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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동나무 요정들
    문학 잡설 2011. 12. 31. 14:55

      아주 오랜 옛날부터 오동나무 속에는 여섯 명의 요정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컴컴한 밤이 되면, 요정들은 또롱또롱 빛을 내면서 일을 시작하곤 했습니다. 반딧불과 함께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꽃들에게 다가가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다른 요정들은 이 요정들을 ‘오동나무 요정’이라고 불렀습니다. 여섯 명의 오동나무 요정들은 새벽이 되면, 보드라운 오동나무 할아버지 품속에서 꼬물꼬물 잠을 잤기 때문이지요.


      오동나무 요정들은 소리를 먹고 살았습니다. 친구들과 나누는 이야기도 모아서 항아리에 담아두었고, 사람들이 오디오나 MP3로 듣는 음악도 모두 모아, 바닷가에서 주워 온 소라고둥에 담아두었습니다. 오동나무 요정들은 사람들이 하는 말에서 냄새를 맡고, 맛을 느낄 수 있답니다.


      잠들기 전에 여섯 요정들은 둥글게 둘러 앉아 얘기를 나눕니다. 오동나무 할아버지는 요정들이 포근하게 쉴 수 있도록, 넓은 잎사귀로 커튼을 쳐주지요. 그리고는 심장에 담긴 따뜻한 피로 불을 환하게 피워줍니다.


      4월에 처음 피어난 진달래로 옷을 지어 입은 미미는 머리카락을 빗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서 또랑이는 안경을 바로 쓰면서 책을 읽고 있고요. 저기 플라타너스 잎사귀 위에서 볼록 나온 배를 통통 두드리고 있는 퉁퉁이는 누워있었습니다. 올 가을에 태어난 아롱이는 배냇짓을 하며 쌔근쌔근 자고 있네요.

     

      미미가 말했습니다.

      “낮에 먹었던 ‘ㄱ’이랑 ‘ㄷ’은 오독오독했어. 내일 눈을 뜨면, 부드러운 ‘ㅁ’부터 꺼내 먹을래. ‘ㄱ’을 먹다가 목젖에 생채기가 난 것 같거든.”
     

      “그래도 ‘ㄱ’은 먹을 만하잖니. 나는 사람들이 지하철이랑 버스에서 한 말들을 잔뜩 먹었는데, 여기까지 가득차서 속이 메슥거려.”

      발라당 누워 있던 퉁퉁이가 오른손 둘째 손가락으로 목을 가리키고는, 고개를 들며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늘 맛없는 말들만 만들어 내. ‘ㅆ’은 갈치 가시보다 먹기 힘들단 말이야.”

      퉁퉁이는 입술을 쭉 내밀고 다시 누워버렸습니다.


      또랑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습니다.

      “흠. 맞아, 요즘엔 맛있는 이야기 요리를 먹기 힘들어졌어. ‘ㄱ’이나 ‘ㅆ’같이 딱딱하고 거친 재료들도 잘 요리하면, 입 안에서 불꽃놀이를 할 수 있을 텐데.”


      “가슴 가득한 기쁨!”

      갑자기, 오동나무 할아버지가 피운 따뜻한 불 앞에 웅크리고 있던 초롱이가 외쳤습니다. 그러자 옆에 나란히 앉아 있던 도롱이도 외쳤습니다.

      “쌍글빵글 웃는 어린 새싹!”


      “어머! 쉬잇! 초롱아, 도롱아.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면 어떻게 해, 아롱이가 자잖아.”

      미미가 조용조용 말했습니다.


      “헤헤, 그래도 ‘가슴 가득한 기쁨’은 맛있겠다. 오독오독한 ‘ㄱ’이랑 ‘ㄷ’도 있고, 상쾌한 바람 맛이 나는 ‘ㅅ’도 있고 말이야.”

      퉁퉁이가 배를 한 번 더 통! 치고는 입맛을 다셨습니다.


      “아이스크림 같은 ‘ㅎ’도 있어. ‘ㅃ’은 멋진 향신료야!”

      또랑이는 ‘ㅎ’을 핥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쌍글빵글 웃는 어린 새싹’이 더 맛있는 것 같아. 솜사탕 파르페 맛이 나는 걸?”

      미미가 도랑이를 보며 방긋 웃었습니다.


      이때, 오동나무 할아버지가 허허 웃으시며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개구쟁이들. 이제 그만 자야지. 내일도 먹을 말들이 많이 있단다. 좋은 꿈꾸렴.”


      오동나무 할아버지는 은은한 불로 바꿔서 비춰주었고, 오동나무 요정들은 잎사귀 이불을 덮고 한 쪽 눈씩 감으며 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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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oem_정원사_책들이 있는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