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 로맹 가리
    문학 2012. 12. 25. 00:49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저자
    로맹 가리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7-10-3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로 잘 알려진 작가, 로맹 가리 단편선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270쪽이 채 되지 않는 평범한 종이뭉치에 담긴 16편의 단편소설. 어느 것 하나 버릴만한 것이 없고, 깊은 사색과 음험함이 담겨있다. 로맹 가리는 읽는 사람에게 불친절하다. 독자는 단편 하나를 읽어가다가, 200자 원고지 분량으로 3장정도 남은 부분에서부터 뒤통수를 조심해야 한다. <식스센스>나 <유주얼 서스펙트>따위의 반전은 번쩍하는 순간에, “아! 그랬구나!”하고 단발의 비명이라도 지를 수 있지만, 로맹 가리는 완전 범죄를 꿈꾸는 불친절한 아저씨다. 그래서 음험하다―솔직히 고백하면, 더 적절한 단어를 찾는데 실패했다―.


      표제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시작으로 16편의 이야기들은 각각 인간 내면의 껄끄러운 모습들을 탐색한다. 첫 단편에서는 ‘페루’로 상징하고 있는 ‘세상의 끝’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는다. 새들의 시체로 가득한 모래언덕의 풍경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느낌을 전한다. 모든 것이 죽거나, 또는 영원한 안식을 얻기 위해 찾는 이 장소에는 상처받은 삶이 가득하다.


      <류트>는 읽는 내내 경쾌한 숟갈질과 더불어, 거치적거리는 목구멍의 생선가시 같은 이물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 원인에 대한 대답은 로맹 가리의 뒤통수 후리기로 정리되어 있다. <어떤 휴머니스트>에서는 우정과 신뢰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진정한 휴머니즘을 찾던 사람이 이상적인 휴머니즘을 꿈꾸다가 죽어가는 줄거리도 역시, 가볍게 넘기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몰락>에서는 긴장감 있는 문체로 ‘이상(理想)의 몰락’을 그려낸다. <가짜>를 보다보면, <깊이에의 강요>가 떠오르기도 한다. <본능의 기쁨>, <고상함과 위대함>을 읽고, <비둘기 시민>,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르면, 인간과 사회에 대해 슬며시 고민하게 된다. <벽>은 짧지만 강렬했다. 벽으로 단절된 인간의 소외를 담담하게 묘사한다.


      <킬리만자로에서는 모든 게 순조롭다>와 <영웅적 행위에 대해 말하자면>에서는 커다란 허울의 무게에 짓눌리는 인간의 모습이 나타나고, <지상의 주민들>에서는 지독한 현실을 지독하게 묘사하는 로맹 가리를 만나게 된다.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에서는 자본주의가 인간을 억압하는 모습을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에서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폭력을 말한다. <우리 고매한 선구자들에게 영광 있으라>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 로맹 가리의 인간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자상하게 어디로 가라고 알려주지는 않지만.


      모든 단편의 구조가 동일하다. 먼발치에서 노리고 있는 저격수처럼, 소리 없는 총성으로 독자를 16번 죽인다. 짧은 글에 많은 생각을 담기 위해서인지, 문장도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러나 행간 읽기의 표지판도 없는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어렴풋하게라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인간과 사회에 대해 많은 실망과 좌절을 하고 16번이나 저격하지만, 세상의 끝에서 부활하는 인간을 꿈꾸는 로맹 가리의 모습을.



    <책에서>


    정체성이 분명한 예술 작품은 불안정한 영혼 속에서 절대적인 확실성만이 일깨울 수 있는 그런 경건함을 그에게 불러일으켰다. -p.101


    내 솔직한 의견을 말하자면, 인간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새로 만들어내야 하는 거예요. -p.124


    “미국에는 말이오”하고 라쿠센이 악을 썼다.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비둘기들도 있소. 상원의원이 된 비둘기만 해도 내가 아는 것만 열둘이오!”-p.155


    “……. 그녀가 죽은 이유는 고통스러운 고독과……삶에 대한 총체적인 혐오감 때문이었네.”-p.181


    세상은 다시 한 번 나를 배신했다. 대도시에서든 태평양의 가장 작은 섬에서든,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계산이 인간의 영혼을 더럽히고 있다. 순수에 대한 내 끈질긴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선 정말이지 무인도로 들어가 혼자 살아야 하는 것인가. -p.230


    “근본적인 건 흠 없는 인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간직하는 건데……중요한 건 형태가 어떻든 간에 몸이 아니라 영혼입니다. 그 안에 깃들인 신성한 숨결……”-p.266

    댓글

cpoem_정원사_책들이 있는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