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의 건축 | 알랭 드 보통문학 2012. 1. 6. 10:05
- 행복의 건축 (양장)
- 국내도서>시/에세이
- 저자 :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 정영목역
- 출판 : 청미래 2011.08.10
지루했었다. 지성과 감성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에세이스트의 건축미학론을 눈으로 훑는 게 쉽지 않았다. 보통 아저씨의 다른 책 <여행의 기술>, <불안>, <동물원에 가기>는 술렁술렁 넘어갔지만 유독, 이 녀석은 그렇지 못했다. 1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나는 건축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됐다. 그제야 다시 펼쳐든 책에서 빛을 발견했다. 회색으로 가득한 콘크리트와 뾰족한 철근들 사이에서 지쳐가던 내게 단비가 됐다.
보통 아저씨는 늘 혼잣말처럼 읊조린다. 누가 듣든 말든 개의치 않고, 마음 속에 비치는 한 줄기 빛을 따라 거닌다. 그러다가 스치는 작은 돌멩이를 보고, 느끼고, 깨닫는다. 가는 걸음을 멈추고 다시 한움큼의 문장을 쏟아낸다. "유레카"를 궁시렁거리는 보통 아저씨의 환상이 스친다. 보통 아저씨의 얘기는 별 것 아닌 일상을 다시 볼 수 있게 우리의 눈을 닦아준다.
전문 분야인 건축을 에세이스트가 주물럭거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통 아저씨의 에세이는 건축가에게 일침을 놓을 만큼 전문가의 눈과 입으로 얘기한다. 사람은 자신의 몸만큼 느끼고 생각한다. 거리를 거닐고, 벽에 등을 기대고, 손으로 딱딱한 방문을 열어 제낄 때마다 건축물과 사람은 소통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 부분을 망각하며 살아간다. 전문적인 분야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자신을 스스로 소외시켜 놓는 실수를 저지른다. 문학을 전공했다고 집에서 살지 않는 것도 아니고, 건축을 전공했다고 소설을 읽지 않는 게 아니다. 나도 요 몇 개월 동안 나를 소외시켰다.
사람이 만들어 낸 모든 것은 손을 떠나는 순간,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 오감으로 먼저 사람에게 자극을 준다. 강남의 빽빽한 빌딩 사이를 거닐면 몸이 감각 정보를 처리하느라 바빠지는 것을 느낀다. 하늘의 평수를 줄이는 건물을 보고, 유리문을 여닫는 감촉을 느끼고, 건물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 날의 내 마음이 어떤 색깔을 품었냐에 달렸다. 보통 아저씨는 건물과 사람이 소통하는 순간에 필요한 것을 적절하게 설명한다.
많은 아름다운 것들은 고통과 대화할 때 그 가치가 드러난다. 결국 슬픔을 아는 것이 건축을 감상하는 특별한 선행조건이 되는 것이다. 다른 조건들은 옆으로 밀어놓더라도, 우선 약간은 슬퍼야 건물들이 제대로 우리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것이다. -p.27
문학 작품을 읽거나, 그림을 보면서 우리는 수많은 감정의 바다를 경험한다. 나 역시 빡빡한 일상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어서 책을 읽고, 미술관에 간다. 때로는 건물에서 감동을 받기도 한다. 리움 미술관의 하얀 달팽이 계단에서 깊은 고독을 느끼기도 하고, 삐걱이는 나무 바닥에서 따스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 부분을 놓치지 않고 읊는 보통 아저씨의 섬세함이란!
사람의 마음은 세상을 결정한다. 굳이 해골바가지 물 이야기처럼 오래된 얘기를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보통 아저씨는 사람의 마음에 자리잡는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성형되는지 힌트를 준다.
낭만주의적인 믿음에 따르면 우리는 각자 자연스럽게 아름다움에 관한 적당한 관념을 갖게 된다고 하지만, 우리의 시각적이고 감정적인 기능은 무엇에 주목하고 무엇을 높이 평가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줄 외적인 안내자를 항상 요구하는 것 같다. 우리의 감각을 통해 받아들인 많은 것들 가운데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어떻게 가치를 할당할지 판단하는 데 도움을 주는 힘을 우리는 '교양'이라고 부른다. -p.279
건축을 이야기하며 행복을 논하다, 행복을 이야기하며 아름다움을 읊는다. 보통 아저씨의 마음 속 이야기들은 어절과 어절 사이의 공백을 넘을 때마다 우리의 마음을 뛰게 만든다. 보통 아저씨의 길은 여전히 멀리 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 있는 빛에 이르는 길을 걷는 보통 아저씨. 작은 것에서 보고, 느끼고, 깨닫는 일에 취한 대머리 아저씨의 놀이는 아직도 멀었다. 급한 성질 자랑하는 분이라면 아예 만나지 않기를, 카페에서 노닥이며 낙서를 즐기는 분이라면 지금 당장 서점으로 가서 보통 아저씨와 만나기를.
<책에서>
어떤 장소의 전망이 우리의 전망과 부합되고 또 그것을 정당화해준다면, 우리는 그곳을 '집'이라는 말로 부르곤 한다. 꼭 우리가 영구히 거주하거나 우리 옷을 보관해주어야 집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아니다. 어떤 건물과 관련하여 집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단지 그것이 우리가 귀중하게 여기는 내적인 노래와 조화를 이룬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방식일 뿐이다. 집은 공항이나 도서관일 수도 있고, 정원이나 도로변 식당일 수도 있다. -p.111
우리는 사람들이 무엇이 결여되어 있기에 저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할까 하고 물어야 한다. 그들의 선택에 열광하지는 못한다 해도 그들의 박탈감은 이해할 수 있다. -p.175
우아란 건축물이 힘만 쓰는 것이 아니라 세련되고 경제적인 모습으로 저항의 행동을 할 때-지탱하거나, 가로지르거나, 보호할 때-드러나는 특질이다. 자신이 넘어선 난관을 강조하지 않는 겸손함을 보여줄 때 드러난다는 것이다. -p.22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