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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스트 | 프랜시스 후쿠야마비문학 2012. 1. 7. 15:54
- 트러스트
- 국내도서>사회과학
- 저자 : 프랜시스 후쿠야마 / 구승회역
- 출판 :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 1996.10.20
인상깊은 구절
산업구조는 한 나라의 문화에 대해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 준다. 가족적 연대는 매우 튼튼하지만 친족관계가 없는 사람들 간의 신뢰에 바탕을 둔 연대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사회에서는 가족이 소유하고 경영하는 중소기업이 우위를 차지하는 경향이 있다.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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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또 하나의 가족’이 흔들린다. 대한민국의 든든한 버팀목 같은 가족이 기(氣)가 빠졌다. 한국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다시 보여준 태안반도 기름사건과 비싼 미술품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모습을 들킨 일도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트러스트(TRUST)>를 90년대 중반에 쓴다. 이 아저씨는 문화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신뢰의 범위를 연구하고 풀어놓는다. 정말 즐겁고도 마음 상하는 일이다. 한 사람의 학자에 의해 ‘문화’가 발가벗겨지고, 산업구조를 헤집어서 요모조모 따지는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이, 21세기 대한민국 약점이 보인다는 것이.
#1. 문화와 신뢰
문화. 이 넉넉한 의미의 폭을 가진 단어를 어떻게 풀어놓을 수 있을까. 사람이 살아가면서 만들어내고 없애가는 작업의 반복, 그것도 ‘인간 종’의 차원에서. 어떤 학자들은 ‘문화’와 ‘문명’을 나눈다고도 하지만, 나눈다고 해도 어차피 ‘사람과 사회’의 산물로 모아진다.
Culture는 ‘밭을 갈다’라는 어원에서 태어났다. 먹고사는 일. 어쩌면 문화는 먹고사는 일인 경제 행위를 그 바탕으로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경제학은 세상을 바라보며 낄낄댄다. 관심 없는 사람에게 경제학은 기분 나쁘게 웃어대지만, 실은 꽤 괜찮은 녀석인 듯하다. 세상을 풀이가 가능한 ‘문제투성이’로 보고, 숫자를 데려다 부리는 똘똘한 친구 같은 느낌이랄까.
후쿠야마 아저씨가 이 똘똘한 녀석의 손을 잡고 문화를 헤집어 놓는다. 이데올로기 전쟁이 사라지면서 속속 나타나는 문제 가운데 하나인 ‘문화 충돌’을 경제학의 눈으로 얘기한다.
세계는 냉전시기처럼 이데올로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문화에 의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문화 충돌’의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p.22
목에 핏발 세워가며 다투던 냉전의 시계는 죽었다. 이제는 어느 나라가 더 잘사느냐하는 문제가 가장 큰 관심거리가 됐다. 후쿠야마는 잘 살려면 뭐가 바탕이 될까―하는 바닥을 뒤지는 작업을 했다. 잘 사는 나라의 산업 구조와 각국의 문화를 꼼꼼하게 분석했다. 그랬더니 그 속에는 “신뢰”가 있었단다.
#2. 사회적 자본과 신뢰
2008년 1월 22일 매일경제에 단칸 기사가 실렸다. 잘 살 수 있는 건 뭐가 바탕이 될까하는 물음에 대한 글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선진국들 틈바구니에 선 대한민국의 열등감을 친절히 그래프까지 그려가면서 설명했다. (원본기사: 선진국선 國富 81%, 사회적 자본서 창출) 신문을 보면, 아주 쉽게 OECD국가와 비교하며 마음 상하게 하는 기사를 만난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뭣 하러 OECD엔 들어가서 열등감만 키우지?’
이 기사에서는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을 얘기한다. 세계은행은 국부창출의 원천을 세 가지 자본으로 꼽았단다. 가스나 기름과 같은 ‘자연자본’, 공장처럼 뭔가를 만들어내는 ‘생산자본’과 법질서나 신뢰, 지식경쟁력 따위의 ‘무형자본’으로.
대한민국은 자연자본이 거의 없는 나라다. 그러나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제대국이 됐다. 이전 세상에서 여기까지는 ‘생산자본’으로 가능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법질서나 신뢰, 지식경쟁력이 슬슬 곪아가는 모습을 나타낸다. 대한민국의 법질서는 판결문의 문장만큼이나 정신없고, OECD의 국가들에 비해 대학 경쟁력은 턱도 없이 모자라며, 경제인들 사이의 신뢰는 ‘갸우뚱’ 정도다.
사회적 자본은 한 사회, 또는 그 특정 부분에 신뢰가 정착되었을 때 생긴다. 신뢰는 가장 작고 기본적인 사회집단인 가족 내에서 구현될 수도 있고 가장 큰 집단인 국가에 구현될 수도 있으며, 그 사이에 있는 다른 모든 집단에 구현될 수도 있다. 사회적 자본은 그것이 통상 종교나 전통, 역사적 관습 등 문화적 기제를 통해 창조되고 전수된다는 점에서 다른 형태의 인적 자본과는 차이가 있다. -p.50
우리나라의 신뢰는 세 가지 형태로 조성된다. 일단 가족. 피로 맺어진 집단의 신뢰는 상상초월이다. ‘또 하나의 가족’을 외치는 기업 역시 그 수를 노리는 것일 테다. 학교는 일종의 ‘사랑방’ 역할을 한다. 과거 ‘문벌’처럼 ‘학벌’을 이루어 가족보다 느슨한 신뢰망을 만든다. 때로는 국가가 나서서 믿음을 이끌기도 한다.
신뢰는 사회적 자본을 일구는 밭이다. 신뢰는 한 사회의 문화에 따라 그 범위와 성격이 다르게 나타난다. 신뢰가 가족에게만 묶여있는 사회는 중소기업이 대다수이지만, 혈족에 신뢰를 보내며 국가가 밀어줄 때에는 재벌대기업이 탄생한다. 반면에 신뢰감이 사회 전반적으로 높으면 가족기업은 점점 대기업으로 진화한다.
높은 신뢰감은 법이나 계약 따위의 형식 절차를 줄여서 돈을 아낄 수 있게 한다. 가족을 넘어서는 신뢰감은 다른 사람과의 협동을 쉽게 만들어준다. 가슴 아프게도,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접하는 우리 사회의 소식은 불신으로 가득하다. 사장은 사원을 속이고, 건물은 법규를 어긴다. 기업은 중국에서 야반도주하듯 도망치며, 인터넷에는 연예인 괴담이 수두룩하다.
<트러스트>는 신뢰의 중요성을 말한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일까. 신뢰의 울타리를 점점 넓혀서 목표에 따라 움직이는 공동체가 스스로 생겨나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를 책 한 권 가득히 채워 놓았다. 후쿠야마 아저씨의 이야기는 미국, 일본,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한국, 대만, 중국을 휘휘 저어가며 끝을 낸다. 보다 더 잘 살고 싶으면 신뢰를 잉태할 만한 문화를 만들어 보는 게 어떠냐며 말을 마친다.
쌉쌀했고, 날카로웠다.
<책에서>
지구상에 다양한 문화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유사한 경제적 상황에 처하더라도 문화적 수용의 폭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모든 문화가 똑같이 합리적일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43
가족주의 사회에서는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서로를 신뢰할 만한 토대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자발적인 결속력이 약하다. -p.54
산업구조는 한 나라의 문화에 대해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 준다. 가족적 연대는 매우 튼튼하지만 친족관계가 없는 사람들 간의 신뢰에 바탕을 둔 연대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사회에서는 가족이 소유하고 경영하는 중소기업이 우위를 차지하는 경향이 있다. -p.81
사회적 친화를 달성하는 경로에는 대략 세 가지가 있다. 먼저 가족과 혈연에 기초할 수 있다. 둘째로 학교, 클럽, 그리고 전문가 조직 같은 혈연을 초월한 자발적 결사체에 기초할 수 있다. 셋째, 국가에 기초할 수도 있다. -p.97
독일 노동자계급 출신의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일찍부터 자신들이 대학에 가지 않을 것을 알고 있고 조제제도가 그들의 수준에 적당한 자격과 훈련을 제공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일반 공교육제도의 낙오자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큰 노력을 요하는 직업훈련에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p.315
지구상의 인간은 겉모습만 다를 뿐 근본적으로는 서로 비슷하며 소통이 증대되면 더 깊은 이해와 협동이 가능케 되리라는 강한 자유주의적 신념이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경우 상대에 대해 잘 알게 될수록 공감보다는 경멸을 낳게 된다. -p.452
개인이 나약하고 원자화되면 자신의 견해를 적절히 표현할 수 없게 되고, 설령 그들의 견해가 다수를 차지한다 하더라도 이런 조건 하에서는 전제주의와 선동정치를 초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p.456
민족이라는 것은 그들의 주변에 소용돌이치는 더 큰 역사적인 힘에 의해 자신들이 개별화되고 나약해지며 희생된다는 느낌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편리한 공동체 양식이었다. -p.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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