만 하면 된다. 주석에 실린 정보를 직접 찾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냥 믿어버리고 말지. 재밌고 조금은 황당한 놀이지만, 보르헤스 영감이나 엔데 할배의 주석달기 놀이는 또, 독자의 머리에 피가 돌게 만든다.

     

      어차피 "나"의 두 팔 안에 포함되지 않으면, 모두 건너 듣는 이야기다. 두 팔 너머에 있는 이야기들의 진실은 증명할 방법이 없다. 이렇게 또 다른 현실 공간이 창조된다. 새로운 현실적 공간은 새로운 사고를 가능하게 만들어주니까, 영감쟁이와 할배를 비난할 방법이 없다.

     

    # 3. 재탕, 삼탕의 가능성

     

      <어린왕자>가 그렇고 윤동주의 시가 그렇다. 두 번 읽고, 세 번 읽으면 그 맛이 깊어지고 새로운 의미가 솟아나는 작품들처럼, <자유의 감옥>도 그럴 책이다. 어떤 책이든 같겠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그런데 <자유의 감옥>의 경우에는 계속해서 낯설음을 던져준다. "옛다, 이거 한 번 생각해 보거라." 하고는 던져준다. 지금 읽고, 내년에 읽고, 내후년에 읽어도 새로울 내용이다. 시간과 공간, 삶의 자유와 책임에 대해 진지한 고민거리를 마음에 밀어 넣는다.

     

    "우리는 우연히 이 세상에 던져졌고, 또 우연 중에 이 세상을 뜨게 되는 기란다. 그 와중에 우리한테는 마술이라는 걸 할 수 있는 시간이 쪼매이 주어졌을 뿐인 기라." -P.313 <길잡이의 전설>

     

      이 문장들 속에서 '마술' 대신 자신이 하고 싶거나 하는 일을 넣는다면, 쉽게 넘어가지 않는 문장이 되고 만다.

     

    <책에서>

     

      여자는 남자가 흘리는 눈물의 의미가 지신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 느낄 수 있기에, 자신의 운명을 남자에게 맡길 수 있는 것이다. -p.50 <긴 여행의 목표>

     

      "그걸 몰랐단 말이야? 하긴…… 너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것 아니면 저것을 결정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믿어 왔겠지. 하지만 실제로 네가 기대하는 일이 진짜 일어나게 될지에 대해서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을 거야. 너의 그 훌륭한 이유라는 것은 언제나 꿈과 망상에 지나지 않았어. 마치 너를 현혹시키는 암시의 그림이 이 문들 위에 그려져 있는 것처럼 말이야. 인간은 장님이나 마찬가지지. 그래서 그의 모든 행동은 어둠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어." -p.270 <자유의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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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oem_정원사_책들이 있는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