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토막글로 기워 만든 조각보 no.1
    無序錄 2012. 10. 18. 08:00

      요즘은 공부한다는 핑계로, 그간 읽던 종류의 책들을 잠시 밀어둔 상황. 그 덕분에 블로그에 정리된 생각을 쓸 겨를도 없었고, 그 덕분에 자꾸만 SNS에 메모처럼 생각의 토막들만 던져놨다. 가끔, 내가 무슨 책을 읽었더라, 어떤 부분이 중요한 내용이었나―하고 내가 쓴 글을 찾아서 다시 볼 때가 있다. 블로그는 그렇게, 나의 기록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SNS에 글을 쓰면서, 자꾸만 나의 삶과 기억이 닳아버리는 느낌이 엄습했다. 스믈스믈 기어들어와, 몰래 내 삶과 기억을 조금씩 갉아먹으며 살아가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마치 <모모>를 괴롭히는 회색 신사처럼.

      "생각의 토막을 모아, 구멍난 내 기억을 깁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려하고 깊이 있는 문장들은 아니더라도, 자투리 천을 모아 만든 색색깔 조각보는 될 수 있지 않을까.


    2012. 6. 21.
    열린 창문으로 파도처럼 흘러드는 바람에 향기가 실려왔다.
    싸구려 향나무에서 맡았을 법한 향기였다.
    그 순간, 벼락처럼 어린 시절, 한 장면이 떠올랐다.
    마음으로 좋아하던 친구에게 생일 잔치 초대를 받은 날,
    꼬깃한 천원짜리 세 장으로 바꿔 온 향부채. 그리고 친구들.
    21년 전 초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프루스트 효과는 너무 갑작스럽다. 

    2012. 6. 22.
    대학 문턱을 밟고나서 돌아본 10년.
    '언제나 현실과 타협 중'이었다.
    이상은 신기루처럼 한순간 나타나 마음을 휘젓고 사라지기 일쑤였고,
    현실은 발버둥칠수록 빠져드는 모래지옥처럼 밑이 텅 빈 종이상자 같았다.
    날개를 구하려 하기도, 깊은 뿌리를 내리려 하기도 했다.
    그럴수록 희망은 한 입 베어 물고 던져버린 사과처럼 빠르게 변해갔다.

    2012. 6. 23.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보다가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이별 없는 세대>가 떠올랐다.
    소설 속 한 문장은 '이시카와 타쿠보쿠'에게로 나를 이끌었고, 그는 다시 '백석'에게 나를 건넨다.
    격동의 시절에는 영웅도 많지만, 문예가도 많아지는 것 같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이별 없는 세대>, <이시카와 타쿠보쿠 시선>, <백석 전집>

    “…사람들이 취하는 음료를 가져, 그들의 성격, 교양, 취미를
    어느 정도까지는 알 수 있을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여 본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그네들의 그때그때의 기분조차 표현하고 있을 게다.”
    80년 전의 댄디 보이는 21세기 사람과 말이 쉽게 통할 듯하다.
    커피를 사랑하는 구보 박태원 선생.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2012. 6. 28.
    우리는 지금 무슨 책을 읽고 있을까…


    2012. 6. 29.



    '진주 귀걸이를 한 '모던 소녀'
    고전의 묘미는 언제든 조몰락거릴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출처 : Dorothee Golz <The Pearl Earring>, <Girl at the Window>

    2012. 7. 2.
    계절이 바뀌어 작년의 그 계절이 돌아오면 그제서야 시간이 그만큼 흘렀음을,
    자신도 그때와 달라졌음을 깨닫게 되는 듯하다.
    2012년 여름. 지금의 나는 2011년 여름의 '나'에게서 얼마만큼 달라졌을까.


    2012. 7. 3.

    군자는 和而不同하고, 소인배는 同而不和이라는 공자 할배 이야기.
    날이 갈수록 그 말이 날카롭게 다가온다.
    우리는 함께 있되 자신을 잃지 않으려 하지만, 대부분 그게 잘 안 된다.
    그래서 우리들은 함께 있을수록 갈등의 씨앗에 싹이 트는 걸 경험하게 되는가 보다.
    마음 공부가 필요한 시간.

    2012. 7. 4.

    사람들은 말과 글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고 공감하거나 평가한다.

    결국 우리의 모습은 말과 글로, 더러는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각인된다.

    공감과 판단의 몫은 오롯이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 달려있다는 점이 문제.

    별 것 아닌 게 유난히 날카롭게 느껴지는 오늘. 

      일상적인 삶은 보통 편안하게 느껴지지만, 이따금 소스라칠 정도로 잔인하게 돌변한다.

      쌓인 설거지와 빨래, 그리고 공부할 것들. 오늘은 잔인한 일상.



      댓글

    cpoem_정원사_책들이 있는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