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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인문학과 통하다 | 조광제, 김시천비문학 2012. 1. 4. 01:24
- 예술, 인문학과 통하다
- 국내도서>인문
- 저자 : 조광제,김시천
- 출판 : 웅진지식하우스 2008.07.24
인상깊은 구절
기술이 항상 혁신을 통해 ‘미래’를 향해 달려간다면, 예술은 인간의 역사, 기억, 삶의 경험들을 토대로 자신의 현재를 질문한다. -p.173
벌써 겨울이다. 얼마 전까지는 분명 발에 차이는 노란 은행잎을 느꼈다. 불과 몇 개월 전에는 반팔을 입고 더워서 헥헥거렸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돌고 도는 것일까―하고 느끼는 요즘이다.
시대가 달라지면 세상이 바라는 인간상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아주 원초적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수렵 채취 시절까지 올라갈 수 있겠다. 능숙하게 동물을 때려잡아 가족들을 잘 먹이는 사람이 당시의 이상형이었을 것이다. 농사를 짓던 시기에는 땅을 일구며 땀 흘리는 부지런한 사람이 필요했다. 공장이나 여러 업종으로 다양하게 분화된 산업사회에서는―지금도 일부 그렇지만―전문·기능인을 바란다.
2000년 초반 정도였을까, 일본 지의 거장이라 불리는 다치바나 다카시를 접했다. 그의 책을 읽다가 제안하는 인간형에 눈길이 갔다.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를 청산하고 “제너럴리스트generalist”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 맞는 말이었다.
21세기까지 지식은 분화, 구분을 강화해왔다. 전문가를 양성해서 한 분야에 집중된 인간을 길러내기 위한 불균형 인간상을 지향해왔다. 물론 중·고등학교에서 전인교육을 강조하며 모든 과목을 두루 가르치려는 시도를 했다. 결과는 썩 아름답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대학 졸업반이 되면서 느끼게 된다. 내가 아무리 다양한 경험을 쌓고 많은 분야에 두루 관심이 있고 경력이 있다하더라도 사회에서는 “전공”이란 틀을 대고 자신을 평가하려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대부분 실망한다. 그게 자기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든, 세상에 대한 불만이든 간에 말이다.
한참 인문학 위기란 얘기가 우리사회에 가득했다. 2, 3년 전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갑자기 인문학 열풍이 휘몰아친다. 언론에서 하도 인문학 위기를 외쳐댄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이제 사회에서 필요한 인간상이 바뀌고 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 『예술, 인문학과 통하다』는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융합 학문의 한 지류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예술과 인문학은 원래 한 통속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뭐라 반박할 여지도 없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기에 때론 잊거나 모르고 지나치는 일들이 있다. 어쩌면 예술과 인문학의 관계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자본주의적 일상용품을 미술 작품으로 사용함으로써, 상품과 예술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부르주아적 가치 체계를 공격하는 것이다. …… 이제 물음은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혹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무엇이 그 사회나 사회의 구성원들에 의해 예술로 간주되느냐?’라는 것으로 전환된다. -p.214
인문학과 예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서양화를 읽기 위해서는 신화와 역사를 알아야 하고, 동양화를 읽기 위해서는 동양철학과 역사를 알아야 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 자체가 ‘인간의 삶’이기 때문에,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는 글이 잔뜩 담겨 있다. 선택은 각자의 몫.
이 책을 후루룩 읽다가 괴테가 말한 아래 문장을 접하고 피식 웃고 말았다. 한참 동안 또 방황하고 말았다.
인간은 모색하는 한 방황하게 되어 있다. -괴테, p.216
<책에서>
생물적이건 사회적이건 자신의 목숨을 위반하고자 하는 데서 인간의 상상이 시작되고, 인간이 시작된다. 인류의 조상은 이브이지 아담이 아니다. 이브는 최초의 행위예술가이고, 아담은 상호 작용을 바탕으로 한 행위예술의 최초의 관객이다. -p.21
개인이 분리된 개체성을 넘어 전체성 속에 녹아 들어가는 체험은 일종의 황홀경의 상태이기도 하다. 이러한 황홀경의 상태는 제의나 예술뿐 아니라 스포츠 관람에서도 가능하며 대규모 정치적 집회에서도 가능하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이러한 황홀경을 연출하여 대중을 정치적 환각 상태에 빠지게 한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흔히 집단 광기로 묘사되는 이러한 현상은 우려할 만한 역사적 교훈을 남긴 것도 사실이다. -p.41
예술 작품의 제의 가치는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가치다. 그것은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없으므로 숭배적인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 베냐민은 대중예술을 통한 아우라의 파괴를 결코 부정적인 현상으로 보지 않았다. 아우라의 파괴란 곧 예술 작품의 숭배 가치, 즉 이데올로기적 가치가 붕괴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p.83
전통적인 예술적 가치를 고수하는 입장은 예술 작품의 미적 가치를 중심으로 그 가치를 평가한다. 반면 다른 하나의 관점은 대중성이나 상품성이라는 관점에서 예술 작품의 가치를 평가한다. 이것은 오늘날 예술 문화가 이미 대중들을 통해서 생산-소비되기 때문이다. -p.105
게다가 대중매체는 동일한 예술 작품을 일시에 무수한 대중들에게 한꺼번에 전달한다. 많이 듣는 음악은 귀에 익숙해지고 듣기 좋아지는 법이다. 따라서 공중파를 탄다는 것은 곧 무수한 대중들의 미적 취향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대중들의 미적 취향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p.111
그는 디즈니랜드의 기능을 “디즈니랜드라는 좁은 울타리의 인위적 장소가 허구적인 장소라고 믿게 만듦으로써 그 울타리 밖에 있는 장소를 허구의 장소가 아닌 진정한 장소로 믿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p.153
영화 기계는 대상 혹은 세계를 가시적으로 사실임 직하게 ‘보여주’는 것을 넘어, 즉 전통적 의미에서 재현하기를 넘어 세계를 ‘있음’ 그대로, 곧 운동과 흐름 속에 ‘존재’하는 그대로 포착하고 기록하게 했다는 것이다. -p.170
기술이 항상 혁신을 통해 ‘미래’를 향해 달려간다면, 예술은 인간의 역사, 기억, 삶의 경험들을 토대로 자신의 현재를 질문한다.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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