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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김영하
    문학 2012. 10. 24. 10:00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저자
    김영하 지음
    출판사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01-21 출간
    카테고리
    여행
    책소개
    비우고 버리는 동안 내가 잃어버린 것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소...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인상깊은 구절

    "사랑은 무엇이나 가능하게 한다. 돈은 모든 것을 이긴다. 시가은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그리고 죽음이 모든 것을 끝장낸다." -p.282


     

     

     

      사람들은 알 속에 웅크린 채로 눈을 감고 있다. 목과 척추를 통해 수 많은 플러그가 꽂혀있는 것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꿈을 꾼다. 그렇게 평생을 꿈속에서 살아가고 자신의 생명 에너지를 그 꿈을 그려내는 일에 소모한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다. 네오가 현실 공간으로 뛰쳐나온 뒤, 매트릭스 시스템이 사람들의 생체 에너지를 이용해서 가동되는 모습. 지옥같은 현실보다 더욱 현실 같은 꿈에서 깨어나기는 정말 싫다. 아침이 오는 게 두렵고 눈을 뜨는 게 너무나 싫어진다. 지금 처한 상황이 어떠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목 뒤를 지긋이 누르며 생명을 빨아먹는 플러그를 뽑아내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꿈 속에서의 삶은 너무나 안락하기 때문에 머무르고 싶어진다. 나도 역시 그런 인간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오랜만이었다. 여자친구와 함께 서점에 들러서 책을 둘러 본다. 그 날의 주 목적은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만화책의 소식을 얻기 위해 간 것이었지만, "김영하"의 이름과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는 주문에 가까운 제목에 눈길이 가고야 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병이다.) 짧막한 글, 단정 소박한 느낌의 사진이 담긴 종이 묶음엔 왠지 정이 간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이 그렇고, 이병률의 책도 그렇다. 활자로 난 길을 달리다가 잠시 사진 속 풍경을 바라보며 곰곰 자기 생각을 되짚어 볼 수 있게 하는 힘, 에세이의 매력이겠지만 어쩌면 편집의 승리일 수도 있겠다.

     

      나는 이 책을 주저하지 않고 계산했다. 12,000원, 내 월급 실 수령액의 1%정도의 부담이었다. 나름 대졸자 체면에 엥겔지수 90%의 삶이 부끄러운 마음에 카드를 들었다. 여자친구에게는 하루키의 신작 한 권을  안겨주고.

     

      김영하 형님의 삶은 거의 답보하고 싶은 길이었다. 문학을 공부하던 대학 시절, 한때는 당대의 이야기꾼이 되고 싶었다. 소설이 됐든 동화가 됐든, 누구에게나 공감을 얻고 진지하고도 가벼운 이야기를 풀어가고 싶었다. 언제나 현실과 타협 중인 "나"란 녀석은 어쩔 수 없이 욕심이 생기고 말았다. 교수가 되고, 번듯한 책을 내고 서울의 멋진 집에서 살고픈 마음이 싹텄다. 그러던 중에, 서점에서 정말 오랜만에 만난 영하 형님 책. 내게 또 허무한 너털웃음 한 방 날려준다.

     

      사람은 누구나 같은 시간과 날짜를 보내며 인생을 걷는다. 한 발짝, 한 발짝씩. 어떤 사람이든 하루에 48시간을 살 수 없다. 지금까지 만들어온 자기 인생의 길은, 오롯하게 스스로 닦아 온 흔적이다. 어제를 살아내고, 오늘을 겪은 나는 어제와 다른 사람이다. 해가 떠서 지는 순간까지 겪은 사소한 일들조차 조금씩 자기 안에 쌓이고 쌓여서 언젠가는 그 앙금을 스스로 느끼게 된다.

     

      눈길을 세상에 돌리고 "무엇을 위해" 달려 간다면, 자기 안의 앙금은 절대 발견할 수 없다. 달려가는 사람에게는 달리는 일, 그 자체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리에 힘을 빼고 자리에 멈춰 쉬거나 걷게 되면, 다른 경쟁자에게 순위를 뺏기게 될 게 당연한 일이기에 도저히 멈출 수 없다.

     

      내달리는 다리를 멈춘다고 해서 지구가 멈추거나 경제 대공황이 생기지는 않는다. 아무리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이더라도 천천히 자신의 길을 몸으로 더듬으며 걷는 사람들이 있어왔다. 하루를 보내며 조금 더 커져있는 자기 안의 앙금을 관찰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다.

     

      여행을 하면 두 가지가 낯설어진다. 세상이 낯설어지고, 자신에게 낯설어진다. 낯선 사물을 마주한다는 일은 언제나 껄끄러운 일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언제나 친절한 부류는 아닌 것처럼(때론 강도도 있겠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낯설게 다가오는 것에 대해서는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과연 저것이 좋은 것인가, 내게 해를 끼칠 것인가"하는 판단을 하면서 평소에 쓰지 않았던 인식의 힘을 100% 이상 발휘하게 된다. 낯선 자신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아니던 것이 새롭게 보이고, 주변의 사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서 자기 것으로 만든다. 낯설음으로부터 깨달음으로 가는 길, 여행의 힘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조용한 풍경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바다 소리를 상상하고, 쿠스쿠스의 맛을 상상한다.

      잘 읽었습니다, 영하 형님.

      

    덧말 : 세 가지 단상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향수, 농촌의 풍경, 신전. 공통점이 없어보이는 여기에서 삶이 느껴졌다.

     

    # 향수

     

    저격수는 멈춰 있는 대상을 노린다.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표적을 지켜보대 조용히 한 방.

    향수 역시 머물러 있는 여행자를 노린다.

    이 부드러운 목소리의 위험한 저격수를 피하기 위해 신중한 여행자는 어지럽고 분주히 움직이며 향수가 공격할 틈을 주지 않는다.

     

    방심한 여행자가 일단 향수의 표적이 되면 움직이기 어려워진다.

    그럴수록 그는 더더욱 한곳에 머물러 있고자 하며 마냥 깊은 우물만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 속에 자기가 찾는 모든 것이 있다는 듯이.

     

    그러나 세상의 모든 우물이 그렇듯 그곳은 비어있다.

     

    # 빌라 니세타

     

      농촌은 그런 곳이다. 나른한 이랑뒤에서 태연히 살육이 진행된다.

      평화로워 보이는 빌라 니세타의 식당에도 물음표를 닮은 세 개의 커다란 갈고리가 걸려 있다. 양을 잡은 후, 목을 꿰어 벽에 걸어놓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야 양의 몸에서 피가 잘 빠져나온다. 파리가 꼬이지 않는 추운 겨울날, 농장의 모든 식구들이 모여 잔치를 벌이듯 양을 잡고 그것을 식달의 그늘진 구석에 걸어놓을 것이었다. -p.166

     

    # 신전

     

      신전은 신이 사는 집이지만 실은 인간이 지은 것이다. 신전은 인간 스스로가 상상해낸, 크고 위대한 어떤 존재를 위해 지은 집이다. 그러나 인간이 지어 올렸기에 이 집들은 끝내 돌무더기로 변해버린다. 세월이 지나면 무너진다는 것, 폐허가 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신전이라는 건축물의 운명이다.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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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oem_정원사_책들이 있는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