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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정치 | 막스 베버비문학 2012. 1. 1. 21:26
직업으로서의정치 카테고리 지은이 상세보기
장점 : 깊고 얇다. 2011년 한국 사회를 설명해줄 수 있는 책.단점 : 빨리 안 읽힌다. 문장 부호가 부적절하게 많이 쓰였다.
책을 읽다보면 읽는 속도가 두께와 관계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어떤 책은 10권짜리 장편이지만 2~3일 만에 술렁술렁 넘어간다. 그런데 어떤 책은 100쪽 안팎인데도 한 번 읽는데 한 달이 걸리기도 한다. 세상을 잊게 만드는 책 나름의 좋음이, 자꾸만 세상을 곱씹게 만드는 책 나름의 좋음이 있다. 142쪽의 이 책은 한 달 보름이 걸렸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비슷한 맛이 난다.
2008년에 여성가족부에서 우리나라 청소년을 대상으로 "정치신뢰도"를 조사한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짐작하는 결과였다. 총 2,268명의 청소년 중에 2,026명의 학생들이 "신뢰하지 못한다"라는 대답을 했다. 정치와 크게 관계없을 것 같은 청소년들이 왜 이런 응답을 했을까.
참 어려운 직업이다. 직업 정치가. 그들은 왠지 믿을 수 없고, 매번 그들끼리 겨 묻었네, 똥 묻었네 다툼만 떠오른다. 물론 이런 이미지를 자각하고 깨뜨리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가도 있지만, "얼마 없다"고들 느끼지 않을까.
베버는 1세기 전에 무엇을 보았을까. 그때 이미 근대 국가의 성질과 정치가의 속성을 간파한 것 같다. 대학생들에게 적지 않은 길이의 연설을 통해, 이런 내용을 설명한다.
근대국가는 공적 법인체의 성격을 띤 지배조직입니다. 이 지배조직은 한 특정한 영토 내에서 정당한 물리적 폭력을 지배수단으로 독점하는 데 성공한 지배조직입니다. 근대국가는 이러한 독점을 위해 모든 물적 운영수단을 국가 운영자의 수중에 통합시켰고, 과거에 이 물적 운영수단에 대해 독자적 처분권을 가졌던 모든 자립적 지배층의 권한을 박탈하고 그들의 자리에 국가 자신을 그 정점으로 정립하였습니다. -p.32
너무나 솔직하게 까발린다. 대부분의 국가는 개인의 원한에 의한 복수를 법으로 막는다. 개인적인 즐거움을 얻기 위해 훔치고, 사진을 찍고, 때리고, 속이는 모든 행위를 '폭력적 수단'으로 막는다. 한반도 이남에서 강제력을 사용할 권리는 국가라는 공적 법인에게 있는 것 같다. 베버의 설명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욱 나간다.
오늘날의 정당 지도자들이 충성봉사의 보상으로 배분하는 것은 정당, 신문사, 협동조합, 의료보험, 지방자치단체, 국가기관 등에 있는 모든 종류의 관직들입니다. 정당 간의 모든 투쟁은 본질적 목표를 위한 투쟁일 뿐 아니라 관직 수여권을 위한 투쟁이기도 합니다. -p.43
낙하산 인사.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정당 정치의 본질이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정당 정치는 본질적으로 이익집단을 대변하기 마련이다. "정권 재창출"을 통해 "관직 수여권"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을 지속한다. 베버의 이야기 속에서 2011년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근대 관료층은 장기간의 예비교육을 통해 전문적 훈련을 받은 고급 정신노동자로 발전했으며, 청렴성의 확립을 위해 신분적 명예심을 고도로 개발했습니다. 이러한 명예심이 없었더라면 필연적으로 엄청난 부패와 저속한 속물근성이 만연했을 것이며, 이것은 또한 국가기구의 단순한 기술적 작동조차도 위협했을 것입니다. -p.45
부산저축은행 사태, 그랜저 검사, 목금요일 접대받는 공무원 등등. 전문적 훈련을 받은 고급 정신노동자의 신분적 명예심이 사라져, 부패와 저속한 속물근성이 만연한 사태를 2011년 한국인은 생생히 보고 있다. 자꾸만 책을 덮고 생각하게 만드는 말은 계속 이어진다. 마지막 부분이 되어서야 베버는 이상적인 직업 정치가의 모습을 말한다.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하게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능력이 있는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p.142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칠 수 있는 사람. 열정과 책임감과 균형감각을 갖춘 정치인을 베버는 바라고 있다. 100년 전에 말한 정치가의 모습과 우리가 진정 바라는 정치인의 모습이 같아 보인다. 베버는 이런 강연을 하면서 그런 정치가를 바랐던 게 아닐까 싶다.
웃음과 씁쓸함이 함께 느껴졌던 부분이 있다. 앞으로의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왜 당신들은 당신들 스스로가 공공연히 경멸하는 그런 정치가들이 당신들을 통치하도록 하느냐?"
"우리는 당신들 나라에서와 같이 우리에게 침을 뱉는 관료를 가지기보다는 차라리 우리가 침을 뱉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관료로 가지고자 합니다." -p.95
<책에서>
정치가에게는 주로 아래 세 가지 자질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열정, 책임감 그리고 균형감각이 그것입니다. -p.106
세계의 비합리성의 경험이라는 문제가 모든 종교발전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이 세상은 원죄로 인해 타락해 있다는 교리는 죄악에 대한, 그리고 영혼을 위협하는 이단자들에 대한 징계수단으로서의 폭력을 윤리에 편입시키는 것을 비교적 용이하게 했습니다. -p.129
혁명의 열정이 식은 후에는 전통주의적 일상이 찾아오고, 믿음의 대상이었던 영웅과 특히 믿음 그 자체가 사라지거나 아니면, 이 믿음은 정치적 속물과 정치적 기술자들의 관습적 상투어의 일부가 되어 버린다는 사실입니다. -p.132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삶의 현실에 대한 훈련되고 가차없는 시각과, 이 현실을 견디어 내고 이것을 내적으로 감당해 낼 수 있는 능력입니다.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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