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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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로 몸과 마음 화해시키기無序錄 2012. 10. 17. 11:05
심한 바람이 창문을 친다. 그 소리가 설핏 멍해진 나를 깨웠다. '커피를 마셔야겠다.' 커피콩이 파사삭 으깨지며 갈리는 소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책상 앞에서 보던 책을 물리고 일어났다. 요 며칠 동안 붙들고 씨름 중인 는 좀처럼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하나의 글자에 뭉쳐진 여러 뜻을 해부하듯 풀어가는 일은 재미있지만, 한 순간에 확 질리는 맛이 있다. 게다가 나는 오늘 내일 일도 잘 모르겠는데, 석가모니의 일은 아승기겁을 말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두 발이 공중에 붕 떠있는 듯한 내용이라 그랬을까. 현실은 괴로운데 마음만 봄을 타는 것 같아 괴로움이 더했다. 설상가상, 현실과 이상의 충돌은 '나'라는 존재에서도 생겨났다. 최근 '버스커버스커'의 노래 때문에 마음은 제대로 4월을 타고 둥실거리기 시작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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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과 새로운 준비를 위한 의식無序錄 2011. 12. 31. 15:33
아침에 출근하러 길을 나서면서 하늘을 쳐다봤다. 군에 들어오면서 시작한 하늘 쳐다보기는 어느새 습관이 되어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여름의 태양도 이제 한풀 꺾였고, 언제오나 기다리던 가을이 코 앞까지 찾아 들어와 있었다. 부대전출 명령이 떨어졌다. 소위로 임관해서 이곳에 온지 2년. 동기들의 대부분과 대다수의 후배들은 소대장으로, 대대급 참모로 군생활을 정리할 참이다. 연대 교육장교직을 마무리 하고, 전역 준비를 하려던 순간에 다시 옮겨가라는 명령. 딱 두 가지가 떠올랐다. 여자친구와 커피. 미안했다. 마냥 남자친구 군에 있으니 기다리라는 쿨한 모습을 보이기에는 너무 미안했다. 며칠이나 머릿속이 하얗게 바랬다. 여자친구도 나도. 업무가 일찍 끝난 오전, 숟가락으로 삽질하듯 입으로 밥과 국을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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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 커피에 담그기.無序錄 2011. 12. 31. 15:24
봄입니다. 나긋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던 하루였습니다. 3월에 불던 바람은 아직 겨울이었습니다. 몸과 마음을 굳게 만드는 바람이었습니다. 적어도 내 마음과 또 한 사람의 마음은 꽁꽁 얼어버린 겨울이었습니다. 겨울의 입장에서는 아주 성공적인 한철이었네요. 비가 내렸습니다. 많은 비는 아니지만, 세상에 가득했던 먼지를 닦아줄만큼 내렸습니다. 아스팔트에 닿아 튀어오르고 터지는 빗방울을 보며 생각합니다. 비 비린내가 가득한 종로 거리, 그 거리를 두 손 잡고 천천히 거닐던 시간. 그리고 따뜻한 커피 두 잔과 몇 시간의 행복한 대화. 커피는 내게 아주 특별합니다.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처음에는 모두 커피를 싫어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함께한 시간이 점점 많아질수록 그들은 나처럼 드립커피를 향해 손을 뻗었고 입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