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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_The Art of Conversation─MUST HAVE_無序錄 2011. 12. 31. 15:01
Rene Magritte, 아 이 사람. 참 대단하기도 한 사람이다. 평범하고, 인자하게 생긴 할아버지의 마음속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할배 말로는, 눈에 보이는 것만 다루었다는데 그림을 접하면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눈에 보이는 현실의 사물들을 조금씩 따와서 요상한 조합으로 만들어 냈다. 그런데 이게 웃긴 부분이다. 말이 된다.시적(詩的) 허용은 정말 편리한 도구다. 마음대로 내키는 대로 물감을 “찌끄리고”는 시적인 제목을 하나 달아 두면, 어이없게도 말이 되고 만다. 문학에서도 그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광고에서도 역시 그런 기법을 많이 쓰고. 기호와 상징이란 도구들은 언제까지나 상상하는 사람의 연장으로 충실하게 부려질 것이다.
오늘은 마그리트의 그림을 보러갔다. 중절모를 쓰고 검은 슈트를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할아버지는 건조한 느낌이 나는 색들로 캔버스나 종이를 채워 넣었다. 물론, 그 위의 자리는 모두 현실적이고 오묘한 녀석들을 위한 공간이다.
내 구미에 딱 들어맞는 그림이 있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원작으로 보고팠던 그림을 많이 볼 수 없었다. 그래도 몇 작품들은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고, 그 중에 한 그림은 대뇌피질에 있는 뉴런들을 바삐 움직이게 만들었다.
대화의 기술 The Art of Conversation
Oil on Canvas, 1950, 60x81cm
대화는 두 사람이 쌓아가는 건축물이다. 서로 각자의 말과 어투를 재료로 삼아서, 매 순간마다 심혈을 기울이며 쌓아야 하는 건축물이다. 단어, 말로 된 벽돌들은 상당히 거칠어서 서로 신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멋진 형태는커녕 제대로 쌓아 올리지도 못한다. 그림 속의 두 남자는 비교적 탁월한 대화의 기술을 지닌 사람인 듯하다. 아파트 5층 이상의 높이만큼은 쌓아 올린 모습이다.
대화에 완벽은 없다. 서로가 배려하며, 단어 선택도 신중하게 했더라도 그림에서처럼 구멍이 뚫린 조형물밖에는 만들지 못한다. 빗물이 스며들지 않는 공고한 건축물을 세울 수 없다. 이 부분에 대한 변명은, 언어 자체에 대한 불완전성 탓으로 돌리거나 대화 주인공들의 부족한 배려 탓으로 돌릴 수도 있을 테다.
나는 이 조형물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듬성듬성 비어있는 공간을 통해, 상쾌한 하늘이 보이고 구름도 보인다. 가득 막혀 있다면, 두 사람을 억누르는 “대화의 벽”이 될 것 같은 겁도 난다. 네모진 거대한 돌을 이용해서 땅위에 봉긋 솟아 오른 가슴(breast)처럼 보이기도 한다. 숨이 드나들 수 있는 여백과, 둥근 모양으로 솟은 언어의 가슴은 생명이 느껴진다. 또 다른 생각, 가능성이 무한하게 느껴진다. 두 사람이 보여주고 있는 대화의 기술은, 주고받는 말과 거기서 탄생하는 새로운 산물을 말한다. 여기서 스쳐가는 이미지가 하나 있었다.
MUST HAVE_
SKY 광고 시리즈 센스 편
광고는 선전이다. 선전은 대중을 상대로 한다. 선전을 만드는 사람은 대화(Conversation)를 고려하지 않고, 말하기(Speaking)에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일까. 이 광고 카피의 이미지는 분명, 마그리트의 “대화의 기술”에서 따온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생명이 느껴지지 않는다. 답답한 강압과 딱딱한 명령만 느껴진다. 게다가 “MUST HAVE”라니. 삶에 진정으로 “MUST”가 어울릴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있을까.
딴지 하나 더하기. MUST HAVE 시리즈는 죄다 길을 막는다. 신나게 달리고 있는 자전거를 가로 막고, 자동차가 달리는 길을 막아 세운다. 그리고 말한다. “니들은 이걸 꼭 가져야만 이 길을 계속 달릴 수 있어”라고. 위에 있는 “센스”를 꼭 가져야만 이 길을 통과할 수 있다는 카피는 오만으로 똘똘 뭉쳐있는 것 같다. SKY를 손에 쥐고 있어야만, 센스가 있다는 말만 끝없이 해댄다.
대화는 둘 이상의 사람이 함께 만들어 가는 거다. 훼손하는 모방은 오마주가 아니다. 원작에 대한 이미지를 훼손하는 일이다. “MUST HAVE”는 죽어있는 “대화의 기술(The Art of Conversatio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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