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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리꼴레르 | 유영만
    비문학 2013. 6. 21. 09:21




    브리꼴레르

    저자
    유영만 지음
    출판사
    쌤앤파커스 | 2013-05-15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세상이 원하고, 당신이 되어야 할 인재상!세상을 지배할 ‘지식인...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평소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쓰던 글말을 버리고, 이 책에 대해서는 입말로 이야기해야 제대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드릴 말씀은, 이 책은 "대상 독자가 애매모호"하다는 겁니다. 바빠서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들을 주 독자로 본다면, 핵심은 간명하지만 내용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책을 많이 읽은―특히, 지식 활용이나 창의성에 관심이 많은―독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1년 전에 들었던 '강남 스타일' 또 듣기가 될 듯합니다.


      핵심 내용은 "전방위적으로 교양을 쌓은 전인적 전문가"가 '브리꼴레르'이며, 그가 미래의 인재상이라는 것입니다. 책의 모든 내용은 한 문장을 뒷받침하고, 어떻게 할 것이며, 저자 자신은 어떻게 해왔는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책의 서두는 꽤 직설적입니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상당 수의 전문가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충분히 '움찔'할 만한 압정을 깔아두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전문가> -p.32~35

    1. 멍 때리는 전문가.

      - 정해진 규율, 기존의 제도와 관행과 절차만 따를 뿐 상황에 따라 다르게 판단해야 하는 도덕적 판단력이 없다.

    2. 자기 분야 외에는 무지한 전문적 문외한, 즉 답답한 전문가.

    3. 골 때리는 무늬만 전문가, 즉 사이비 전문가.

      - '전문가에 따르면'이라는 말을 따라가 보면 사실은 전문가가 아닌 무늬만 전문가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4. 능력은 있으나 이유 없이 밥맛없는 안하무인형 재수 없는 전문가.

      -이들은 자기 전문분야가 최고이며, 자기가 알고 있는 게 최고의 지식이라고 생각한다.

     

      관공서에 가면 1번이 자주 보이고, 종합병원에 가면 2번이 보입니다. 정책 토론을 보다보면 3번 사람이 보이고, 학교에 가면 4번 유형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 유영만 교수는 아마도 자신이 경험한 사례에서 네 가지 유형의 이상한 전문가를 추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전체 3장으로 되어 있는 책의 내용 중에, 1장의 내용은 '이상한 전문가'들이 나타난 사례와, 왜 지금 새로운 유형의 전문가가 필요한가―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전문가일수록 많이 걸리는 병이 '지식의 저주 the curse of knowledge'라는 현상이다. 지식의 저주는 한마디로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는 것이다. 전문가는 비전문가의 답답한 마음을 모른다. -p.71

     

      가장 강렬하고 쉬운 문장이 바로, 위에 인용한 부분입니다. 대중 강연을 하거나, 토론을 하면서 자신의 전문분야의 논문에서나 쓰일 법한 개념어들을 남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패션잡지에서 시작되어 점점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보그체vogue體'는 단어의 '개념'마저 잃은 채, 남발하는 경우로 보입니다. (왼쪽 사진)

     

      2장은 '브리꼴레르라는 인재의 속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객관식 문제의 정답을 찾아 헤매지 않고, 바깥 세상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뛰어들어 해결책을 찾고 행동하는 사람을 그려냅니다. 

     

    교육학자가 교육현장을 발로 뛰면서 현장의 아픔을 이해하지 않고 창백한 연구실에서 논리적으로 공부만 하고 있다. 경영학자가 경영현장의 아픔을 몸으로 이해하지 않고 학문적 논리로 현장을 재단하고 있다. 경제학자는 경제현실을 피부로 느끼면서 파악하지 않고 통계와 지표로 경제현상을 설명하느라 여념이 없다. -p.141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의 다양한 원인 가운데 하나를 잘 짚은 부분입니다. 교육정책은 교육현장과 동떨어진 책상 위에서 만들어지고, 경영 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에서 10m 쯤 공중에 뜬 상태로 경영학 연구와 수업이 진행됩니다. 경제학자도 시장에서 채소와 고기를 사고 파는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서, 통계&숫자와 다투는 데에 시간을 보냅니다.

     

      3장에서는 '어떻게 그런 인재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는 '책을 많이 읽고, 융통성 있는 사고를 하라'는 것을 비롯, 다른 자기계발서들의 충고와 크게 다른 점은 없어 보입니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이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OOO피자에서 싫어하는 토핑을 다 빼고 좋아하는 재료들로 모두 바꿨다며, 새로운 제품을 홍보합니다. 들뜨는 기대감으로 주문한 뒤, 도착한 피자 상자를 열었는데 모양이 기막힙니다. 새우, 감자, 바질, 루꼴라, 듬뿍 얹은 치즈까지. 그런데 막상 한입 베어물었을 때, 입안에 퍼지는 익숙한 토마토 소스와 치즈 맛이 머릿속에 울리는 낮은 종소리.

     

      지금부터는 책을 읽다가 느낀 불만을 털어 놓을 생각입니다. 우선, 새로움이 없었습니다. 저자가 제시한 '브리꼴레르'라는 인재상은 10년 전에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에서 접했습니다. 그 뒤에, 이어령의 <디지로그>, 정민 교수의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등에서 익히 접한 내용입니다. '편집'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읽을 때, 왜 '새로움을 느끼지 못했는지' 명확하게 깨달았습니다.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편집은 중요하지만, '브리꼴레르'에 새로운 개념을 담기보다는 기존의 개념을 모아서 새롭게 포장한 것처럼 읽혔습니다.

     

    편집은 개념놀이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과정이다. ... 특히 어휘력이 중요하다. 예컨대 나는 단어 뒤집기를 통해 의미심장함을 더하는 방법을 종종 사용한다. 역경逆境을 경력經歷으로, 교육敎育을 육교陸橋로... -p.185

     

      두 번째, '언어 놀이'에 취한 문장은 부담스럽습니다. 위에 인용한 문단을 비롯해서, 이 책의 표현법 중에 가장 많이 자주 쓰인 방법이 '언어 놀이'입니다. 한자어로 된 단어를 뒤집어서 다른 개념을 얘기한다던가, 영어로 된 약어의 발음을 한자로 음차音借해서 의미를 집어넣는 방법을 주로 사용합니다. 이런 표현방법은 이따금 한 번씩 써야 집중과 환기 효과가 있지, 계속해서 사용하면 도리어 지루하고 식상해집니다. 이어령 선생의 글에서 언젠가부터 느끼던 지루함과 같은 향입니다. 이따금 놀이에 취한 나머지, 그 믿음을 근거로 삼아서 궤변을 놓기도 합니다.

     

    "자연이 준 시련과 역경을 이겨낸 뒤 보여주는 '앓음다움'의 맛이다. 아름다움은 '앓음다움'에서 나왔다. -p.240"

      마지막으로, 지나치게 많은 인용이 저자의 독창성을 꼭꼭 숨겨버립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은 대충 이렇습니다. 앨빈 토플러, 브라이언 트레이시, 말콤 글래드웰, 버트런드 러셀, 신영복, 아리스토 텔레스, 요한 하위징아, 이어령, 들뢰즈, 가타리, 레비 스트로스, 데리다 등등. 저는 이 부분에서 느낀 불만을 서두에서 제일 먼저 털어놓았습니다. 철학자들의 개념을 인용해서 사용할 때는 '이 글을 누가 읽을 것인가'―를 명확하게 정해야합니다.

     

      개념어들을 자세한 설명없이 사용하는 일은 '모유 먹는 아기의 젖병에, 갈비탕을 담아주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발췌한 글을 보여주는 것은 운동선수에게 미음을 먹이는 것과 같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기존에 알고 있던 배경지식의 허들을 뛰어넘지 못한 구절이 있었습니다.

     

    ① 제주도 조랑말은 고려시대에 몽골 초원을 누비던 최우량종을 도입했으나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오랜 기간 동종교배를 계속하다 보니 현재의 조랑말로 퇴화되었다. -p.201


    ② 이유 없이 빈둥거리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버트런드 러셀은 "노는 시간은 '발효와 숙성의 시간'이다. 그래야 세상 뒤편을 응시할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 그는 하루에 4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을 빈둥거리고 어슬렁거려야 더 창의적인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p.236~237


      ①의 제주도 조랑말의 조상인 몽골 최우량종은 원래 체구가 작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 제주도에서 자라는 좋은 말들은 중국과, 본토로 공물로 모두 빠져나가서 좋지 않은 말이 남게 되었습니다. (참고 : 네이버 지식백과 12) ②에서 러셀 선생이 얘기한 게으름은, 정말 빈둥거리며 보내는 시간이 아닙니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본질적이고 창의적인 본성을 발휘하라는 이야기가 저서의 핵심입니다. 하루에 4시간만 일해도 된다는 건, 당시를 기준으로 4시간 노동으로도 현재 생산량/소비량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책을 덮고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이 책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책을 거의 읽지 않는 분들에게는 포털 사이트와 같은 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양하게 상식을 쌓고 싶은데, 대체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분들이 읽는다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상당히 다양한 저자와 책 목록이 등장합니다. 이 책을 시작으로 가지치기를 한다면, 언젠가는 울창한 숲을 이룰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책을 읽으신 분들께는 이 책을 권하지 않겠습니다. 책 소개에서 참고문헌 목록을 보신 뒤에, 읽은 책이 10권은 있다면 이 책에서 10번 우린 녹차의 맛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책에서>

     

    진정한 의미의 잡사가 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전문가가 되는 길을 선택해 어느 정도 깊이 있는 전문성을 확보한 다음 인접 분야를 섭렵하는 길이다. 이런 사람을 '전문적 잡사special generalist'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길은 다양한 분야를 왔다 갔다 하다가 적성에 맞는 분야를 뒤늦게 발견해서 깊이 파고드는 '제네럴 스페셜리스트general specialist'가 되는 것이다. -p.57

     

    주어진 문제상황에 대한 전문가적 처방은 언제나 '자신의 관점으로 본' 부분적 처방일 수밖에 없다. 전문가는 자신의 답이 언제나 맞다고 믿어 의심치 않겠지만, 그가 내놓은 답이란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만 통용될 뿐이다. -p.59

     

    정치적 영향력 관계에서 벗어나 순수한 진공 속에서는 지식이 태어나지 않는다. 다양한 지배집단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지식 가운데 권력다툼에서 승리한 지식만이 통용되기 때문에, 해당 지식이 어떤 권력집단의 의지와 이해관계를 반영하는지 비판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p.66

     

    "우리가 깨닫는 것, 즉 각覺의 최고 형태는 바로 '세계는 관계'라는 사실입니다. 세계의 구조에 대한 깨달음이 가장 중요한 깨달음입니다." -신영복 교수 <강의>에서 재인용, p.51

     

     

    꿀벌은 밀랍으로 집을 짓고 살지만, 사람은 개념으로 집을 짓고 산다. -니체

     

     

    차이란 이미 고정된 의미가 아니라 매 순간 다른 의미로 새롭게 만들어지므로 영원한 진행형이다. 이 개념을 설명하는 것이 데리다의 '차연差延(differance)'이다. 사물이나 현상의 차이는 지금 이 순간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시간적으로 연기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p.148 <데리다 입문>, <데리다&들뢰즈>, <노마디즘>

     

    상식이라는 건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판단기준일 뿐, 언제든 부정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p.158

     

    재능은 남과 비교해서는 결코 찾을 수 없다. 재능은 밖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잠자고 있기 때문이다. -p.160

     

    서구의 언어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ether A or B'의 사고방식을 강조하지만, 우리말은 두 가지 모순이나 극단의 언어를 하나의 언어로 끌어안는 'both A and B'의 사고방식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p.193

     

    그 사람이 지금까지 읽은 책과 만난 사람을 알아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가능함 수 있다. 그때까지 읽은 책이 바로 나다. 그러니 나를 바꾸고 싶으면 읽는 책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을 바꿔야 한다. 만나서 불편한 사람, 만나면 남다른 생각의 단서를 주는 사람을 만나라. -p.213

     

    "우리는 '나처럼 해봐'라고 말하는 사람에게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오로지 '나와 함께 해보자'고 말하는 사람들만이 우리의 스승이 될 수 있다." -p.281, 들뢰즈, 김재춘&배지현(2012), 교육학연구, 50(3), 126-149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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