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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선언 | 마르크스, 엥겔스비문학 2012. 12. 24. 23:26"이제까지 사회의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다."마르크스의 선언은 혁명가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림의 탓일까. 저 북실북실한. 그리고 머리털과 수염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하얀 복실이 마르크스. 고등학교까지의 교육과정을 착실하게 밟아오면서 선생님과 어른들, 그리고 신문과 TV를 통해 배웠다. 저기 보이는 마선생─중국어로는 馬克思 선생이라 해요─은 위험하고 못된 "빨갱이"라고.<공산당 선언>은 데이트 코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서점순례를 하던 중에 눈에 띄었고, 살까말까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재밌겠다고 "뽐뿌질"하는 여자친구. 본능이 살아나기 시작했고, 입 안에는 침이 고이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손을 뻗어 잡은 책세상 문고 두 권의 책 중의 하나였다. 다른 한 권은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길지 않은 이 책은 오로지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와, 한적한 길을 걸을 때에만 읽어나갔고, 그 덕분인지 꽤 심상찮은 시선을 느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여러분. 책 읽는다고 잡아가지 마셔요─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지하철에서 읽을 때는 내 앞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책 표지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내게 보냈다. 뭐, 흔들리는 버스나, 길을 걸어 갈 때는 그다지 시선을 느끼지 못했지만, 이용시간이 가장 많은 지하철에서는 유독 앞통수가 따끔거리는 것을 막지 못했다. "반사"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기분 같아서는 마선생도 좋아라하는 목록에 올려 놓고 싶다. 하지만 엄두가 안난다. 이 책에 오로지 공산당 선언에 관련된 부분만 보자면, 서른일곱 장에 불과하다. 그러나 저 길지 않은 글을 읽어 내려가는데 머리가 뻐근. 짧은 글 안에서 마 선생의 다른 모습을 본 것 같다. 예전 철학 교양 수업을 들을 때, 마 선생의 <자본론>은 꼭 보라던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보고 싶지만, 겁났다.모두 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은 공산당 선언으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숙명적인 대립상태, 그리고 공산주의자와의 관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비교 및 대조 등을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의 중요한 부분은 대부분 1장에 담겨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2장은 공산주의의 원칙을 Q&A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고, 3장은 <공산당선언>의 중판 및 번역본들의 서문을 싣고 있었다.중세 시대의 농노와 노예는 자신을 한 번만 팔면 되었다. 농노의 경우에는 처지가 더욱 나아서, 자신이 생산한 곡물 중, 일정량을 바치면 되었다. 노예는 주인에게 한 번 팔려가면, 큰 억압이나 생존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19세기의 그리고 오늘의 노동자는 매일 노동력을 팔아야 실존할 수 있다─고 말하는 마선생.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다르다는 부분은 꽤 흥미로웠다. 요는, 사회주의는 부르주아에게서 수정 대안으로 나오는 것이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 지금 현재에 머무르면, 좀 더 유익하게 만들어 줄테니 사회에 대한 원한과 증오를 던지라고 요구하는 사상이라는 것이었다. 이 외에도 많은 비교가 있었지만, 가장 와 닿은 부분이었다. 대한민국도 여지없이 달려가고 있는 복지사회는 부르주아-사회주의의 그것과 달리 보이지 않았다.공산주의는 실패했다. 마선생의 예언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혁명가로서 마선생은 실패했다. 그러나 철학자로서의 그는 커다란 주춧돌이 된 것 같다. 그의 존재가 도리어 자유민주주의를 공고히 다지는 데에 한 몫을 도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진정한 의미에서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은 영원히 불가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하여,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는 프롤레타리아를 위하여 마선생은 그 몫을 충분히 다 하고 이승을 떠난 것 같다.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었다.<책에서>부르주아지는 개인의 존엄을 교환 가치로 용해시켰고, 문서로 확인되고 정당하게 획득된 수많은 자유들을 단 하나의 비양심적인 상업 자유로 대체했다.프롤레타이아트는 무엇인가?- 프롤레타리아트는 생활비를 어떤 자본의 이윤에서 얻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노동을 팔아서 얻는 사회 계급으로서, 그들의 안녕과 고통, 그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들의 전체 실존이 노동에 대한 수요, 다시 말해 경기의 좋고 나쁜 변화, 고삐 풀린 경쟁의 변동에 좌우되는 계급니다. 프롤레타리아트 또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한마디로 19세기의 노동 계급이다.>> 20세기, 21세기도 해당되는 부분이며, 오늘의 나에게 뼈저리게 다가온다.사적 소유의 폐지는 단번에 가능할 것인가?- 아니다. 기존의 생산력이 공동체 창출에 필요한 정도로 단번에 배가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일도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십중팔구 일어날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은 따라서 점진적으로만 현 사회를 개조할 것이며, 그 다음 사적 소유의 폐지에 필요한 양의 생산 수단이 마련되면 이 제도를 폐지할 것이다.
>> 레닌과 스탈린의 오해. 공산주의의 실패. 마선생이 예언과 생각을 따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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