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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르크스 평전 | 자크 아탈리
    비문학 2012. 12. 25. 00:33




    마르크스 평전

    저자
    자크 아탈리 지음
    출판사
    예담 | 2006-10-17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의 저서 마르크스 평전. 세계화에 대한...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이 제법 잘 어울리는 사람. 살아서는 경제적인 고통에 평생을 시달렸고, 죽어서는 자신의 이름을 사칭하는 무리들에 의해 수없이 많은 욕을 먹은 사람. 다른 민주주의자들보다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옹호했고, 자본주의의 전세계화를 말했던 사람. 철도와 전기와 과학에 환장했던 사람. 내게는 모두 한 사람을 기억하게 하는 말들이다. 나의 조부모님께서 그렇게 싫어하시는 ‘빨갱이들의 메시아’―칼 마르크스―마선생이 바로 그다.


      올해 여름, 마선생의 저작을 처음 접했다. 『공산당 선언』이라는 얇은 책자는 물리적인 무게에 비해 최소한 몇 제곱은 무거웠다. 지하철에서 중년 아저씨, 아줌마들의 따끔따끔한 시선을 피해가며 읽었던 “공산당 선언”은 약과였다. 『마르크스 평전』은 북핵실험보다 무서운 눈총을 받기 위한 멋진 과녁이었다. 이 책을 들고 다녔던 근 열흘 동안 확인한 것이 있다. 지하철과 버스가 나의 주된 독서 공간이란 사실이, 활 잘 쏘는 민족이 눈총도 잘 쏜다는 걸 입증하고야만 일이다.


    # 1. 알고 비판하라, 모르고 눈총 쏘는 건 비난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 또는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서 약간의 지식을 갖춘 상태에서 어떤 하나의 대상에 대해 말하는 건 오만이다. 인터넷 기사에 20초에 한 번씩―또는 보다 짧은 순간에― 달리는 댓글은 오만으로 똘똘 뭉쳐있다.


      나는 경제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친구들이 우리나라 경제정책이 바르네, 그르네 할 때마다 “헤헤, 난 잘 모르겠어”라고 말할 도리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친구들이 마선생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다보면, 꽤 참기 힘들다. 그들이 이해하고 있다 착각하는 마선생은, 마선생의 탈을 뒤집어 쓴 ‘레닌-스탈린주의’였다.


      이 책은, 그들의 오해를 씻어주기에 충분한 해독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친구들에게 마선생을 배우라고 권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마선생에 대한 오해를 간직한 채로, 비난하지 말라고 부탁하고픈 마음이다. 마선생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옹호했던 사람이고, 처음으로 세계화를 언급했던 사람이다.


    # 2. 자본주의를 넘어 공산주의로


      이 책의 저자는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다. “세계적인 석학”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러울 만큼, 영향력 있는 지식인이다. 이 수식어는 출판사의 전략 같다. ‘골수 자본주의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중화제 역할을 충실히 하는 수식어와, WTO 총장의 찬사를 뒤에 실어 놓은 것도 탁월한 전략이었다.


      마선생은 자본주의를 거부한 적이 없었다. 더욱이 자본주의가 없으면, 공산주의도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공산주의”라는 단어를 듣기만 하면, 발작 비슷한 것을 일으키는 사람들에게 아래의 발췌문을 보여 드리고픈 마음이다.


      “세계적 자본주의란 공산주의에 필수불가결한 전제이며, 공산주의는 전 지구적인 시스템으로서만 창설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산주의는 개인의 더 많은 자유를 향해 끊임없이 변화하게 될 것이며, 세계적이 된 자본주의의 완성 단계에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에 반대하는 항거의 결과로서만 생겨날 수 있다.”-p.178


      내 생각에는 마선생의 공산주의가 현실에 나타나려면, 아직도 한참 남았다. 19~20세기를 지나오면서 시장은 상당히 자랐지만, 아직까지는 그 크기가 미치지 못했다. 아마도, 마선생이 요즘 우리나라 상황에 대해 논평했다면, 한미FTA를 적극 찬성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여태 달의 앞면만 생각하다가, 달의 뒤통수를 보는 것 같기도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 3. 앨빈 할배에게 느껴지는 마선생의 향기


      앨빈 할배―앨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에서 “자본주의의 미래”를 얘기했다. “자본주의의 핵심 구성 요소인 자산(property), 자본(capital), 시장(markets), 돈(money)은 오늘날 그 실체를 거의 알아볼 수 없게 변했다(앨빈, p.363)”고 말한다. 세계는 인터넷이라는 보이지 않는 커다란 시장을 확보했고, 보이지 않는 자산, 세계를 돌아다니는 자본, 형태 없는 돈을 현실화했다.


      게다가 프로슈머(prosumer)에 대한 이야기 속에 담긴 사례는 마선생의 예언이 떠오른다. “타임 달러”―에드거 칸이 창안, 한 회원이 이웃 노인의 장보는 일을 도와준 경우, 그에 대한 서비스 봉사 점수를 쌓고, 나중에 이 점수를 이용해 다른 회원에게 자신의 아기를 돌봐 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제도(앨빈, p.407)―의 사례는 아래의 마선생의 얘기와 비슷하다.


      “시간은 교환의 진정한 척도이다.”-p.441

      “공산주의자는 자유롭게 오늘은 이것을 하고 내일은 저것을 하며, 아침에는 사냥꾼 노릇을 하고 오후에는 어부 노릇을 하고 저녁에는 목동 노릇을 한다. 결코 직업적인 사냥꾼, 어부 또는 목동이 되지는 않는다.”-p.293


      오늘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슬슬 숨겨진 절반의 경제가 실체로 드러나고 있다고 느끼는 건,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 4. 진실을 호도하는 사기꾼들 : 엥겔스, 카우츠키, 레닌, 스탈린


      뛰어난 업적을 이루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의 뒤는 난감하다. 종교부터 돌아보면, 예수의 2000년 그림자도 피로 얼룩졌고, 석가모니의 발꿈치에도 상당히 많은 사이비가 존재한다. 공자는 현실 참여 사상을 무던히도 강조했지만, 그 사이비가 조선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과학은 진실을 호도하기 어렵다. 천동설은 결국 지동설에 졌다. 혜성은 역병을 불러 오지 않았고, 마젤란은 배를 타고 지구를 돌았다. 한 시대의 ‘과학적 상식’은 새로운 ‘진실’에 언젠가는 진다. 우리가 그렇게 외웠던 ‘수금지화목토천해명’도 바뀌게 되는 것처럼―정치적인 것도 배제할 수 없겠지만―.


      철학은 호도하기 쉽다. 복잡하고 난해할수록,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고 읽기 어려울수록 왜곡해서 전달하기 쉽다. 마선생의 이론은 그 조건들에 정확하게 일치했다. 거인이 죽고 나서 키 큰 인간들이 ‘간추리기’ 시작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용으로.


      “전방위 당의 개념을 만들어내는 엥겔스, 마르크스의 경제이론을 왜곡시키게 되는 카우츠키, 마르크스주의를 후진국의 서구화 전략으로서 러시아에 수입하게 되는 레닌, 다른 계급들을 모두 숙청한 후에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독재로 만들어 버리는 스탈린을 말한다.”-p.629


      하나씩, 하나씩 쌓였고, 한국전쟁을 통해 접했던 빨갱이는 그대로 최초의 공산주의, 즉 마선생에게까지 핫라인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21세기 오늘도 열심히 작업한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의 프로파간다가 충실하게 작동 중이다.


    # 5. 모든 것을 의심하라―비판적 인간


      마선생의 모습은 하나의 인간형으로 살펴봐도 흥미로웠다. 인간 자체가 헤겔의 변증법으로 이루어져있다. 하나의 글을 완성해 놓고도 ‘아직 읽지 못한 중요한 책이 있을까봐’ 손에서 놓지 못했던 모습이 이 책에 묘사되어 있다. 자신의 저서 『자본론』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의심했다. 진정한 학자, 지식인이라면 마선생 같아야 하지 않을까? 종종 신문에서 보는, 양심에 털 심은 사람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당신의 신조는? 모든 것에 대해 의심할 것.”-p.431


      또 하나, 인간에 대한 신뢰다. 나약하지만, 인간은 믿을만한 존재라고 마선생은 끊임없이 확신하고 있다. 마선생의 삶은 돈을 물 쓰듯 했고, 독단적인 인간관계에 독설로 가득했다. 그 탓으로 평생 동안 엥겔스가 금전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으로 생활을 영위했고, 자식들이 굶어 죽는 상황에서도, 단 한 번의 육체노동도 하지 않았던 이상한 가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에 심장 뛰던 사람이었고, 사람의 가능성을 믿으며, 세상의 한 중심에 인간을 세우고 싶어 하던 사람이었다.


      “그 원칙이란 인간은 모든 사색과 정치적 활동의 중심에 있어야 하며, 그 어떤 혁명도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을 해방하는 것이므로 인간의 목숨만큼 가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p.142


    # 6. 아직 유효한 마선생의 예언들.


      바로 코앞에 마선생의 예언이 실현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세계화. FTA는 계속해서 각 나라의 문을 두드리고, 일본의 자본이 나스닥에서 돌고 있다. 우리나라의 공장은 중국으로 이사 갔다. 세계 최대의 빈곤국이었던 중국은 장차, 세계를 좌우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다. 마선생의 예언대로 단일 국가 안에서의 공산주의 혁명은 거의 모두 세계에서 몰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100년도 더 된, 예전과 다른 부분도 많다. 자본주의는 복지국가와 어깨동무를 했고, 오늘의 대다수 사람들은 공산주의보다 현재의 복지자본주의를 더욱 편안해 한다. 이미 세계는 공산주의―이상하게 변형되긴 했지만―를 경험했으며, 잘못된 부분을 알게 되었다. 과연, 마선생의 이론은 자본주의의 부족한 점을 깁는 실과 바늘을 제공한 것으로 수명을 다 했을까? 내 생각은 다르다. 혼란에 휩싸여 있는 오늘이, 마선생이 예언했던 ‘진정한 공산주의 사회’로 가기 위한 과도기처럼 느껴진다.


      아래의 글을 읽으며, ‘양극화’를 느끼는 건 나뿐일까.


      “노동자에게 가장 유리한 상황은 자본이 증가하는 상황입니다. 자유교역은 오래된 국가들을 파괴해버리고,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반목을 극단으로 몰아갑니다. 자유교역은 혁명을 가속화시킵니다.”-p.198


      마선생의 왜곡되기 전의 모습을 잘 담아 놓은 책이었다. 그리고 그의 아내 예니와의 연애를 구경하는 것도 꽤나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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