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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놉티콘 | 제레미 벤담비문학 2011. 12. 31. 16:04
파놉티콘 카테고리 지은이 상세보기
감옥의 세 가지 원칙 -p.36
1. 고통 완화의 원칙 : 건강 혹은 생명에 해를 끼치거나 치명적인 신체적 고통을 동반해서는 안 된다.
2. 엄격함의 원칙 : 수감자에게 죄 없고 자유로운 가난한 사회 구성원보다 더 좋은 조건을 주어서는 안 된다.
3. 경제성의 원칙 : 공공 비용을 지출해서는 안 되며 어떤 목적을 위해 가혹함이나 관대함을 이용해서도 안 된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명제로 정의되는 공리주의. <파놉티콘>은 공리주의를 외친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이 쓴 글 가운데 하나다. 벤담의 중심생각은 '특정한 일부가 아닌, 공공의 일반 다수'에게 이득이 되는 사회 만들기인 듯했다. 그런 벤담이 수많은 사회 공공시설 중에서 가장 비사회적인 사람들을 모아 '사회화'시키는 공공기관인 '감옥'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짧은 이 책의 서문에서 벤담은 프랑스 의회에 <파놉티콘> 건설을 제안하기 위해 핵심만 추린 자료라고 밝힌다. 그러나 벤담의 생각과 건물에 담긴 철학을 읽어내는 데에 전혀 지장이 없다. 번역자인 신건수는 건축과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출판사에서 유명 번역가가 아니지만 그에게 맡긴 것 같고, 타당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1. 행동을 이끄는 사물
물건이 사람의 생각을 좌우할 수 있을까? 가벼운 질문일 수도, 무거울 수도 있는 질문이다. 이 책의 내용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기본적인 흐름은 같다. 이 질문에 대해, 심리학자인 J. Gibson이 제시한 개념인 "affordance(어포던스, 행동 유도성)"이 수긍할 수 있는 답을 준다. "막대기를 보면 한 쪽 끝을 잡고 휘두르게 마련이고, 커피 머그를 보면 손잡이에 손가락을 넣어 잡기 마련"인 게 행동 유도성이다. 주로 산업디자인에서 사용되는 개념이지만, 건축을 포함해서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물론 물건에 의해 행동이 유발되는 방식에는 문화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비슷하다. 벤담이 설계한 감옥 '파놉티콘'은 아주 적나라하게 그 개념을 보여준다.
둥글게 설계된 감옥의 단면도를 보면, 가운데의 높은 탑은 어둡다. 반면에 수감자들이 생활하는 각 방은 감시자의 탑 주변으로 둥글게 배치되어 있고, 밝다. 명암의 차이로 감시자는 수감자를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수감자는 감시자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수 없다. 이 개념이 '파놉티콘'의 기본적이고 핵심 아이디어이다. 수감자나 감시자는 감옥 설계자의 생각을 모르더라도 일단 이곳에 있게 되면, 그 장소의 내적 법칙에 따르게 된다.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Panopticon>
2. 건축과 시각, 권력
프랑스 사람들은 괴이한 부분이 있다.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해야 할까, 이상한 상상력이 있다고 해야 할까. 까뮈가 떠올린 '벌레로 <변신>'이나,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이나. 같은 맥락에서, 미셸 푸코에게 벤담의 '파놉티콘'은 상상력의 출발점이 됐다.
시각에서 발생하는 권력을 탐구한 푸코는 '파놉티콘'을 보고 "옳다구나!"를 외쳤을지 모르겠다. 이름 그 자체로써 건물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Pan-Opticon"은 라틴어 Pan-과 Optic-의 합성어다. 결론부터 말하면, 파놉티콘은 "다 보이는"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Pan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양치기 신인데, 허리 위는 사람이고 염소의 뿔과 하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유추되어 Pan-이 '~을 다 포함하는'을 의미하는 접두사로 변하였다. Optic은 빛과 관련된 의미로 쓰이다가 빛을 보는 것, 시각과 관련된 것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출처 : Notre dame Univ. Latin-English>
이 건물은 중앙의 한 점에서 각 수용실을 볼 수 있는 형태로 된 하나의 벌집과 같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감독관은 마치 유렁처럼 군림한다. 이 유령은 필요할 때는 곧바로 자신의 존재한다는 증거를 드러낼 수 있다. -p.23
조지 오웰의 <1984>에 등장하는 '텔레스크린'과, 그 개념이 현실화 된 CCTV의 개념이 '파놉티콘'에 담긴 핵심과 일치한다. 빅브라더는 필요할 때 목소리를 통해 자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드러낸다. '보이지 않는 자의 끊임없는 감시'가 '절대권력'을 만들어 낸다. '신(神)'에 대한 경외와 공포도 같은 뿌리에서 뻗은 가지일 것이다.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타인의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신의 정체성도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만들어 가고, 자기에 대한 평가도 주로 타인의 관찰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향이 많다. 관찰과 통제, 그 중심에 시각의 권력화라는 개념이 자리하게 된다. 푸코는 그 부분을 끌로 파듯, <감시와 처벌>에서 시각의 권력성에 대해 분석해 냈다.
3. 현재진행형
시각 권력의 가장 두려운 점은 관찰당한다는 것이 아니다. 푸코가 말한 것처럼, "수감자는 항상 자신이 감시받는다고 느끼고 스스로를 감시하며 자기 통제를 내면화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아이디어가 파놉티콘이다.(p.91)" 기본적인 이 생각은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 만연해 있다.
감옥과 기본적으로 같은 구조를 가진 학교도 같은 상황이다. 학생은 수감자와 비슷한 심리적 충동을 갖는다. 탈출하고 싶고, 감시당하는 기분이 들고, 자기 욕구에 충실한 행동을 스스로 통제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감시자와 교사가 바라는 행동을 보이게 된다.
또 하나, 어제('11. 10. 26) 재보궐 선거가 있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트위터를 비롯한 SNS, 블로그에 대해 처벌을 강화한다고 고지했다. 선관위의 이같은 통보는 인터넷 공간에 파놉티콘을 만들어, SNS사용자를 수감하게 된다. 최근에 문제가 불거졌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역시 같은 개념의 틀로 이해할 수 있다.
이제는 설계자들이 사고를 바꿔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제레미 벤담은 권력을 만들기 위해 '파놉티콘'을 설계하지 않았다. 그의 순수한 공리주의 철학을 세상에 현실화시키기 위한 실험이었다.
사회와 개개인의 모든 행위의 기준이 되는 원리를 ‘고통과 거리 두기’, ‘쾌락의 추구’로 규정했다. 행복이란 행위자의 행복이 아니라 행위에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의 행복이다. 벤담에 따르면 모든 입법의 목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어야 한다. -p.74 <해제>
역자의 해제에 철학적 고민이 많이 담겨있다. 모든 행위의 기준은 '행위에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의 행복'이어야 한다. 벤담의 생각에는 순수한 열정이 엿보인다. 하지만, 푸코와 오웰이 지적했듯이 그 순수함은 쉽게 변할 수 있다. 구조를 짜는 설계자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설계되고 실행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행동에 따라 쉽게 달라질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파놉티콘' 구조는 '절대 권력'의 어포던스를 담고 있다. 벤담의 공리주의 실험은 18c말에 있었다. 조지 오웰은 그에 대한 우려를 60여년 전에 소설로 썼고, 미셸 푸코는 그것의 분석을 35년 전에 마쳤다. 2011년 현재의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첫 번째 열쇠가 벤담의 <파놉티콘>이지 않을까 싶다. 짧지만 간명한 아이디어, 순수하기 때문에 변하기 쉬운 아이디어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자료다.
<책에서>
갓 태어난 아기 같은 이들을 감시에서 해방시켜는 것, 감독관이나 보호 장치 없이 사회로 내보내는 것은 매우 부주의한 일일 수 있다.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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