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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애소설 | 가네시로 가즈키
    문학 2012. 12. 25. 00:00




    연애소설

    저자
    가네시로 가즈키 지음
    출판사
    북폴리오 | 2006-02-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나오키상 수상작인 《GO》와 《레볼루션 No. 3》, 《플라이,...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꿈을 꾼다. 나와 그녀는 손을 맞잡는다. 내가 가진 생명을 손으로 조금씩 흘리며, 그 사람의 삶을 이어간다. 저릿저릿한 느낌이 손을 휘감고, 그녀가 보내는 생명이 느껴진다. 아무런 말도 없다. 아니, 말은 이미 손으로 하고 있다. 차갑게 식은 그녀의 손은 작았다. 가끔 가만히 손을 대보면, 내 손가락 한 마디가 불쑥 나와서, 서로 헤헤거리며 두 눈을 감았다.

     

      물이 끓는다. 부륵부륵대는 소리는 이제 낯설지 않다. 파블로프도 그렇게 개를 길들였다. 가스렌지의 불을 껐다. 가스밸브도 잠갔다. 아까 마시다가 놓아둔 물컵을 들고, 아직 남았던 물을 싱크대에 쏟아버렸다. 컵에 있는 물기가 막 집어 넣은 녹차 티백을 붙게했다. 바짝 말라서 꿈조차 잃어버린 녹차가 종이 봉투 안에서 자고있다. '이제 깨어날 때가 됐어. 일어나.' 나는 주문을 외우며 주전자를 들어 컵에 따른다. 녹차 티백은 순식간에 젖었다. 하얀 컵이 순간에 물든다. 녹차가 숨을 쉬기 시작하면서 종이 봉투는 부풀어 올랐다. 기억은 뜨거운 물에 닿은 티백처럼 순식간에 부풀어 오른다. 첫 마디 말이 힘든 것처럼, 얽힌 실패의 실마리를 찾아 잡는 것처럼.

     

      연애는 신비하다. 연애는 언제나 일정한 양만 쉬지않고 흘리는 모래시계까지 조절한다. 나와 그녀의 맞잡은 순간에 연애는 힘을 썼다. 우리 둘이 그 녀석 등에 올라탈 때면, 축축한 안개에 어느덧 젖었던 속옥의 느낌이 따라다녔다.

     

      중학교 일 학년 때, 밤이면 꿈을 꿨다. 이쪽의 절벽에서 저쪽의 절벽을 향해 놓인 기찻길. 언제나 기차는 그 선로를 탔다. 나는 창문을 열고 밑을 보면,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정신이 아득해왔다. 둘레에 펼쳐진 아름드리 나무들과 그 사이사이에 앉아 지저귀던 새들의 노래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아득한 저 밑의 계곡만이 내 눈을 뽑을 듯 당겼다. 하나-둘-셋. 기차가 '덜컹'이는 순간에 나는, 창에서 스륵 빠지며 계곡을 향한다. 심장이 덜컹이며, '우와아!' 단발의 외침과 함께 난 꿈에서 깼다. 축축한 안개가 내 몸을 감싸고 있었다.

     

      떨어지며 덜컹이는 느낌과, 우리가 두 손을 맞잡고 연애에 올라타는 느낌이 같았다. 비슷했다는 게 더 솔직하겠지만, 나의 손과 그녀의 손이 아득해지며 손끝과 손끝이 스륵─비끼며 마지막 접촉까지 끝나면.

      덜컹.

     

      가네시로의 이번 소설은 꿈을 떠올리게 했다. 바짝말랐던 녹차. 티백에 담아 둔 녹차에 방금 끓인 물을 부었다. 갑자기 내 꿈은 숨을 쉬며 나에게 말을 걸어왔고, 덜컹이던 심장도 말을 걸어온다.

      "나랑 얘기하자"며.

     

    <책에서>

      가을은 소리 없이 깊어가고.

      지금 내게는, 후회할 일이 하나도 없다.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기억만이 있을 뿐. 달리기 시합에서 출발하면서 넘어졌던 일, 밸런타인 데이에 차였던 일, 오키나와에서 물에 빠져 죽을 뻔했던 일, 모두모두 사랑스럽다. 그 모든 기억을 간직하고, 다가올 겨울을 맞으리라.

      차는 상태가 아주 좋다.

      이 세상 끝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이 세상은 멋지다.

      나는 아무 상처 없이 돌아오리라.

     

      -p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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