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 | 노암 촘스키비문학 2012. 12. 24. 23:49촘선생의 한결같은 이야기는 언제나 상반된 기분을 전해준다. 지속적인 방법과 수단을 사용해, 자발적인 민중을 와해시키려 하는 권력에 대해 끊임없는 분노를 일으키게 하며,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민중의 단결과 사태의 진실을 밝히고, 알리려 노력하는 지식인의 모습이라고 말하는 촘선생의 이야기에 희망을 갖기도 한다. 촘선생의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시리즈를 접하고 나면, 그의 다른 저서들을 읽는 것이 많이 수월해진다. 이 책은, 촘선생이 그렇게 알리려고 하는 진실에 대해, '교육'의 측면에서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디딤돌이라 본다.이 책은 모두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2장은 '교육'에 관련해서 얘기가 진행되고 있지만, 3~5장의 경우에는 얼핏보면, 교육과 거리가 있는 것 같은 정치·시사에 관련된 이야기로 그득하다. 이미 촘선생의 책을 많이 접해봤다면, 읽지않아도 좋을 부분이다. 대신, 이 책은 약간 독특하다. 옮긴이의 글과, 이 책을 엮은 도날도 마세도의 서문은 꼭 읽어야한다. 옮긴이의 글과 서문에서 이 책의 정수를 다루고 있다."민주주의는 실패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부와 행복이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어, 지적이고 건강하고 자유로운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을 꿈꾸지만 그런 세상은 불가능하다. (중략) 얽히고 설킨 모든 모순이 해소될 때, 그런 세상은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세상이 자본, 이자, 재산, 황금에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W.E.B. 뒤 브와 | 서문에서 재인용대한민국에서 모범생의 궤를 따라 달려왔다면, 그리고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며 자유민주주의를 절대 이상으로 여기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서문에서부터 '지르고 있는 것 같은' 촘선생의 선언은 '전기의자'의 괴로움과 비슷할 거라 생각한다."'민주주의'란 개념은 일종의 통치방식으로, 기업계에 기반을 둔 소수집단이 민간사회를 지배함으로써 국가를 관리하는 반면 국민은 묵묵히 관찰하는 제도이다." 이 설명에 동의하는가? 그럼, 이어지는 촘선생의 설명에도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미국에서처럼 소수집단이 결정한 사안을 국민이 비준하는 제도가 된다." 만약, 이 부분에도 고개를 끄덕였다면, 당신은 루소와 마선생─맑스─, 그리고 촘선생의 제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공공정책의 결정에 국민이 참여하는 것은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된다"는 설명에 이르면, 전율이 온다.학교는 상충되는 두 개의 목적을 두고 갈등한다. 이 사회의 문화와 체제를 보존·유지하기 위한 목적과, 사회의 문화를 발전시키고, 개혁 또는 개선하기 위한 목적을 지향하고 있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다는 것, 포수가 총이 아닌, 혁신적인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지 않을까. 교육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려간다. 보수와 혁신이라는 두 개의 큰 힘이 충돌하고 있는 장소가 바로 학교다. 그러나 촘선생의 이야기도 그렇고, 나의 시각도 그렇고, 교육은 사회의 체제를 공고히 다지고, 소수의 권력자들에게 충실한 국민을 기르기 위한 역할에 더욱 노력해 왔다고 본다."젊은이의 교화를 책임지는 기관"이라는 카터 시절의 학교에 대한 정의는, "민주적"인 학교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순종을 강요하고 독립적 사고의 가능성을 저해하기 위한 기관"으로 받아들인다면 억측일까? 하지만, 사실로 나타나는 현상을 보면, 나는 촘선생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촘선생이 말하길. "학교는 통제와 억압 시스템 내에서 운영되는 하나의 제도적 역할에 그칠 수밖에 없다"란다.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촘선생과 보스턴 대학의 총장을 지낸 존 실버라는 인물과 라디오 대담을 벌인다. 재미난 부분은, 즐겨보는 손석희 아저씨의 패널들과 너무하다 싶을만큼 닮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좀 더 나은 느낌을 받는 것은, 촘선생은 누구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을 증거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교육은 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하고, 학생들에게 그것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서 이해시키기 위해, '일반사회'와 '윤리' 교과를 구성하면서 단원에 넣어 "교화"시킬 필요는 없다. 학생들 스스로 자치활동과 민주주의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체화(體化)해야 하는 부분일 것이다.낯설은 것, 당연하지 않은 것이 일상화 되었을 때의 공포가 이 책 속에 담겨 있다.<책에서>교사는 학생들에게 사회 구조와 정치 구조를 분석해서 그들의 현실을 냉철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요구할 틈이 없는 셈이다. 또한 학생들에게도 현실 구조를 파악해서 진정으로 그들을 위한 진실이 무엇인지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오로지 학생은 기계적으로 암기해서 나중에 국가에서 시행하는 규격화된 시험문제에 쏟아내야 하는 지식을 단순히 전달 받고 있을 뿐이다. pp.17학교는 진리를 가르칠 수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대한 선동적 주장을 학생들 머릿속에 주입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가 민주적이라면, 민주주의의 상투적 선전문을 학생들에게 주입시킬 필요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저 민주적으로 행동하고 처신하면 그만일 것입니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이상을 떠들어댈수록, 그 시스템은 덜 민주적이라는 증거입니다! pp.33
우리는 사회보장제도가 마련된 나라입니다. 부자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를 굳건히 지켜가기 위해서라도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진 기업 계급이 살아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국민들은 계급 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확신해야 합니다. 불행히도, 학교는 이런 헛된 신화를 면면히 이어가는 데 언제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pp.5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