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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과 조각의 해석
    문학 잡설 2012. 12. 28. 03:09

    그림


      그림은 평면을 점과 선으로 나누고 색으로 채운다. 찍힌 점 하나나 선 하나에 화가의 의도가 담긴다. 의도를 담지 않은, 우연한 표현이라고 말하더라도 '그러한 의도'를 담고 있게 된다. 어떤 그림이든 완성되면, '해석 대상'이 된다. 큐레이터의 시선이든, 중학생의 시선이든 간에 해석이 작동하게 된다. 그림의 분위기를 보거나, 어떤 배경, 어떤 사람들이 망막에 닿는 순간, 해석의 문제로 넘어간다.


      그림은 대체로 완결된 '전경figure과 배경ground'을 갖고 있다. 음울한 배경에 거친 황소 한 마리가 있을 수도 있고, 한적한 공원에 한가롭게 누워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관람객들은 주로 그림을 보며, 어디에서 누가 무얼 하고 있는가―하는 것을 보며 자신의 기억을 더듬는다.


      관람객은 그림을 보면서 자신의 기억들을 마치 레고 블록처럼 조립한다. 그림을 보며 레고 상자에서 딱 맞는 블록을 찾아서 하나씩 끼워가듯이 자신의 해석을 이어간다. 이 과정은 그림을 보고, 갖고 있는 레고 보따리를 풀어서 갖고 있는 블록들로 조합하는 것과 비슷하다. 가지고 있는 블록이 적으면, 조합할 수 있는 경우의 수도 적어지게 된다. 그림을 더욱 자세하고 세세하게 구분할수록 좀 더 다양하고 거대한 레고 모형을 만들 수 있다.


      중학생의 시선이 '레고 듀플로duplo' 정도라면, 큐레이터의 시선은 '레고 크리에이터' 이상의 정교함과 다양한 조합이 있을 수 있다.



    조각

     

      조각은 세상 속에서 표면을 경계로 공간을 나누며 존재한다. 조각가의 손은 화가의 붓에 비해 드러나는 중요도는 낮다. 하지만 의도를 담아내는 행위를 견주어 보면, 화가의 붓보다 조각가의 손은 더 무겁게 움직인다.

     

      조각도 역시 그림과 같은 운명을 따른다. 완성되면 관람객에 의해 해석 대상이 되지만, 그 양상은 조금 다르다. 그림은 액자 속의 전경과 배경의 관계가 중요하지만, 조각은 실제 공간에서 어떤 경계선을 그리며 존재하는가―하는 것이 해석의 열쇠가 된다. 실제 공간에 존재하기 때문에 관람객은 조각―또는 오브제―이 있는 공간, 자신이 현재 있는 공간에 영향을 받으면서 대상의 존재를 인식한다. 그림이 추상적인 놀이터라고 한다면, 조각은 지금-여기에 있는 놀이터에 가깝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시간과 공간의 한 때를 차지하다가 소멸한다. 그래서 조각은 그림보다 구체적이다. 관람객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로 어떤 의미를 갖고, 어떠한 공간에 있는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남성의 소변기가 화장실에 있을 때와 현대 미술관의 한 코너에 있을 때의 의미가 다르고, 물 항아리를 든 여자의 조각상이 그리스 신전 안에 있을 때와 목욕탕 안에 있을 때처럼.


      조각은 하나의 시선으로 해석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존재하고 있는 대상을 '어떤 관점view point'에서 보는지, 얼마나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하는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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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oem_정원사_책들이 있는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