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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2 | 노암 촘스키
    비문학 2012. 12. 24. 18:11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2: 권력이 세상을 지배하는 방식에 관하여

    저자
    노암 촘스키 지음
    출판사
    시대의창 | 2005-12-16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촘스키가 10년 동안의 간담회, 연설회, 세미나 등을 통해 '세...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고백하건대 나도 정규 학교교육과정을 벗어나지 못한 아이. 좌파에 대한 약간의 긍정적 입장에 서 있었지만, 그것이 권력자들이 펼쳐 놓은 통제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지 못했다. 보고 다시 봐도 세상은 지배하려는 엘리트와 통제를 벗어나려는 민중, 그리고 통제 받기를 원하는 대중으로 나뉘어 있는 것 같다.

     

      학교에서 "제대로 배웠다면" 사회주의에 대한 개념을 소비에트나 중국의 그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나도 촘선생의 말을 듣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소설을 분석하며 읽을 때에도 소련의 몰락이 사회주의의 몰락을 상징하고 있었다고 '전제'하곤 했다. 다시 제대로 한 번 더 찝혔다. 솔직한 촘선생이 이렇게 말한다.

     

      [사회주의라는 사상을 완전 박멸하려는 일관된 노력에 의해 사회주의는 곧 소비에트 전체주의와 같은 것으로 둔갑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박멸 노력은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사람들이 소련의 사태를 쳐다보면 거의 자동적으로 사회주의는 망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소련의 진정한 체제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려고 하지 않고 말입니다. 그걸 내세우기만 하면 사회 체제의 진정한 변화를 위한 미국 내의 운동을 아주 간단히 견제할 수 있으니까요.

      "이봐, 자꾸 사회 체제의 변화라는 말을 하는데 그거 까놓고 말하자면 사회주의 하자는 거잖아. 그 사회주의가 어떤 꼬락서니가 되었는지, 소련의 사례를 한 번 보라고."]

     

      뭐랄까. 나도 충실하게 속아왔다. 문학 비평서를 읽으며 미심쩍게 생각하지도 못한 나도 제대로 속아왔다. 아니, 학점을 따려고 하면, 저항해서는 안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 같은 학생들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 주류 언론들이 개인적이라고 하는 그것. "너희들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너희는 혼자야. 너희는 서로 떨어져 있어. 너희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했잖아. 그러니 앞으로도 성취하지 못할거야." 세상은 무섭게 돌아가고 있었다.

     

      지도자에 관한 이야기도 한다. 촘선생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민중의 단결된 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역사 속의 변화를 이끌어 낸 사람들은 '누구누구'라고 이름이 실려 있는 그들이 아니라, 실제 행동가들이 많은 일을 했다는 것을 입 밖으로 얘기하는 촘선생. 그가 고백하듯이 백인에 특권층에 속한 사람이기에 이런 입바른 소리를 해도 무사할 수 있는가 보다.

     

      [민중들에게서 그들이 변화의 주체라는 생각을 뺏어버리는 기술 가운데 하나는, 변화의 진정한 행동가는 민중이 아니라 지도자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위인사관을 내세워야 민중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무기력하니 위인이 나타나 그들을 지도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지연 전술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촘선생의 이 이야기를 듣고, 번뜩 스쳐가는 사람이 있었다. '박통'. IMF시절인 것 같은데, 주변에서 심심찮게 듣던 소리였다. "차라리 박통이 다시 살아나서 대통령이 된다면 더 낫지 않을까"라는 푸념. 메시아를 기다리는 종교인들. 왜 그들 스스로 걸을 수 있는 두 다리와 생각할 수 있는 뇌를 타고 났음을 망각하고 있는 것인지 늘 불쾌했던 기분의 정체를 깨닫게 된 계기였다. 요즘엔 그래도 좀 달라진 것 같다. FTA로 날씨만큼이나 구질구질한 오늘, 사람들은 집회를 열고 두 다리도 우뚝 서서 걷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행이다.

     

      촘선생은 상당한 분량의 대화를 통해서 사회 권력이 이데올로기화 시켜 놓은 것에 대해 깐죽거린다. 미국이란 나라에서 몇 년 전에 한 이야기를 내가 지금 책으로 읽고 있지만서도, 정치계에서 정말 꺼릴만한 사람같다. 용어에 실린 전제를 깨는 데에,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2. 가장 앞에서는 사회주의와 소비에트 체제의 분리를 시도하더니, 책의 절반 정도에 와서는 '아나키'와 '혼란'의 구분을 시도한다.

     

      [사회철학으로서의 아나키는 "혼란"을 의미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나키스트들은 전통적으로 고도조직사회, 그러니까 밑으로부터 민주적으로 조직되는 그런 사회를 신봉했습니다.]

     

      오호라. 만쉐이 촘선생. 내 사전을 깁게 만드는 소리. "모든 형태의 권위, 지배, 위계제, 그리고 모든 권위주의적 구조는 그것이 정당화되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해"라고 얘기하는 촘선생. 맞습니다. 같은 인간으로 난 이상, 따지고 들어야 할 부분이 있지 않을까. 이 정도 얘기가 진행되면, 나는 가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가족. 피로 똘똘 뭉친 집단. 아버지의 권위는 내가 엉덩짝 맞아가며 숨쉬는 순간부터 존재하고, 어머니의 무진장한 사랑도 내가 양수 속에서 발차기 했을 그 이전에 생겨났을 거라. 모든 것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라는 한 마디면 ok. 더 이상의 논리는 필요 없다. 싫다. 합리적인 설명을 해 달라. 촘선생의 외침에 싱크로율 200%.

     

      나는 인문학을 사랑하고 지금까지 하면서, 점점 앞을 가로 막고 있는 벽을 느끼게 되었다. 웰렉&워렌의 <문학의 이론>을 읽으면서 내가 문학에 소질이 없는 것인가 좌절했고, 조동일 선생의 <한국문학통사>를 읽으면서 '왜?'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던지고 나서, 깔끔한 언어학으로 마음이 기울게 되었다. 이 부분에 대한 촘선생의 까발리기도 빠지지 않았다. [과학의 사기꾼pp.181]이라는 작은 주제를 들여다 보면, 흥미로운 얘기가 상당했다. 교직을 꿈꾸며 가장 처음 접했던 삐아제. 그 인간 이론의 사기성을 가감 없이 때리고 있는 촘선생.

     

      [어떤 정치적 의도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아젠다를 뒷받침할 "과학적 사기"를 찾게 마련입니다. 이미 엉터리로 판명된 '피아제 이론'을 불변의 진리인양 끌어대는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그리고 촘선생은 아담 스미스의 고전 자유주의와 지금까지 얘기하고 있는 자유주의, 그리고 신자유주의로 넘어가는 일련의 단계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역시나 권력이 그 과정을 어떻게 왜곡하고 이데올로기를 집어 넣고 있는지 까발리는 작업을 계속한다.

     

      [사실을 전적으로 은폐하고 사실과는 정반대의 것을 제시하면서 "내가 읽지 않으니까 아마도 473쪽을 읽는 사람은 없을 거야"라고 짐작하는 겁니다. 이 책을 편집한 사람들에게 473쪽을 읽었느냐고 물어보십시오. 그러면 아마도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첫 번째 문단을 읽었지만 그 나머지는 대학교 수업에서 배운 것을 기억하고 있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시카고 판을 거론하며)]

     

      지식의 사기를 얘기하는 부분, 교육의 사기를 얘기하는 부분에서는 전율이 왔다. "자연과학을 제외한 인문사회 과학의 사기성"을 제대로 까발린다. 나도 늘 고민하고 있었던 부분에 대한 이야기.

     

      [이른바 심오하다고 하는 이론은 대부분 사기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면 그것은 간단히 설명될 수 있어야 합니다.] 옳소.

     

      이 책의 213페이지를 펼치면, [교육과 통제, 길들여지는 사회를 말하다]라는 작은 제목이 시작된다.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이 나에겐 가장 절실하게 다가왔다. 이 부분은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 경쟁으로 통제를 시도하고 있는 학교와 정직한 지식인으로 자라나는 학생을 짓밟는 방법을 얘기하고 있다. 첨부파일로 작성해서 올리는 것이 나을 것 같은 부분이다. 할 얘기가 정말 많다.

     

      #2의 마지막은 마지막 페이지에서 결론내고 있는 것 같다. 한 문단을 옮기며 이 글을 마친다.

     

      [우리는 1960년대 운동과 관련하여 지난 30년 동안 상당한 규모의 변화를 겪어 왔습니다. 일반 대중의 도덕적 가치와 문화적 수준은 혁명적 변화에 가까웠지만, 그런 변화가 제도권에 지속적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지식 문화는 그런 점을 계속 물고 늘어졌습니다. "여러분은 보잘것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왜 입을 다물고 집으로 가지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그들이 늘 우리에게 되풀이해서 들려주는 얘기이고, 우리는 그것이 프로파간다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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