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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들 | 요시다 슈이치문학 2012. 12. 25. 00:26
일요일.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한 느낌이 있다. 달력 왼편에 늘어선 일요일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희망이 떠오른다. 물론, 그 희망이 상쾌한 아침에 막 짜낸 오렌지 주스같은 느낌이라면, 참 좋겠다. 이건 판도라 탓이다. 그래도 '헛된 희망'만큼은 상자 속에 꼭꼭 숨겨둔 덕분인지 언제나 희망만큼은 밝다. 야무진 꿈을 깨뜨리는 건, 죽음 같은 핸드폰 알람이긴 하지만.
넥스트의 그 노래가 떠올랐다. 11월의 일요일 오후면, 일 년에 한 번은 '얄리'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앞에는 수요일 오후가 되면, 병아리 파는 아저씨가 왔다. 삑─삑─거리는 울음소리가 애처롭게 들렸던 2학년 때, 두 마리를 샀다. 주머니를 뒤집어서 나왔던 동전들이 두 목숨의 값이었다. 꿈틀대는 녀석들을 집에 데려갔을 때, 서러워졌다. "이런 병아리는 곧 죽을 거야"라는 엄마 말. 그렇게 나는 도시 아이로 차츰 길들여졌었고, 넥스트의 '날아라 병아리'를 들을 때마다 이상한 감정에 빠져들었다. 이 책을 읽은 뒤에도 그 비슷한 느낌이 흔들었다.
#1. 도시인과 그리움.
내가 살고 있는 서울도 그렇지만, 이 책에 얼핏 느껴지는 도쿄의 느낌도 비슷하다.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스쳐간다.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알지도 못한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아파트에 살더라도, 이웃을 잘 알지 못한다. 서로에게 무관심한 모습으로, 말 없이 엘리베이터 버튼만 누르고 만다. 정말 그럴까. 속 마음도 정말 그럴까.
#2. 다섯 개의 일요일 꼬치.
7~8년의 회상과 현재가 엇갈리는 다섯 개의 이야기는 일상을 다룬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비포장 도로를 달려 왔다. 시골길을 달리는 버스의 풍경이 떠오른다. 그래서일까, 모든 주인공들은 한 쌍의 형제를 만나고, '마음'을 나누어 준다. 어떤 친절은 타꼬야끼가 되었고, 어떤 친절은 초밥이 되었다. 하나씩 하나씩. 그리고 동떨어진 것 같은 다섯 개의 일요일들은, 그 형제가 꼬챙이처럼 엮어버렸다.
#3. 말 없는 대화.
도시인은 표현에 서툴다. 자신의 마음을 이웃에게 베풀기 어려워한다. 자신의 친절이 혹여,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낯선 어른들이 말을 걸면, 어린 아이들은 겁을 먹는다. 경계하는 눈빛이 따끔거릴 만큼. 일요일들을 관통하는 형제들도 같은 모습이었고, 일요일을 살아가는 다섯 주인공들도 같은 모습이었다. 음식은 사람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힘이 있다. 배가 따뜻하면,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걸까. 타꼬야끼, 초밥, 마중, 안아주기, 관심. 작은 친절들은 조금씩 힘을 발휘한다. 별다른 말이 오가지는 않지만, 대화가 통하는 느낌처럼.
사람들은 도시에서 자라면서, 굳어간다. '디즈니 만화동산'을 기다리며 두근대던 시절은 사진처럼 바래간다. 마음 속에 집을 짓고, 커다란 철문을 굳게 잠궈간다. 날아라 병아리를 들으면서. 11월의 처음 흩날리는 플라타너스 잎을 보면서 의심했다. 마음 속의 건축업자가 본능일까. 아마도 아닌 느낌. 그래, 오늘부터 나도 다른 사람을 위해 버스 하차벨이라도 대신 눌러 주리라 다짐하고 만다.
<책에서>
"아니, 너는 네 아파트에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도 모른단 말이냐?"
물론 그 말에 "아버지는 도쿄 사람들이 이웃들하고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셔서 그래요." 하고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 새시문 너머에서 열심히 유리창을 닦고 있는 마사카츠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런 식으로 웃어넘기면서 자신이 꼭 무언가를 외면하고 있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pp.152
"이거, 약속의 징표야. 절대로 너희 둘을 헤어지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의 징표. 이걸 갖고 있으면 괜찮아. 만약 이걸로도 안 되면 그땐 누나한테 와. 내가 너희 두 사람 꼭 도와 줄테니까."
별 특징도 없는 은귀걸이였다. 제 자신도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얼떨결에 나온 소리 같기도 하고, 정말로 가슴에서 우러나 한 말 같기도 했다. -p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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