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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 드니 로베르비문학 2012. 12. 24. 17:46
"나는 지난 세월 미국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잘 알고 있다"
촘스키의 고발과 고백은 생각 이상으로 진실하게 느껴졌다. 내가 꿈꾸는 교육자, 인간상을 촘스키를 통해서 다시 확인했다. 요즘엔 많은 사람들이 뉴스나 신문, 인터넷 뉴스를 보면서 자기 나름의 '덧말'을 통해 불만을 드러낸다. '일등이닷' 이런 등수 놀이 빼고.
촘스키를 알게 된 것은 4년 전, 처음 언어학 관련 교양 수업을 듣게 되면서였다. 그를 처음 접하고 알게 된 것이 언어학 관련이었기에, 나는 자연스레 그를 언어학자의 범주 안에 모셔다 두었고 근 4년을 그 이론을 공부해왔다. 그러다 도서관에서 만난 한 친구. 이 친구는 경제학과 정치학을 공부한다. 그 녀석은 촘스키를 사회학 내지는 정치학자 내지는 비평가로 알고있었다. 언뜻 봐도, 굉장히 멀게 느껴지는 범주에 걸터 앉아 있던 촘스키.
그가 이 책에서도 고백하고 있듯. 이 사람은 특권층이다. 세상의 진실-국가와 거대 기업, 정치인, 언론의 비리-을 고발해도 손해를 입지 않는 계층에 있다. 지금 상황은 그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으며, 도리어 큰 이익을 주고 있다. 그런데 그 사회를 고발한다. 미국인이지만 미국을 고발하고, 유태인의 피가 그의 몸을 돌고 있지만, 팔레스타인을 옹호한다. 키부츠 생활도 아내와 함께 경험한다. 이 사람의 약력은 언어학을 공부하는 나에게 전율이다. 이런 괴물이(??).
29살에 MIT 언어철학과 부교수가 되고, 32살에 정교수, 37살에 석좌교수가 된 촘선생. 47세부터는 인스티튜트 프로페서(하나의 독립된 학문기관과 동급인 지위)가 되었다. 요즘 말로 '덜덜덜'이다.
촘스키는 줄기차게 '표현의 자유'와 '진실의 규명'을 위해 달려왔다. 거대 기업이 국가 권력의 위에 군림하게 되고, 언론은 기업에 종속되어 정보를 가공해서 퍼뜨리고 지식인들 역시 자신들의 이익과 특권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조작된 동의를 하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고, 글을 쓰고 강연을 한다. 이 책은 촘스키가 프랑스의 드니 로베르, 베로니카 자라쇼비치와 함께 인터뷰 한 글을 정리한 글이 담겨있다.
통찰력 있는 지식인이라면 이른 흐름을 꿰뚫어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식인은 입을 다문 채 대중을 종속시키려는 이런 음모에 가답합니다. 그들의 밥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피에르 부르디외는 "우리는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하는지 배워야 한다. 그것을 배우지 못한 사라은 택시기사로 삶을 끝마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교육제도가 선별 작업을 합니다. 교육제도가 순종과 복종을 조장합니다. 이런 제도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배제됩니다.
촘선생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우리나라 신문에서 삼성에 관련된 비판성 기사를 찾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다. [프라임경제 2006-06-27 17:53] 대한민국은 '삼성기자 공화국'이란 기사에 따르면, [국내 언론사 광고 매출 가운데 8%는 삼성그룹 광고다. 전체 광고의 17%가 삼성 광고인 곳도 있다. 삼성이 광고를 끊으면 언론사가 휘청거린다.]고 한다. 이 기사가 제시하고 있는 수치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를 보이고 싶지는 않지만, 신문을 뒤적이다 발견한 삼성의 광고를 보면, 어느정도 맞는 것 같은 느낌이다.
대중의 각성과 대중의 압박을 시작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 촘선생. 그는 대중의 힘을 믿는다. 나는 대중을 믿지 않고 있다. 인생무상이라고, 내 관점도 언제 변화할지 모르겠다. 만약 대중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한다면, 촘선생의 대중에 대한 신뢰가 어느정도 계기가 자극이 될 것 같다. 인터뷰를 한 대목 옮겨 본다.
Q. 국민이 혁명세력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A.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앞장서서 기존 질서를 뒤바꾸려 한다면 그 대가를 호되게 치러야 할 것입니다.
가령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당신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고 칩시다. 당신의 동료들은 그 혜택을 누릴 수 있겠지만, 당신은 절대 그 열매를 즐길 수 없습니다. 오히려 당신은 끊임없이 회유와 협박에 시달려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요컨대 행동하기 위해서는 그 대가를 기꺼이 치르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특권을 누리는 지식인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반체제 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지식인이 있다고 합시다. 적어도 법치국가인 우리 사회에서 목숨까지야 잃지 않겠지만 적잖은 고통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중상모략과 비난이 빗발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이겨낼 수 없다면 그가 택할 길은 하나뿐닙니다. 반체제운동을 포기하는 길입니다.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반신불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행동하고 싶다면 주변의 소리에 귀를 막아야 합니다. 주변의 소리를 무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유롭게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나는 어떠냐고요? 나야 괜찮습니다. 특권층이니까요. 하지만 아무런 특권도 누리지 못하는 노동자는 그 대가를 호되게 치러야 합니다.
이런 곤경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조직화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노동조합으로 조직화된다면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희생을 수월하게 넘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노동조합과 같은 조직을 파괴하려는 음모가 다각도로 펼쳐지는 것입니다. 선전보다 이런 파괴공작 때문에 국민이 혁명세력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전태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곧 침울해졌다. 촘스키, 그가 말하고 있는 세상은. 거대 기업이 언론과 조작된 동의를 통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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