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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유 탄산음료와 잡소리
    無序錄 2012. 12. 25. 01:04


      프로이트, 프뢰벨, 헤르바르트가 내 목을 마르게 한다. 에라, 나는 몸을 두 다리에 얹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공사중인 휴게실 옆에 낯설게 서 있는 자판기 무리를 보며 잠시 고민에 빠져든다. 일단, 나는 목이 마르다. 커피는 마시고 싶지 않고, 카페인 음료도 되도록 피하고 싶다.

     

      땀은 몸에서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이상한 믿음이라고 이상하게 째려보는 친구들에게 나는 변명한다. 뇌도 목이 마르고, 뇌에서도 땀이 난다고. 어쨌든, 다시 파란색의 자판기 몸통 앞에 서서 가만히 눈싸움을 벌인다. 그러던 사이에, 나의 세계를 부수고 음료수 상자가 말을 했다.

     

      "지금 고르지 않을 거면, 잠깐만 비켜주세요."

     

      상자 뒤에 아저씨가 내 공간으로 들어왔다. 나는 비켜서서 포카리 스웨트를 마시려던 생각을 밀어 넣는다. 이드(id)는 상자 아저씨의 슈퍼에고(super ego)에게 졌다. 에고(ego)는 옆에 놓인 다른 자판기로 옮아갔다. 아마도, 흉노족에게 밀려 서쪽으로 가야했던 게르만 민족도 같은 상태의 에고였을 것이다─하는 생각.

     

      같은 색의, 같은 크기의 자판기에는 다른 종류의 음료수들을 품고 있었다. 지금은 아직 여름이라고, 차가운 캔들을 가슴에 품고 있는 자판기는 그래도 더운지 '우웅~'하고 징징댄다. 녀석.

     

      이번에는 내가 슈퍼에고다. 연인 한 쌍이 무엇을 마실까 고민하고 있었다. 이건 짜증과 부러움때문에 나타나는 행동이 아니다. 단지, 나는 목이 말랐고, 단 5초라도 빨리 수분 섭취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 두사람의 세계에 침입했다.

     

      녹차와 암바사가 있다. 내 손에 들려있는 오백 원짜리 동전은 돌격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고, 침입자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강렬한 안광을 쏘아대고 있는 두 사람을 에고가 느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이 반전되던 순간, 내 오른손의 오백 원은 돌격했고, 반사적으로 뻗은 왼손의 검지가 암바사를 택했다. '덜컹. 툭.'

     

      황급하게 쭈그려서 캔을 집었고, 네 줄기의 이글거리는 안광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그 둘의 세계에서 도망쳤다. 아침에 온 비의 덕인지, 더운 날씨에 습도마저 얼굴을 덥친다.

     

      '치익. 끅끅-꿀렁꾹. 휴.'

     

      가끔 마시는 암바사는 꽤 매력있다. 우유에 탄산이라. 사이다에 분유를 타 넣은 것 같은 음료수. 처음에 누가 아이디어를 냈을까. 흔히들 혈액형으로 뭐라뭐라하기 좋아하던데, 한 가지는 맞는 것 같다. "'O'형은 공상(망상?!)을 좋아한다." 습관적으로 또 떠올렸다.

     

      고백하자면,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에 이상한 짓 많이했다. 콜럼버스 전기를 읽고 나서, 동네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날계란 세울 수 있어?" 당당한 목소리와 똘망똘망한 눈알들. 대답은 없었고, 나는 기세등등하게 동네 구멍가게로 가서 백오십 원을 주고 한 알을 사왔다. 그리고는 "잘 봐"에 이은 행동. 보도블록에 계란을 깨뜨려 놓았다. 퍽.

     

      처음 암바사를 마셨을 때, 바로 실험에 들어갔다. '진실의 입'을 떠올리게 만드는 상표. 당시, 칠성 사이다 병에는 웃고 있는 태양마크가 있었다. 어쨌든, 그 사이다를 한 병 샀고, 집으로 돌아와서 우유와 섞었다. 연금술사들도 이런 느낌이었을테지. 긴장과 설레임으로 실험했던 연금술은 항상 실패였고, 나의 실험도 실패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유단백질과 사이다의 산성이 화학 반응을 일으킨 것 같다. 몽글몽글까지는 아니지만, 기분 나쁜 고체가 생겨났다. 꼭 이제 막 썩기 시작하는 우유처럼.

     

      바람이 불어와서 몽글몽글한 우유─사이다 반응물을 뇌속에서 밀어냈고, 나는 남은 암바사를 들이켰다. 캔 따개를 떼어냈더니, 이 녀석이 날 보고 웃는다. '하아~앙'하는 표정으로 방긋 웃어제낀다. 크흣. 어릴 적 장난과 이 녀석의 '하아~앙'이 목마른 내 뇌를 살게 만든다. 함참을 '크흣'대다가 작별인사를 날리고, '하아~앙'녀석의 멋진 환생을 기원하며 날린 슛.

      자유투는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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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oem_정원사_책들이 있는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